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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요나서

06강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욘1:1-3)

by 오용주목사 2018. 10. 30.

06강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1:1-3

초대교회의 모습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교회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한 마디로 하면 무기력함.

나름대로 하나님 찾아야 한다니까 바쁜 가운데서도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내로 놓으라니 내려놓고

또 올려놓으라니 올려놓아 보지만

우리 입에서 한숨같이 나오는 말 해봐도 별 수 없네

 

저는 오늘 이 요나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무기력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해봐도 별수 없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치유되어 말씀에 순종 해보니 되는 구나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1.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러분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임.

선지자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주시는 말씀에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사역을 받는 것도 그래요. 맨 날 기도사역만 받으면 뭐해요.

기도사역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에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자각해야 하는 겁니다.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중요함.

수년을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 앞에 자각되는 인생이 아니면 그 많은 말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지체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이제 곧 중고등부 십자가의 복음학교, 아동, 중고, 청년대학부 연합수련회가 시작되는데 무엇을 기도해야합니까?

하나님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 예배를 통하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 문제해결,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비춰보고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된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1: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한마디로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으로 반응함

그냥 불순종이 아니라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못해서 순종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문제도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불순종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 이 요나가 누구입니까?

당대 선지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왕에게 조언하고 예언을 할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는 당대 대표적인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인 이런 요나가 불순종한 것입니다.

무엇이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게 되었을까요?

 

1.상한 감정, 즉 내면의 상처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요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니느웨에 대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심장부 수도 아닙니까!

 

당시 앗수르는 아주 잔인한 민족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원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다 아시지만 결국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가 이 앗수르 아닙니까?

그러니 모든 유대인들이 이 니느웨이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잔인함

우리에 사람을 가둬두고 오가며 칼로 푹푹 찌르며 고통을 겪다 죽어가게 함

왕의 목을 잘라 아들에 목에 걸고 거리를 다니게 함

역사적으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에 앗수르의 혼혈정책으로 생겨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서 생겨난 지역감정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까지 계속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앗수르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앗수르의 심장부인 니느웨를 구원시키라고 하니까

요나가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요나가 판단하기에 니느웨는 은혜를 베풀 이유가 하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내면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에 동의하는 삶이 쉽지 않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쉽지 않음

이런 사람은 자아의 소리를 듣게 됨,

하나님의 소리에는 관심이 없음.

요나 - 상처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함.

 

1)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위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고리를 만듦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고리를 만듦

많은 사람 - 내면의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됨

순종의 사람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처가 치유되어야 함.

우리 모두는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함, ?

그래야 내가 잘되니까?

그래야 문제 해결이 되니까?

그래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으니까?

아니에요. 왜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그래야 하나님 앞에 순종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의 원인>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대상 -> 하나님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시는가,

다른 사람은 하나님 음성이 들리는데 왜 나는 안들 리는 가

왜 아필이면 나에게 요구하시는가.

*사람 때문에

환경 -> 내가 원하는 환경이 아님 ->그러면 상처 받음

 

2)어떻게 상처치유?

하나님의 성품과 주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가장 옳은 길로 인도하심

하나님은 전지하심 - 최선의 길로 이끄신다.

전능하심 -완전한 길로 인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는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여기서부터 과거의 상처를 봐야한다.

나를 사랑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신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옳아요 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

나의 상처와 아픔을 주님이 알고 계심을 아는 것이 중요함. 이것 하나만 인식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가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은 분이심을 알아야함

과거 상처를 다루심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 가신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 66: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66:1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관계 어려움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

하나님 쓰셨던 인물들은 다루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면 상처로 남을 수 있음.

 

) 요셉 - 6살 때 어머니 주금, 아버지의 편애를 받음

형들에 의해 팔려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여 세우심

안정을 누리 때 위기가 옴 - 보디발 아내에 의해 감옥에 감.

감옥에서 꿈 해석 후 기억해달라고 했는데 잊어버림. (잊혀진 남자)

우리는 국무총리가 되었다면 보디발 집에 찾아갔을 것이다.

형들을 복수했을 것이다.

 

45:4-8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45: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다른 각도로 해석이 끝남 -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그 일을 이루셨다. 그래서 50장에 가면 자기를 판 형들의 가족까지 돌보겠다고 함, 다루심의 통로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 됨.

- 상처가 하나님이 나를 빚어 가시는 과정으로 보아야

- 과거의 상처를 다루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현장실습하기 위해서

- 피차는 조교 노릇한다.

- 다루심을 이해하고 나면 상처를 안 받는다. 그 뒤에 하나님의 의도가 계시기 때문

- 과거를 상처가 재해석이 된다.

다루심 속에서 내가 다루어 질 뿐 아니라 상대방을 내가 용서할 때 그들이 자유케됨 -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2.요나가 불순종한 두 번째 이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요나의 불순종의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몰랐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요.

 

마치 탕자의 비유의 큰 아들과 같이

15장에 나오는 탕자를 보십시오.

탕자가 왜 탕자입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서 탕자입니까?

그렇다면 만약 둘째 아들이 아버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서 몇 배로 남겼다면 탕자가 아닙니까?

탕자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탕자라는 겁니다.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방탕이요, 탕자입니다.

 

그런 의에서 둘째 아들은 집밖의 탕자라면, 큰 아들은 집안의 탕자입니다.

왠 줄아세요? 이 큰 아들, 자기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 뭐입니까?

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큰 아들의 말이 다 맞음 - 그런데 큰 아들을 집안의 탕자라 부르는 이유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안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바로 한나입니다.

한나가 불임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엘리는 한나가 취한 줄 알고 포도주를 끊어라 함

이때 한나가 한말이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심정을 통했다: 내가 니 마음을 알고 니가 네 마음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한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한나의 마음을 알았다는 겁니다.

한나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들 달라고 울고 불고 난리를 처넣고 왜 아들을 바친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찾고 있었다는 애기입니까?

어떤 한 사람을 찾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 마음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한나가 자기의 불임을 고통해서 아이없는 아픔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나 같은 비천한 여자도 아이가 없으니 이렇게 슬프고 비참한데 그런데 하나님은 이 깜깜한 사사기 말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대언할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없었구나,

하나님! 알았습니다. 그 아들을 내게 주세요. 내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하나님의 마음을 그냥 부족함이 없는데서 보여주질 않습니다.

늘 눈물짓고 지지리 군상이고 고통스러운 어떤 처절한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세요.

한나야 너 아이 없어서 아프지 내 마음도 그렇단다

처음엔 자기고통, 자기영적인 문제를 놓고 부르짖다가 그렇군요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하고 똑 같았군요.

여기서 한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안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진짜 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회복하게 됨

은혜 받았다, 은혜 받았다 하는데 뭐가 은혜 받은 것이 뭡니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겁니다.

오늘 교회가 무너지고

가정은 붕괴되고

우리의 자녀들은 것 잡을 수 없이 혼돈에 빠져있으며

이 땅 가운데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가 되어버린 하나님을 버린 인생들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아직도 탄식하고 계세요

누가 이 혼돈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을 죽여 버린 저 인생들 앞에 복음들이고 갈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마음을 회복시켜주세요.

 

3.요나가 불순종한 세 번째 이유

요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아니 그 강대국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어가지고 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유대나라 사람이 가서 너희들 회개하라고 할 때 누가 말을 듣겠느냐는 겁니다.

 

나 같은 게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거예요.

지금 말로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겁니다.

아니 회개는 고사하고 도리어 요나의 생명이 위태로울 거예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나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보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 무댓보가 아니에요.

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당에 나오신 분은 나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오신 거예요.

또 반대로 오늘 예배당에 안 나오신 분도 안 나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안 나온 거예요.

어제 마누라랑 싸워서 기분 나빠 도저히 못 나간다.

어제 밤늦게 까지 시청각 교육을 했더니 피곤해서 못 간다.

다 이유가 있어요.

이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조금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놀라운 구원의 역사의 현장에 자기를 불러준 것이 놀라운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얄팍한 자기 논리 자기 계산으로 불순종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의 논리가 생각이 내려지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상식이 하나님 앞에서 내려지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 논리는 자꾸 사라지고 하나님의 논리로 채워지면 용기가 생깁니다.

담대함이 생깁니다.

 

모세 홍해 앞에서, 적이 코 앞가지 추격해 왔는데, 앞은 홍해 이러한 상황에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요단강 앞에서 내 논리로 바라보면 정말입니다.

그러나 내 논리를 내리고 하나님이 논리로 채워지면 담대함이 생겨요. 용기가 생겨요.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보세요! 얼마나 담대합니까.

 

성경에서 담대함의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이 얼마나 복음에 대한 자신감 입니까!

이 담대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무댓보의 도전은 위험함. 이 하나님의 응답, 사인이 있을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일로 부르셨는데 우리의 모습 또 한 요나와 같이 무기력하지 않습니까? 무능력하지 않습니까? 초라하지 않습니까?

마치 귀신들이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대려왔지만 이 아버지가 예수님께 한 말이 뭡니까?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구절은 마치 독수리가 열심히 날개 짓을 해서 창공을 비상하는 것을 연상합니다.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 너무나 잘 못 된 것

어떤 성경 soar on wings like eagles (쏘오링 온 윈스 라이크 이글스)

 

쏘오링: 이 단어는 자기가 날개 짓 한다는 의미가 아님

이 쏘오링은 글라이더의 활공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글라이드는 자기가 날개 짓을 해서 하늘을 나는 도구가 아니잖아요.

글라이드는 날개를 펼쳐서 공기의 기류를 이용해서 나는 도구임.

 

마찬가지로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를 때 자기가 날개 짓 해서 나는 것이 아니고 태양열이 땅을 비취면 공기가 따뜻해 짐, 그러면 그 따뜻해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독수리는 그 따뜻한 공기가 위로 상승할 때 그 상승 온난 기류를 찾아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승온난기류를 만나면 날개 짓 대신에 그 큰 두 날개를 펼쳐서 기류를 타면서 올라간다는 겁니다.

 

독수리는 나는 것에 굉장히 약한 조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독수리가 날개를 펴면 대약 2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육중한 날개 무개 때문에... 참새는 날개가 작기 때문에 자기의 날개 짓으로 날수 있지만 독수리는 너무나 무개가 육중해서 날개 짓을 하기 어려운 조류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의 날개 짓이 아니라 지구의 상승 온난 기류를 만난 것라는 겁니다. 그 기류를 만날 때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은 글라이딩처럼 쏘오링 창공을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독수리에 반해 참새는 자기 날개 짓으로 하늘을 나는 존재임

그런데 여러분 참새가 높이 납니까? 독수리가 높이 납니까?

참새는 자기 날개 짓으로 금방 지칠 수밖에 없어요.

 

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지치고 탈진합니까?

우리가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고 애쓰면 애쓸수록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입니다.

자기의 날개 짓으로 날면 피곤하고, 곤비하며,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참새처럼 자기 날개로 파닥파닥 거리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우리 몸을 맡기고 날개를 펴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그 온난 기후에 내 몸을 맡기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한번 상승기류를 만나면 그 상승기류를 벋어나려고 하지 않듯 하나님의 은혜의 상승기류를 벋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부림이 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날개 짓으로 사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날개만 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날개 짓을 한두 번 해보셨습니까?

자녀를 위하여 날개 짓 한두 번 해보았습니까?

아무리 날개 짓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제 영적인 상승기류를 만나서 하나님이 주신 그 큰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참새 같은 몸부림으로 날 수 없었던 저 놀라운 창공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찬양이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 듯 나주님과 함께 이러나 걸으리 주의 사랑안에...

다 일어나십시오. 2층에도, 비전트립실에도, 휴게실에도, 조치원 처소도~~다 일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