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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절기설교

14.진정 부활을 믿는다면(고전15:1-58)(2018년 부활주일)

by 오용주목사 2018. 4. 1.

부활절                                                         14.진정 부활을 믿는다면

고전15:1-58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를 내립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그러면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이 아버지는 누구고, 고향은 어디고, 어디서 자랐으며, 아브라함의 키는 얼마고, 몸무게는 얼마이며, 발사이즈는 얼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을 놓치면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모르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이 서로 하나입니다.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활의 참된 의미도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부활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환각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보았다는데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한 나머지 환각상태에서 허상을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체가 아닌, 환상 같은 것을 보았다는 설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근거가 없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 차례 넘게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도마는 직접 예수님의 몸을 만졌는데 환상을 보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기절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는데 다시 깨어난 것이지 부활한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도 터무니없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덤 안에 삼일을 있었습니다.

 

셋째는 도적설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헛소문을 퍼트렸다는 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무덤은 로마제국의 힘과 권능의 상징인 무덤을 봉인하였습니다. 그리고 1.52톤가량의 무게로 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의 봉인이 심하게 부서졌는데 로마 군대가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겠는가? 붙잡히면 거꾸로 매다는 십자가 처형을 받는데 로마 병정들이 지키고 있는 무덤과 봉인을 뜯어낼 수가 있을까? 또 제자들이 잠자는 병정들 사이로 들어가서 그 무거운 돌을 옮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게 헛소문이라면 당대 로마가 돌무덤을 열고 예수님의 시신을 보여주면 되면 이게 헛소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바보 멍청이 들이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 입니까? 실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1.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뭐냐?

 

1) 역사적 증거

세상에는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집단의 공통점은 교주가 죽고 나면 뿔뿔이 흩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보면 예수님이 계실 때도 요동쳤던 그들이 어찌된 일인지 예수님이 사라진 후에 더 야무진 겁니다. 더 모여들었고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초대교회의 탄생 사이에 엄청난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겁니다.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던 결정적인 사건, 그건 뭐냐?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확인된 것만 해도 예수님은 부활 후 열 번 정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 맨 먼저 주님을 만났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도마가 빠진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며, 도마가 함께했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갈릴리로 다시 돌아가 고기 잡던 7제자에게 다시 나타나셨으며, 다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백여 형제와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40일 후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 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확실하게 목격했기 때문에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한 결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목숨과 바꿀 믿음이 생긴 겁니다. 이것이 역사적 증거입니다.

 

2) 물적 증거 :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은 후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는 죽은 후 화장을 했는데 사리들이 나와서 그 사리들을 세계에 흩어져 보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스리랑카에서 공인한 진신사리가 2015년에 들어와 부천 서광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의 묘는 사우아라비아 메디나에 있습니다. 유교의 공자는 중국의 곡부에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다른 것은 빈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3) 신앙 고백적 증거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의 예언대로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예언,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경전에는 예언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불교의 팔만대장경에도, 유교의 논어, 도교의 도덕경에도 예언은 없습니다. 회교의 코란경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예언이 빗나간다면!! 그 종교 자체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과거 예수님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오신다고 한참 떠들어 되던 사람들 지금은 다 사라지고 흔적도 없습니다. 그 만큼 예언은 힘이 있지만 위험부담도 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렇게 위험한 예언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초림의 주님으로 오신 것도, 십자가의 죽으심도, 부활도 성경은 예언하고 있으며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유일한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참이냐 하는 질문을 반드시 해봐야 합니다. 만약 성경에 오류가 있고 거짓되고 짜 맞춰진 책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무너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이 참된 책이라 확신한다면 우리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나를 믿는 것이 손해인지 이득인지 잘 따져보라는 겁니다.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 그리고 참이라고 생각이 들거든 이 말씀을 믿으라는 겁니다. 믿으면 이 성경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럼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연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말씀처럼 성경대로, 약속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성경 복음에서만 해도 여러 곳에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언이 나오는데

 

17: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27: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18:33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성경이 예언하고 있고, 또 예수님 자신이 고난 받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 실패한 것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 권총이 무서운 것을 우리를 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왜 죄가 무서운가? 우리를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죽는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님과 단절, 육신의 죽음, 그리고 영원한 지옥을 말합니다. 그래서 6: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고, 우리의 육체도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 예고편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사람에게 빚을 지고 갚지 못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제 빚을 대신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감옥에 간다면 빚을 갚아 준 것이 무선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도 없지 않습니까?

 

마찬 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죽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결과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고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곤란한 처지에 있는데, 지금 내가 뭔가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여있는데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 이걸 고아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여기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여기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 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파라라는 ~~~곁에, 나란히 라는 전치사와 클레토스부름 받은 자() 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파라클레토스는 부르심을 받아 곁에 계신 이, 곁에 계시면서 도와주는 자 라는 뜻입니다.

 

보혜사, “파라 클레토스를 영어 성경에는 세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help(헬프):돕는 자 / counselor(카운슬러):상담자, 조언자 / comfort(컴포트):위로자

 

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진정 믿는다면?

 

삶이 달라집니다. 여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가 있는데 어느 날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했는데 어떤 질병에 걸렸던지 완치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환자의 삶을 분병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정말 믿는 다면 그 증거가 뭐냐? 우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 허름한 반 지하 월세 집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이 이제 몇 달 후면 새로운 내 집을 장만해서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 이들이 이 사실을 믿으면 그들의 삶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니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도 같이 죽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 또한 부활하여 결과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 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다면서 어떻게 부활과 상관없는 삶을 사고 있느냐 말입니다. 왜 재림을 믿는다 하면서 재림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내세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죽음 너머의 삶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에만 급급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우리 날을 계수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계수가 뭡니까? 1-10이 아니라 10-1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계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미련하다 말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세요. 이 세상에 썩어져 없어질 것에는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원한 것은 포기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잊고 삽니다. 우리가 이렇게 미련하다는 겁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자기는 안 죽을 것같이 삽니다.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삽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만 시한부인생을 사는 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다 시한부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단지 차이점은 그들은 병으로 어느 정도 살날이 남아있는지 알지만 우리는 전혀 모른다는 차이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종말론적 삶을 살아라 합니다. 이 말은 오늘의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6:8은 이렇게 말합이다.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는 출세합니다. 안하는 것보다는 났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남보다 좀 더 잘 삽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영생을 위하여 무엇을 심습니까? 뭘 투자합니까? 심은 것이 있어야 거둘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 어떤 삶을 살 수 있는가?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받았느냐? 받았으면 그 가운데 서라, 이 말은 복음을 받은 대로 행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다윗을 보면 그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 삶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쫓겨 다니면서도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자기를 죽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승리자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4절에 다시 살아나사란 말은 현제 진행형 수동태로 과거에 되어졌던 어떤 사건과 상태가 지금까지 되어 지고 있을 때 현제 진행형 수동태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2000년 전에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보혜사 성령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죽는 삶, 의를 행하는 삶, 죄를 짓지 않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도바울은 부활장이라 고전15장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고 너희들의 사건이라면, 믿는다면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 뿌리를 깊이 내리고 요동치지 말아라,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세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리 조그마한 일이게 흔들립니까? 낙심도 잘하고, 원망도 잘하고, 시험도 잘 들고 이게 우리 모습 아닙니까? 왠 줄 아세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래요.

 

여러분 직상 생활은 더럽고 치사해도 하잖아요. 멀고 힘이 들더라도 생명 걸고 다니잖아요. ? 밥줄이 달려있으니까? 그런데 왜 영생이 달려있는 신앙생활에는 그렇게 못삽니까? 성경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라, 하는데 왜? 걸핏하면 시험 들었다 하고, 섭섭하다 하고, 왜 입니까? 아직 십자가와 부활이 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입니까? 요동하고 흔들리면 흔들리게 하는 사탄만 기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농부는 태풍이 몰아지면 낮잠 자지 않습니다. 농부는 태풍이 몰아치면 밭으로 나갑니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다보면 시험이 와요? 왜 마귀가 그냥 두지를 않으니까, 예수님 믿다 힘든 일도 생깁니다. 그때 주님을 더 찾아야 살길이 열린다는 겁니다. 고난이오고 시험이 오고 내 마음이 흩트러지며는 주저 앉아 있으면 죽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때는 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더 예배해야합니다. 더 찬송해야 합니다. 시험이 오는 것을 느끼면 더 몸부림쳐서 뿌리가 뽑히지 않도록 더 주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더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진정 부활을 믿는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야고보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기다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