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친밀함으로 나가는 길(7) 성령
요14:16-18
우리는 새해 들어와 계속해서 친밀함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월 첫 주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밀함을 위하여 하신 일들 중, 중요한 다섯 봉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창조에 있어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일, 제자들을 부르신 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신 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위하여 하신 일입니다. 오늘은 그 중 성령님을 보내신 사건과 친밀함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구약시대는 하나님과 친밀함은 극히 제한 적이었습니다.
히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과 친밀함을 나누었습니다. 같이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질이 응답을 하고, 같이 사역을 하면서 친밀함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시대에는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우리 각자가 성령님과 친밀함을 나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먼저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아십니까?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여기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여기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 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파라”라는 ~~~곁에, 나란히 라는 전치사와 “클레토스” 부름 받은 자(이) 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파라클레토스는 부르심을 받아 곁에 계신 이, 곁에 계시면서 도와주는 자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다른 보혜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다른”이란 말은 헬) “알로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말은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과와 배의 다름이 아닌, 사과와 사과의 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보혜사가 누구냐? 보혜사의 원조는 예수님이 십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이제 승천하시는 겁니다. 우리 곁을 떠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2. 성령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보혜사, “파라 클레토스”를 영어 성경에는 세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help (헬프) : 돕는 자
counselor (카운슬러) : 상담자, 조언자
comfort (컴포트) : 위로자
정리하면 나의 고통과 연약함에 대해서 동정하실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일어설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분
1) help 돕는 자(헬프)
성령님은 여러분 곁에 계셔서 항상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말씀하시고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고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곤란한 처지에 있는데, 지금 내가 뭔가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여있는데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 이걸 고아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고아와 같은 상한 마음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지난 월요일에도 위암수술을 한 자매를 심방하고 왔지만 여러분 우리가 이런 분들을 찾아가서 위로한다고 하지만 그게 얼마만큼 위로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 마음을 위로 한다하지만 얼마만큼 그 마음을 알아서 위로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마음 아파하는 그 가족들의 마음을 안다면 얼마만큼이나 알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예수님은 고아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아 같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헬프다. 내가 너의 돕는 자다.
아런 설교를 하며 어! 나는 안도와주시던데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은 어떤 자를 도우십니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연약한 자들을 도우시는데 어떤 자를 도우시느냐?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자기가 고침을 받아야 할 병든 자 임을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자, 자기가 구원 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아온 자,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자를 예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 찬양 하다가 떠올라 한 참을 부르면서 은혜를 받는 찬양이 있는데 우리 이레찬양 5장
1.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 그 분을 보기위해 따르네
평범한 목수이신 그 분 앞에 모든 무릎이 꿇어 경배하네
모든 문제들 하나하나 죽음까지도 힘을 잃고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이름 앞에 모든 권세들 굴복하네
2.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소망이 끊어질때
삶의 주관자 되신 그 분 앞에 나의 무릎을 꿇어 경배하네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길 때 비로소 나의 마음 평안해
구원의 반석되신 예수의 이름을 소리높여 찬송하네
예수이름 높이세 능력의 그 이름, 예수이름 높이세 구원의 그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 복이 있도다
마음이 허전 하신 분, 내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독하신 분 오늘 예수님 앞에 나옴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함하는 은혜를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동내 난간도 없는 다리 위를 걸어 학교를 가는데 바람이 불어 그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다 버렸답니다. 여러분 어떻게 했을까요? 집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엄마를 찾은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새 옷을 갈아입혀 줘서 그 옷을 입고 학교를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것 어려운 것 아닙니다. 그냥 엄마 하고 달려가면 됩니다.
2) counselor (카운슬러) : 상담자, 조언자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조언을 듣습니까?
우리가 한 부님의 자녀로 있을 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상담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자녀들이 자라서 이제 엄마, 아빠가 되고 보니 문제가 뭡니까? 이제는 상담할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때 누구에게 상담하고, 누구에게 조언을 받습니까?
제가 목회하면서 정말 힘든 것이 뭔 줄 아십니까? 성도들이 별 중요하지 않는 것은 상담을 잘 합니다. 그리고 조언을 잘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신앙에 중요한 일에는 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혼자 다 결정하고 통보만 합니다.
그때 제가 하는 일이 뭔 줄 아십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조언자가 되어 주세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의 상담자요, 조언자가 되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순간, 순간 성령님이 카운슬러가 되어주셔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가장의 몸부림으로 유지되는 가정이 아니라 카운슬러 되시는 성령님의 지혜로 유지가 되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3. comforter (컴포트) : 위로자
여기 컴포트라는 단어는 com이라는 전치사와 fort라는 명사와 그 뒤에 사람을 칭할 때 나오는 er을 붙여놓은 단어입니다. fort 라는 단어는 원래 요새, 산성, 진지 이런 뜻입니다. 이런 명사에다가 앞에 com을 같다 붙이면 뒤에 있는 명사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그러니까 comforter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요새를 더욱 강화시키다. 진지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다가 er을 붙여서 컴포트가 위로 자가 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등이나 두드려 주고, 위로나 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차원의 위로가 아닙니다. 회복까지를 포함한 의미의 단어가 컴포트라는 겁니다. 최후 승리 자리까지...
엘리야를 보세요.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칼로 죽인 후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 때 엘리야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왕상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절망했는데
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하심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이런 절망의 일이 평생에 한번 뿐이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골백번도 더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엘리야의 모습, 이거 우리 모습 아닙니까?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헬프, 카운슬러, 컴포트 되시는 성령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재와 성령 하나님과 지속적인 친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3. 그러면 성령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가정 먼저는 성령 하나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성령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주 오래된 고전적 예화인데 미국인과 인디언인 친구가 있었는데 인디언 친구가 미국인 친구의 초정으로 뉴욕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화려한 거리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음, 동정
관심이 있으면 듣게 됩니다. 관심이 있으면 보게 됩니다. (정현 뽕잎)
요즘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말들 들어보셨죠. 어떤 직장인이 직장에서 투명인간 취급받는 내용을 인터넷 올렸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같은 팀인데도 업무 공유안하고, 딴 팀한테 심지어는 외부 업체에 듣게 해도 그냥 내가 싫은가 보다 생각하고 넘겼는데, 사람이 가장 치사한 게, 먹는 걸로 그러는 건 진짜 열 받아서 어휴~~~
오늘 출근했는데 점심쯤, 나는 다른 직원이랑 내 자리에서 얘기 중이었고, 한 팀원이 점심 어디다 시켜먹을지 출근한 다른 직원들한테 묻고 다니더라고요 그리고 저랑 얘기 중이던 직원한테도 묻더니 저한테는 안 묻고 그냥 가대요, 제가 개미새끼도 아니고 눈에 안 보였을 리가 없는데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없는 사람인냥 옆 사람에게만 묻고...
요즘 가정에서도 투명인간 취급 받는 아빠들이 많은 것 아시죠? 요즘 아버지는 가정에 찬밥신세인거 아세요. 가정에서 왕 따를 당하는 주인공이 다 아버지들이에요. 애들이 엄마하고만 이야기하고, 엄마하고만 밥 먹고, 아빠는 없는 사람 취급하는 그런 가정이 점점 많아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기분 나쁘세요? 아마 모두 동일 할 겁니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많은 교회 성도들이 시험 들었다고 하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 시험 던 것 중 1순가 뭔 줄 아세요.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하나님을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성령 하나님을 투명인간 취급하지는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무시당하면 근심하듯, 성령 하나님도 무시당하면 근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무슨 말입니까? 이후 모든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첫 단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의 선언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는 구체척인 것이 무엇인가?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상담자, 조언자 되시는 성령님께 자주 나아가 상담을 받고, 조언을 구하고 수시로 묻는 것입니다.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위로자 되시는 성령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어디에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막달라 마리아 좌절하고 실패하고 마음은 찢어지고 사연도 많고 눈물도 많고 소망을 잃어버린 그 여자 웅크리고 우는데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 보잘 것 없는 그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자야 울지 마라, 그 다음 누구에게 임했습니까? 현실적인 두려움 앞에 문을 걸어 잠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보혜사예수님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베드로 그래서 예수님 따를 면목이 없어 초라하게 갈릴리로 돌아가 풀이 죽어 있는 그 베드로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혜사 되신 예수님이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세요. 저는 오늘 이 찬양으로 설교를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이레찬양 29장 “성령이 오셨네”
1.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2. 억눌린 자 갇힌 자 자유 함이 없는 자 /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다네 /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 성령이 오셨네 / 내 주의 보내신 /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 친히 찾아 오셔서 /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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