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리즈설교/친밀함으로 나가는 길

05.친밀함으로 나가는 길(5) 기도함 (눅5:15-16)

by 오용주목사 2018. 2. 4.

2018.2.4                                             05.친밀함으로 나가는 길(5) 기도함

                                                        5:15-16

 

친밀함의 중요성

1:6에 우리가 누구냐? 너희도 그들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른 받는 자들을 : 그리스도의 신부, 지녀, 아들이라 부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 ()

성부 하나님 : 선택 (1:4-5)

성자 예수님 : 구속 (1:7)

성령 하나님 : 부르심(믿음) (1:13)

그렇다면 주님의 것, 신부가 된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친밀함

 

그럼 친밀함이 뭐냐? 하나님을 아는 것, 사랑하는 것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23: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친밀하심이, 나의 회의에 - 소드 : 비빌회담, 어전회의

친밀함이란? 하나님을 하는 것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하나님이 남편을 향한 마음을 아는 것,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친밀하니라 : 다바크 : 찰싹달라 붙어 있다. 굳게 결합하다, 바싹 뒤따르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서로 하나 되는 것 -> 재료 ->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 하나님께 찰싹 달라 붙어 있는 것

5.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 그 사람에 관하여 알려면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고 그를 아는 사람을 찾아 애기를 전해 들음으로 그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정말 아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을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을 만나서 같이 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그 사람을 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름길이 없습니다. 빠른 길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갈망합니다. 이것도 필요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가서 주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으로 채워집니다. 나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이것 가지고 안 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시간을 내어서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단둘이 만나고 싶습니까? 아님 여럿이 함께 만나고 싶습니까? 당연히 단둘이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과 만남도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규칙적으로 새벽이나, 아침에 나아가면서도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한나절 가량은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머무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예수전도단의 홍성근 목사님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란 책에서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것이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아침이나 새벽시간에 규칙적으로 묵상하며 나아가면서도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한나절 가량은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같이 있어야 할 새벽 경건의 시간뿐 아니라 또한 매주에 하루 일주일에 하루 오전이나 오후 또는 저녁 시간중 한 부분을 따로 떼어 주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매달 중 하루나 이틀을 아무것도 안하고 주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 공부를 하면서 주님 자신을 내게 보여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머무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친밀함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합니다. 특별히 구원을 위해서도 치유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 삶의 모델이신 예수님의 기도에서 다음 네 가지의 요소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2. 정기적으로

3. 한적한 곳에서

4. 충분한 시간을

 

우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과 단둘이 만남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졌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왔다.

예수님의 핵심 사역 두 가지 -> 말씀선포 능력행함

그런데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영어성경을 보면

Lk 5:16 But Jesus often withdrew to lonely places and prayed.

often : 자주, 종종, 왕왕

 

우리도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지지 않으면 그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우선적으로 그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 한참 뒤쪽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시27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하나님 제가 지금 무지 바쁘거든요, 이 바쁜 것 처리해놓고, 이 급한 것 처리하고 하나님 찾을게요.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나도 저렇게 친밀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십니까? 저는 눈을 뜨면 가정 먼저 찾는 것이 안경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정말 하나님이 소중한 분이시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2. 정기적으로

우리는 며칠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찾아야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며칠 만나고 며칠 만났으니 이제 좀 쉬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에서는 기도가 삶의 한 습관이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정기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습관 -> as usual -> 여느 때처럼, 평소대로, 늘 변함없이, 늘 다니시던 대로

 

우리도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하나의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습관적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인 기도는 마음이 실리지 않는 건성으로 드리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기도가 삶의 건강한 일상, , 삶의 한 습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3. 한적한 곳에서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기서 말하는 한적한 곳은 반드시 깊은 산속에 있는 기도원이나 수양관 같은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떨어져 하나님께만 관심을 집중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방해 받지 않는 곳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쓰임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왜 회막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회막을 지키려고? 아니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고 싶어서

 

우리도 하나님을 만남을 위해서 이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로 그 앞에 성경책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세요. 그런 상태에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떨어진 한적한 장소가 필수적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과거 춘천시장님이 이 중앙하이츠에 사렸다는 애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앞 베란다에 작은 방을 만들어 그곳을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 이런 이야기 가끔 듣지 않습니까? 어떤 사장님은 사장실 한쪽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아침마다 출근하면 먼저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한적한 장소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주부들인 경우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고 난 뒤 혼자 조용히 한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하시는 분들은 아침 일찍 침대 위가 한적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남들보다 일찍 출근을 하여 혼자 있는 사무실이 한적한 장소가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집에 작은 텐트)

 

한적한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과과 같은 오락을 위한 기기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과 같은 업무와 관련된 기기 등을 그 시간에는 멀리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모이는 기도회에 같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도 매우 좋은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함께 모여서 같이 주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더욱 놀랍게 역사 하십니다.

 

4. 충분한 시간을

예수님은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되 충분한 시간을 하나님 앞에 머무셨습니다.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관한 기록인데, 그 전날은 안식일이라 예수님은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그곳에서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후에는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시고,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몰려드는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바쁜 하루를 지내시고 매우 피곤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일찍 아직 사방이 캄캄할 때 일어나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충분한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위해서는 먼저 앉아 있는 앉아 있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초신자는 최소 30분 이상은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좀 하신 분들은 적어도 한 시간은 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 앉아 있어보면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찬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는 것도 아니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뭐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선을 돌렸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꾸벅 꾸벅 졸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집에서 자지 뭐 여기서 졸고 있어 뒤통수를 때리겠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피곤한데 기도의 자리에 나왔구나, 그래 잘했다 그러시지 않으시겠어요.

 

하나님과 만남의 대한 이런 이해를 가지면 피곤하던지 안 피곤하던지, 졸리던지 안 졸리던지 무조건 그 자리에 갑니다. 졸아도 괜찮아요, 하나님 앞에서 조는 건데, 하나과 시간을 보내는 건데, 잡념에 시달립니까? 괜찮아요, 하나님 앞에서 잡념 하는데 뭐 문제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몸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때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기도가 왜 늘지 않으냐? 예를 들어 그래 오늘은 내가 1시간은 기도해야지 생각하고 앉습니다. 20분정도 했는데 잡념이 듭니다. 그러면 아이고 안 되겠다 하고 일어나 가버립니다. 10분 지나고 나니 할 말이 없어요. 잡념에 시달리고, 졸려요, 그러면 일어나 가버립니다. 이러면 절대로 기도는 늘지 않습니다. 네가 1시간 기도해야 겠다 했으면 앉아서 한 시간을 때우는 겁니다.

 

20분 정도 기도했는데 기도할 것이 없으면 일어나지 마세고 그 자리에 앉아서 찬양하세요, 성경 읽으세요,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세요. 그러다 내 몸이 1시간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기도가 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영성이 아니고 습관이구나, 몸이 따라오니까 기도가 되는 구나, 그래서 여러분도 1시간은 꼭 때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이 1시간을 견딜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영성이 생기면서 1시간의 기도가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 기도의 수첩을 만드십시오. 우리가 많이 기도하고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잘 모르고 기도를 망각해 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우선적으로, 정기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시간으로 나갔는데 하나님을 깊이 있는 만남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일 또 우선적으로, 정기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시간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면 됩니다. 내일도 역시 마찬가지면 모레 또 하나님을 구하여 하나님 앞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지속적으로 충분한 우선적으로, 정기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하나님을 구하여 기도로 나가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 중요한 5번째 하나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단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하느냐? 우선적으로, 정기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만의 회막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만남을 가지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회막은 출애굽기 33장에 나오는 모세의 회막을 염두해 두고 한 말입니다.

 

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여기 회막은 모세가 세운 성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회막은 모세가 성막을 짓기 전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세운 장막을 가리킵니다. 회막이라는 말은 만남의 장소(Tent of Meeting)’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는 이 회막을 이스라엘의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웠습니다.

 

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그럼 끝으로 회막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인데 그러면 하나님과 만나서 뭐를 하느냐?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에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한다는 말은 우리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나 능력과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주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그 가운데 같이 있기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 두 가지가 별 차이가 없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수단인 삶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목적인지 하나님이 줄 수 있는 것이 목적인지, 자녀와 부모 관계에서도 자녀들이 내 손에 들린 것을 좋아 하느냐 나를 좋아하느냐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여기 무너진 장막은 다윗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지은 다윗의 장막을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다윗의 장막이 있었다면 모세에게는 회막이 있었습니다. 둘 다 정확하게 같은 성격의 장막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하나님을 찾는 다윗의 장막이 모세의 회막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지만 온통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여 찾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그 분을 찾아야 할 회막이 무너지니, 우리 주위에 온통 무너진 것투성이 아닙니까? 우리 가정에 부부 관계가 무너지고, 자녀들이 무너지고, 온통 무너진 것 뿐 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 우리가 잘 못되어서 무너뜨린 이 다윗의 장막을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말씀처럼 언젠가 주님 다시 오셔서 이것을 일으켜 세워주실 그날을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