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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요나서

03.요나의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나 (욘 1:1-4)

by 오용주목사 2016. 12. 6.

03. 요나의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나

요나1:1-4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신앙을 3단계로 구분해 봤습니다.

신앙의 1단계 : 의식의 단계

신앙의 2단계 : 친밀함의 단계 (의식의 단계를 통하여 친말함으로 나감)

신앙의 3단계 : 하나님께서 하나님 일로 초청할 때 온 삶으로 동참하는 단계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셨습니다. 그 일은 니느웨에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러나로 반응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요나 내면에 니느웨에 대한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모른 것과, 대가지불의 두려움 그리고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자기 생각이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고리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3절을 보세요.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기 욥바는 요나가 가야 할 니느웨의 정 반대 방향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마침이 말은 미리 예매가 가능하고, 전화로나, 인터넷으로 배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한 오늘의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당시 배들은 여객선이 아니라 상선으로 다시스는 솔로몬 왕 때부터 이스라엘과 무역을 해왔는데, 왕상10:22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그러니까 그 시대에 다시스와는 3년에 한 번씩 무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는 오늘 있고, 내일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것은 기적 중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보세요, 지금 요나가 하나님께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빠져가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수 있느냐 말입니다. 마침 요나의 전용 배처럼 다시스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니 불순종하고 돌아서면 있던 배도 끊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 구나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일이 잘 풀리는 것입니다. 딱 불순종하고 돌아섰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출발하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요나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면 그렇지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구나,

 

여러분 잘 들으세요, 세상에서 일 잘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잘 풀리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되게 막아 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기도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고, 또 반대로 일이 안 풀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이 대형 교회에 출석하시는 권사님 한분이 계시는데 어떤 사업에 5,000만원을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저희에게 그 투자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습니까? 일이 잘 풀리더라는 겁니다. 사업 설명회에 갔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 투자 못한다고 하니 옆에 있는 권사님이 내가 5천을 빌려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생각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돈 빌려준 권사님과 관계도 깨어지고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시겠죠? 일이 잘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일이 안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 환경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께 불순종 했는데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본단 말입니다. 또 옆에 사람을 보면 죽으라고 주일 지키려고 애쓰고, 죽으라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매상은 안 올라가고 매일 적자고, 그런데 지 멋대로 사는 저 사람은, 주일성수도 안하고 개판으로 사는 저 사람은 매상이 올라가고 그래서 가계를 확장 한다 그러고 있어요.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고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데 일이 잘 풀리는 그거 굉장히 위험합니다.

 

요나를 보세요. 지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 욥바로 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보세요, 요나가 마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이 대박인 것 같고 대풍을 만나고 제비뽑기에 걸려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망하는 길 같은데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마침 배를 만난 것이 망하는 것이고 죽을 고통 속에서 물에 빠져 허덕이고 물고기 배속에 들어간 것이 대박이더라는 겁니다. 요나가 3절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그 배를 만나지 못했다면 요나가 물에 던져져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는 일생의 수치스러운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데 일이 잘 풀리는 것 위험합니다. 정말 우리의 삶에 무서운 것이 징계하지 않는 징계인 것 아세요? 너 맘대로 하라는 겁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겉으로 보기엔 하는 일 마다 잘 안될 대가 있고 그래서 내 가슴을 찢어 놓는 실패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축복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은 엉망인데 너무 잘되는 거 이것이 나중에 대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게 지혜로운 것입니다.

 

2.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을 때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 순종하니 일이 잘 풀리고 순종하니 더 어려움을 당하니 이거 순종하는 건지 불 순종하라고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죠?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순종하면 만사형통 불순종하면 만사불통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어디에도 순종하면 만사형통을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은 순종을 했을 때 더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 순종을 했다 낭패를 당한 대표적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자 말씀에 순종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기근을 만났으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들은 건가요?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가 환경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3.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환경을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결과가 뭐냐?

1) 원망, 불평, 하나님을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광야에서 힘들 때 마다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본 대표적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홍해 앞에서 우리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서 죽게 하느냐 원망,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고 원망, 여리고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를 듣고 원망, 길로 인하여 원망, 원망, 원망, 원망....이 모든 원망의 뿌리에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욥을 보세요. 그는 모든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모든 자녀를 잃었습니다. 온 몸에 악창이 났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욥기 마지막 장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관점을 알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하나님 편입니까? 아니면 욥의 편입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욥의 편을 들면서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이해되지 않는 환경을 만날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는 일들이 자꾸 실패하면 그것에 의해서 위축됩니다. 이 때 우리가 그 어려운 환경에 푹 빠져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비뚤어진 이해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아,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어... 이 모두는 하나님을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2)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결과가 뭐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길로 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가 가난에 도착했을 때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경을 하나니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니 어떻게 반응합니까?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보세요,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났을 때 왜 이 기근을 만나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르니 어떻게 행동합니까? 자가 생각대로 애굽행을 택한 겁니다. 결과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아내를 빼앗길 뻔 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혹 여러분이 비극적이고 혼돈스러운 환경에 푹 빠져서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원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통해 환경을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나의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환경을 되돌아보십시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거나 혼동된 환경에 처했을 때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환경의 진실을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그의 책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당신의 환경이 어렵거나 혼동될 때 어떻게 대응하는 지 간추려 놓았습니다.

 

환경이 혼동될 때

1.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그 분의 절대적인 사랑을 영원히 표현하셨음을 당신의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사랑은 절대 변치 않습니다.

2. 환경에 푹 빠져 있는 채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당신의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4. 성령님의 인도를 기다리십시오. 그 분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환경을 이해하도 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5.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또한 당신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고 생 각 되는 그 일에다가 맞추십시오.

6. 그 분이 당신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모든 일을 하십시오.

7.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을 통해서 그 분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십시오.

여러분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내 의지로 꺾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자꾸 하나님의 뜻을 꺾으려고 불철주야 기도하면서 하나님 제발 고집 좀 꺾어지라고 그렇게 기도하면 안 됩니다.

기도의 가장 마지막은 하나님의 그 뜻에 내 고집과 의지를 꺾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 내 관점을 굴복 시키는 것이 기도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의 고집을 꺾고 여러분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맞추는 성숙한 기도가 드려지기를 주님으로 축복합니다.

 

4. 본문 4절에는 우리나라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러나 접속부사로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4절은 이렇게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여러분 이거 묘한 대조 아닙니까? 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의 그러나4절에서는 요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그러나입니다.

 

3절의 그러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인간의 방해 행위를 표현하는 그러나라면 4절의 그러나는 그 불순종한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방해를 거시는 하나님의 그러나입니다.

우리가 오후 성경 탐구의 삶을 살펴보고 있는데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누가 왕이냐?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싸움의 역사이듯 인류 역사는 이 두 그러나의 대립입니다. 인간의 그러나와 하나님의 그러나의 싸움이 인간역사입니다. 우리 개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그러나와 하나님의 그러나의 대결구도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 아닙니까?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지도자로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수용을 못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그들이 나를 믿지도 않고 내 말을 듣지도 아니할 것이다.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계속 불순종하지만 결국 누가 이깁니까? 결국 하나님이 이기시잖아요. 하나님의 그러나와 인간의 그러나가 대결해가지고 인간의 그러나가 이겨본 적이 없어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문제로 하나님과 대결하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그러나와 하나님의 그러나가 어떤 문제로 충돌이 되세요? 빨리 포기하세요. 빨리 내려놓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로 부름 - 이사야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 이사야가 잽싸게 이야기 합니다.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버터 봐야, 배타고 도망가 봐야 결국 끌려서 가게 될 텐데, 결국 순종하게 될 텐데 이사야처럼 앞뒤 제보지 않고 대답해놓고 계산하는 겁니다. 요나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요. 무조건 예 니느웨로 가겠습니다. 이게 지혜로운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사야의 지혜를 본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아멘, 순종하겠습니다. 그래놓고 계산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합니다. 그것을 비굴이라 생각하시면 안돼요. ? 그분은 창조주시고, 주권지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굴복하면 하나님 앞에 비굴하면 세상 사람들이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그러나와 인간의 그러나가 대결해서 인간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0.0001%도 없는 싸움이라면 빨리 포기하고, 빨리 백기 들고, 빨리 항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죄의 문제도 그래요? 다윗을 보세요. 그 충신 우리아를 죽는 자리에 내 보내고 밧세바를 취한 이 무섭고도 추잡한 죄, 완전범죄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할 때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이 즉각적인 항복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속에 그 무서운 시기, 질투, 분노, 여러분 속에 그 무서운 아집,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어긋나던 모든 것들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다 꺾여서 하나님의 그러나가 위대하게 승리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