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7. 50.은혜가 은혜 되게 해야 합니다
롬11:1-12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유대인들만큼은 예수님을 환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십자가에 처형을 시켰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율법이 있었고 이 율법을 들었고 알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옛날 부잣집 아이들이 공부 안 한 것을 보고, 가난한 집 아이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었죠?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는데, 마찬 가지로 유대인들이 누구보다 이 복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들이 이 복음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유대인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롬9:31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말씀처럼 그들이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거치는 바위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적잖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율법주의라고 부릅니다.
참 이상하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아시고 그 대안으로 오직은혜, 믿음, 성령, 오직 십자가를 의지하도록 처방을 하셨는데 우리는 그 처방을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처방, 자기행위를 의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우리 행위를 가리켜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말씀처럼 우리의 행위를 걸레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걸레와 같은 행위를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섭고도 심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그 결과가 뭔 줄 아세요?
1.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누군가가 방해를 하고 거부를 하면 하나님의 일이 방해가 될 줄 아는데, 그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들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을 대적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더 들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을 핍박하고 힘들게 하는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그들 가운데 들어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더 나타내십니다.
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우리가 이 복음을 듣게 되고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행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것 또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페턴입니다.
사도행전에 이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온 열방까지 전파되게 하는 계기가 뭔 줄 아십니까? 예루살렘의 핍박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는 이 고난을 통하여 이 복음은 열방을 향하여 나가게 된 것과 같이 유대인들의 복음의 거부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롬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의 호복을 위해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보려고 한 것인 이처럼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영영 버리시는가? 입니다.
롬11:1에 그러므로 라고 시작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렸다는 생각,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다는 하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 우리가 택한 백성 선민이라고 하였지만 여전히 로마의 속국으로 있는 이유기 뭐냐?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구원 받지 못했어, 구원은 실패했다는 자리까지 발전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오늘 우리들 가운데는 없을까요? 어려움 환경을 만나면 하나님은 나를 버렸어,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를 이지경 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버림당한 건가? 나는 저주 받은 건가? 심판 받은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가 택하신 백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우선 사도 바울 자신을 보라고 했습니다.
롬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나를 보십시오. 나는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사도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택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중에 불신자를 위해 기도하다 실망하고 포기하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이것이 기적이고 신비 아닙니까? 그렇다면 내가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도 여러분에게 일어났던 기적과 신비가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엘리야의 예를 들었습니다.
롬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왕상 19:10-14에서 엘리야가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남은 자는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왕상 19:18에서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신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다 멸망 받아 마땅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두셨다는 겁니다. 아무리 시대가 혼탁하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남겨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남은 자가” 어딘 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나 혼자 남았다고 절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알지 못했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듯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칠천의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타락하고 교회가 성도가 세속화 되었어 우리의 눈으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성도들을 그러한 교회를 반드시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여러분에게 가장 든든한 남은 자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주님이실 것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 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남은 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은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롬1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남은 자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은 우리가 뭔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남은 자의 반열에 설 자격이 없지만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느냐? 당연히 있습니다.
롬11: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롬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11: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1: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논리적으로 나를 선택받았다는 말은 선택받지 못한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한 선택이라는 말이 성립됩니다.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다면 또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지 않았고 들을 귀를 주지 않았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의 귀를 열어서 복음을 듣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귀를 막으셔서 듣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본질,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런 설교를 들으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는가?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 줄 아십니까? 나 같은 사람을 왜 택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 믿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들을 귀를 주셨으며, 보는 눈을 주셨고, 깨닫는 마음을 주셨는가? 이 질문은 도저히 풀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버림받은 자에 대하여 왜 버리셨는가? 아 질문에 대답이 안 나오는 것처럼, 택함 받은 나에게 대해서도 대답이 안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밤낮없이 고심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나 같은 놈을 택하시고 은혜를 주셨는가? 고민해도 해답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합니다. 감격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 우리가 은혜로 택하심을 입어 남은 자가 되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가 은혜 되게 해야 합니다.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것이 뭔가?
1) 소극적으로 행위를 의지하는 것을 내리는 것입니다.
행위를 의지하는 않을 때 은혜가 은혜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행위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우리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얄팍한 행위로 가리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2) 적극적으로 은혜를 베푸신 목적에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는 목적을 가지고 베푸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실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보내신 그 목적에 우리의 온 삶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 여러분을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로 택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3절을 읽으십시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당시 안디옥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들의 가르침을 통해 지체들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있었고, 이를 본 안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깨달았을 때,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때부터 그 당시 전 세계를 복음화해 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내신 목적을 위해 온 힘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건 교회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가 없는 동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실 일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함께 하지 않아서 어떠한 동참도 필요치 않는 삶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소중하고 복되고 보람 있고 기쁜 삶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남은 자로 부르셨는지?
어떻게 신앙의 본질, 십자가의 복음의 토대위에 서게 되었는지?
그것을 알고 그 뜻에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삶이 무엇입니까? 신앙 본질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나의 온 삶을 동참하는 이 동역자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행하심의 핵심이 회복과 부흥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죄 많고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조금도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그 거룩한 구원에로 우리를 초대하셨으며, 죄로 인하여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여기기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쏟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의 심령과 삶 속에서 은혜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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