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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친밀함으로 나가는 길

11.친밀함으로 나가는 길(11) 말씀에 반응하는 성도(마7:21-27)

by 오용주목사 2018. 3. 18.

11.친밀함으로 나가는 길(11) 말씀에 반응하는 성도

7:21-27

 

여러분! 매뉴얼이란 말을 아실 것입니다. 매뉴얼(manual), 사용설명서, 한자로는 교범(가르칠 교, 법범)으로 기계나 컴퓨터 따위의 사용 방법이나 기능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나, 종업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작업상의 지식과 작업에 착수하고 진행해 나가는 방법 등에 관해 기본적인 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도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에도 신앙 매뉴얼이 있는 것 아시죠? 그것이 뭔가 하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신앙을 성경의 매뉴얼을 따라 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매뉴얼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마7:21-27(참고 - 고전3:10-15)입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보세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무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 매뉴얼에 합하지 않으면 그날에 모두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고, 그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심각하고도 무서운 말씀입니까?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잘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삶과 사역을 위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정경이라 부릅니다. 정경이란 말은 영어로 Canon인데, 그 뜻은 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 신앙의 규범, 기준, 표준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과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위한 기준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약성경 아모스7;7-8절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7: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7: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여기 나오는 다림줄은 건축 도구인데 특히 담을 쌓을 때 위에서부터 비뚤어지지 않게 똑 바로 쌓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다림줄입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 건축 도구인 다림줄을 신앙생활의 기준에 인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다림줄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며, 다 무너지고, 불타고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 신앙은 우리 마음대로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기준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매뉴얼인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매뉴얼을 따라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십시오.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절에 행하다 와 21절에 행하다 둘 다 헬) “포이에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자기들의 행함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함이라는 확신 속에서 굳게 믿고 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했잖아요, “포이에오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함이 23절에 보면 주님에 의해서 부정당합니다.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 못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잘못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쌍한 귀신들린 자들을 고처준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해서 기적을 행해서 기적과 이사를 통해서 연약한 이들을 도와준 것이 잘못인가요? 이것 다 잘한 일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이 오늘날 교회가 열심을 부려가면서 추구하고 행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 하십니까? 왜 주님은 그들의 행함을 불법이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준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을 하기는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2. 그럼 하나님의 기준대로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성경에 나와 있는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매뉴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 아시죠? 하나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라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성경도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준대로 하는 것의 가장 먼저는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하라는 것과 하지마라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 구약 66권을 줄여 놓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 (20:1-17)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삼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육은, 살인하지 말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라.

제팔은, 도둑질하지 말라.

제구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제십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 십계명을 더 요약한 것이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 성경이 말씀하는 의미, 의도를 알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 돌아오라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예배, 기도, 금식, 구제, 헌금, 봉사 등등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행하는 그 행함이 자기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그들은 토색, 불의, 간음을 행치 않았고,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또 그들은 말씀을 열심히 공부했고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기적을 행하는 자도 있었고, 권능을 행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제나 봉사나 섬기는 착한 일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을 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욕을 먹어야 합니까? 당시 이 욕은 가장 더럽고 충격적인 욕이었습니다. 왜 그들의 착하고 기특한 행위가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그들의 행위의 모든 목적이 다 자기목적, 자기 영광을 챙기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장으로 가서 인간의 행위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시죠. (6:1~6)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 영광 챙기기 위해서하는 모든 착한 일과 종교행위가 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법을 행하는 것, 모래위에 지은 것, 하나님의 기준대로 행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들이 주여, 주여 라고 애타게 부르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권능 달라고, 능력 달라고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해서 내가 좀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주여, 주여 부른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러므로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로 반석 위의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석위에 짖는 집은 열심 있는 성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모래위에 짖는 집은 행함이 없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이라는 성경해석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행함으로만 본다면 모래위에 짖는 행함이 더 화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함은 마지막에는 무너지고야 말 행합니다. 왜 이 행함은 자기의 인기, 만족, 가치, 자존심, 영광을 위한 행함일 때 그 착한 행함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외식이라고 합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서 하는 모든 착한일, 종교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길 가운데서 했고, 헌금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했고, 구제를 해도 나팔을 불면서 했고, 금식을 해도 자기가 금식하는 것을 선포하면서 했던 겁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반석위에 지은 집은 그 어떤 행함을 행해도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종교적 열심이나 선행이나, 우리의 예배, 기도, 봉사, 선교, 구제, 헌금을 한번 돌아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나타내고, 내 자존심을 세우고, 나를 드러내고, 자기 마일리지가 쌓는데 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는지?

 

여러분, 내가 종교행위를 하는 모든 것의 결론이 나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라면 나를 나타내고, 드러내고, 내 체면을 세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딤후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아는 자들은 자기의 모든 행위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동되어 말씀이 기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4) 성경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24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하나님의 기준은 말씀을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잘 듣고 있느냐의 관심보다는 듣고 행하느냐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 5, 6, 7장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주옥같은 산상수훈의 총 결론부인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었다면 그것을 실천하라, 실천하는 사람이 참된 제자이다. 이 결론을 우리도 분병이 기억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번 해 보십시다.

 

먼저 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에 밑줄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에 밑줄을 긋고 표시를 해보십시오. 그리고 이 두 구절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어디까지가 같고, 어디서부터 다른지

일 치

다른 것

결 과

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짓는 지혜로운 사람

참된 제자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집짓는 어리석은 사람

엉터리 제자, 무늬만 제자

 

그런데 여기서 집이 무너지는 것은 무엇을 위미 할까요?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이 말씀에 비춰보면 집이 무너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구원받은 사람 아닙니까? 여러분 그렇게 배웠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진심으로 주님 하고 부를 수 있다면, 고백할 수 있다면 구원 받은 사람 아닌가? 확신이 있죠? 고린도전서 21: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1절에서는 주여, 주여 하고 예수님을 부르는데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구원받지 못한다 라고 선언하십니까? 여러분 뭐가 맞습니까? 이 답을 줄 수 있는 구절이 오늘본문 바로 위에 마7;16~2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무슨 말입니까?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포도나무에서만 포도가 열립니다. 무화과나무에서만 무화과 열매가 열립니다. 여러분 왜 포도열매가 열립니까? 포도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해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행동이 신분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신분이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포도열매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being -> doing을 결정합니다. being에서 doing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산상수훈 전체의 말씀을 실천해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참된 제자라면 반드시 이런 산성수훈의 열매들이 너희들의 삶속에서 나타난다 선언인 것입니다. 반대로 이 말은 열매가 없다면 참된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본문 24~27말씀의 핵심 내용입니다.

 

7:24~2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4, 26절의 나의 이 말을 듣고는 저와 여러분 모두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 행하는 자행하지 않는 자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확연하게 나누어 질 것입니다.

 

마치 옛날 출발동서남북을 기억하십니까? 먼저 질문이 나오고, 시간을 주고 난 다음에 O. X로 나누어서면 줄이 생기고 한쪽은 탈락하고 한쪽은 계속 올라가고 기억나시죠? 그런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을 다 섞어 놓아도 나중에 말씀을 듣고 행하는 부류와 말씀을 들어도 행하지 않는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비단 설교뿐 아니라 개인적인 성경읽기, 말씀 묵상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기만 하고 듣기만 하고 묵상하기만 하지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과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 입니까? 지난주일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어떻게 한번 적용을 해보셨습니까? 지난 한달, 지난 1년을 쭉 돌아보시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쪽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쪽입니까?

여러분의 말씀에 대한 태도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건축자에 가깝습니까? 조금만 정직하게 자신을 점검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시작이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은 하지만 단 한 번도 이 말씀대로 실천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안 생겼고 노력도 없고, 관심도 없고, 또 그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함이나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면 어떤 고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이면 좋은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말씀의 실천 없이 기독교 신앙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상한 신학이 있고 아름다운 성경공부와 설교가 준비되어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잘 훈련된 묵상이 개인의 삶을 장식하고 있다 할지라도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 신앙이요, 껍데기 기독교입니다. 껍데기로는 영혼 구원하는 것도, 제자 만드는 것도, 비전도, 미션도 21세기 신약교회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다 보니 임종을 앞둔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합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반응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응하지만 죽은 사람은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살아있는가, 신앙적으로 살아있는가, 죽었는가, 무엇으로 판가름 나는가 하면 반응에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말씀에 반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살아있지만 죽은 자 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성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이렇게 다짐하고 하나씩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반응형 성도가 되겠다고 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죽은 영이 중생하여 살아있다는 증거는 반응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에 반응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반응해야 합니다.

 

1) 성경에 나와 있는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이 말씀하는 의미, 의도를 알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4) 성경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대로 행하는 것이요, 반석위에 지은 집이요,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요,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