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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친밀함으로 나가는 길

06.친밀함으로 나가는 길(6) 경외함 (시25:14)

by 오용주목사 2018. 2. 11.

                                                   06.친밀함으로 나가는 길(6) 경외함

                                                                                 시25:14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 경외함이란?

경외란? 사전적 의미로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인데, 경외감은 경이로움과 다릅니다. 경외감은 단지 감탄을 연발하는 감정 그 이상입니다. 경외감은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 크고 존경스러워 감당 할 수 없을 때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리켜 경외라고 합니다.

 

여주봉 목사님 :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압도 되어 하나님 앞에서 감격, 감탄하는 것이다. 여기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 원제 : A peculiar Glory

삼상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성경이야말로 가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영광은 그분의 말씀 속에 빛난다. 그리고 그분의 영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실 때, 우리는 그분을 진정 만날 수 있다.

"내가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남은 이유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의 행복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 존 파이퍼

 

우리가 잘하는 욕 중에 미련한 놈이란 욕이 있죠? 여러분 뭐가 미련한 것인 줄 아세요?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성경에서 미련하다는 말은 아이큐가 낮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는 자, 즉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과 훈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미련한 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멸시합니다. 가볍게 여기고, 하찮게 여깁니다.

 

반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뜻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지혜로운 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미련하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 지혜가 부족하다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근본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잠언은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추구와 깊은 이해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생각의 기반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시고, 자기의 생각이 나왔을 때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다 싶은 것이면 잘 점검해서 돌이켜야 합니다.


2. 경외함이 없는 대표적인 예

사울 왕이 믹마스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 한 번 보시죠.

 

삼상13: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13: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13: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13: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13: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3: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3: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사울 왕이 왜 기다려라 말씀을 듣고도 기다리지 못하고 번제를 드렸습니까? 사울 왕은 부득이하여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변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울 왕에게는 애당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모세는 홍해 앞에서 애굽의 정예부대가 코앞에까지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사울 왕은 도망갈 곳이라도 있었지만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홍해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닥쳐봐야 우리의 생각의 기반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지 아닌지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말씀 앞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3. 그러면 여러분 사울 왕은 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을까요?

1:19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하님 경외하는 것을 쉽게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익을 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 왕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지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러 부류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심각하게 문제 삼고, 고민 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 가정문제, 재정문제, 건강문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러나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고민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 하나님을 경외함이 훈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사울 왕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경외함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 답답하고 어리 섞어 보이죠.

 

그런데 이 기다림이 쉽지 않은 것은, 이런 사울 왕과 같은 상황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금은 너의 믿음을 테스터 하는 시간이니 너는 사무엘이 더디 온다고 해도 기다려야 한다. 백성들이 흩어져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너는 경외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다. 이런 응답이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응답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때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뜻도 정확하지 않고, 경외함 없이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도 없고 그러니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마냥 기다려야 합니까? 그런데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는 질문입니다. 마냥 기다려야만 되느냐? 이 질문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이 일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이런 것이 마음에 우선순위로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생명인줄 알고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의 기반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하는 것 보다 어떻게 손해가 나지 않느냐? 어떻게 일이 되느냐? 어떻게 내게 이익이 되느냐?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기반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문제, 가정문제, 교회문제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선이 아니라, 일이 되겠느냐가, 안 되겠느냐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탐심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시작해 이룬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무엇인가 어떤 현상을 유지되던가, 손해를 안보던가, 작은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진짜 하나님 경외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경외함으로 돌이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은 승리라면 그 승리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번 확보하면 그 승리는 오래 지속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정말 중점을 두고 가치를 두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해결, 일이 잘 풀리는 것에 가치를 두는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꾸어 가는 데에는 많은 긴장과 오래 기다리는 시간이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해야, 생각이 경외함으로 딱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생각이 경외함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외함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손해를 안보고 이익을 얻기 위해 찾으면 더 위태로운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찾는 동기를 살펴보면 그 일에서 손해를 안보고 이익을 보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자기 이익을 위해서 찾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렇게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이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뜻이 점점 그 삶 가운데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나중에 무당을 찾아 간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경외함이 없으면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세밀하고도 선명하게 알지 못하는 되는데 이것은 대단히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다 더 위태로운 것은 하나님의 뜻의 풍성함이 줄어든다는 것이 훨씬 더 위태롭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내가 어떤 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 문제가 풀리는가? 빚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 빚이 다 청산되는가? 그런 응답을 받는 분은 드물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할 때마다 나를 사랑하시고, 위로 하시고, 격려하시는 그런 은혜가 점점 풍성하게 되는지 아니면 줄어드는지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나는 이런 일을 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일이 되고 그래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교회 건물을 얻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어싸어싸해서 교회 건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는 몇 년 만에 교회 건물을 구입했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통치를 받고 방해물을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해결하고 이러면서 어떤 결과물을 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모두가 경험하고 그 일을 통하여 더욱더 성장하고 이렇게 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우리가 일하고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일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뜻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에 경외함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오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어떤 뜻이 아니라, 삶의 일반적인 풍성한 뜻이 은혜가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풍성해 지십니까? 아니면 건조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을 방해하는 요소, 환경만 바라보면서,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사람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뜻에 더 헌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경외함을 토대해서 사람의 뜻을 살피려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경외함을 잃어버리게 되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찾아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만나 주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와서 급할 때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급한데 하나님의 뜻을 못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 안 해 주셔서 답답한 상황이다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경외함을 잃어버린 삶의 내용이 그 사람의 삶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항상 도전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나가면 어떻게 어려움을 이겼는지는 모르지만 지나가 있거든요, 항상 어려움이 지나갈 때는 정확한 하나님의 뜻이 임해가지고 명확한 승리가 있어서 결과가 딱 나오는 이런 경우는 드물거든요.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어려움에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돌진하며 하나님 뜻을 추구하고 나갔다는 것, 이런 자는 또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죠. 그럴 때 마다 뭔가 넘어가 있는 거죠. 상황이 지나가 있는 겁니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아요, 실패와 성공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외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그 문제를 넘지 못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막 부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작아지고 경외함이 커져가지고 그 문제를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는 그 문제를 못 이깁니다. 내 마음이 못 이깁니다. 마음이 무너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 내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날 넘어지게 하지 못해서 살아남는 것이거든요.

 

너무 자기 고집이 센 것, 내 뜻이 너무 강한 것 이런 것은 하나님 경외함을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5.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누리는 축복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추구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더 풍성해 집니다.

 

1)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진실로 보호하십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치유의 광선을 발하십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7) 하나님은 그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십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은 우리를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인도 한다는 것입니다.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25:14에서 친밀함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소드하나님의 비밀 회담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자신의 은밀한 것들을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이끄신다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그러한 친밀함을 허락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친밀함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함에 있어서 착각하는 것은 내가 마음먹고 하나님께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친밀함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친밀함이 아니라 경외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경외함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밀함으로 손 내시며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임금 앞에 경외함으로 나갈 때 임금이 친밀함으로 맞아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세에게 우리가 참으로 흠모할만한 친밀함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33:9-11).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 2:3-5입니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이 구절은 우리가 숨겨진 보화를 찾는 것 같이 지혜 되시는 예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을 부어주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숨겨진 보화를 찾는 것처럼 주님을 찾읍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을 부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과 교회를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32:3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