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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45.하나님의 유업(3)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롬9:10-13)

by 오용주목사 2017. 11. 5.

 

2017.11.5                                      45.하나님의 유업(3)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9:10-13

 

구원의 서정, 예지, 예정(선택), 소명(부르심),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하나는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그 하나님의 유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자녀들이 법적으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하고 해서 모든 자녀들이 다 친밀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듯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서 다 아버지의 유업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을 멸시했다.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1) 의식은 있는데 마음에서 떠난 것을 말합니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찬양을 부르기는 하는데 마음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기는 하는데 마음이 없는 입술뿐인 예배를 드립니다.

 

2) 마음은 있는데 의식에서 떠난 것을 말합니다.

 

3) 의식도 없고 마음에서도 떠난 것을 말합니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4)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도 동참하지 않는 것

 

따라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유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1) 신앙의 본질로 회복

2) 의식으로 회복

3)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에서의 회복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에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지지 않은 대표적인 것들이 무엇인가?

1) 율법주의

 

2) 기복신앙

 

3) 인본주의

 

십자가 복음 위에 세워진다는 말의 의미?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이 되는 것

3) 주님이 온전히 나의 주인 되는 삶을 사는 것

4)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사는 것

5) 말씀의 토대위에 오직은혜, 믿음, 성령,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사는 것

 

3. 하나님의 주권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9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9:10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1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9:12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러분 보세요. 고대근동지역의 유업은 장자를 통하여 주어지게 되어있는데 아브라함의 유업이 장자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삭에게 주어졌듯이 이삭의 유업이 장자 에서에게 주어지지 않고 야곱에게 주어졌습니다.

 

왜 일까요? 도대체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 말은 하나님의 선택도, 하나님의 유업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옛날 어릴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죠? 엿장수가 가위질을 하루에 몇 번 할까요? 답이 뭐라고요. 엿장수 마음대로 한다는 겁니다. 어제는 200번 가위질을 했는데 오늘은 100번을 했다고 누가 아니 당신 왜 오늘은 100번만 가위질 하냐고 불공평하다고 따질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입니까? 가위질을 200번 하던 100번 하던 엿장수 마음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삭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장남 에서와 차남 야곱입니다. 그런데 이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야곱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유업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유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창세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모든 유업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그쳤습니다.

선악과 따먹은 것의 의미?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인 됨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산악과를 따 먹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풍요로웠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부부사이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그런데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모든 결핍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이 그쳤습니다. 영생이 그쳐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부부 사이도 당신 때문이라고 정죄합니다.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져 땅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모든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모든 유업이 그쳤습니다. 이 원리는 아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1) 선악과를 먹으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다.

 

2)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유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3)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과를 둘 다 다 먹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유업도 얻을 수 없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이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보존하고 계시는 것 아시죠?

예를 들어 지구의 기울기가 23.5도인데 이 기울기가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언제나 23.5도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연이입니까? 저절로 입니까? 정답은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보존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창조이레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분이 누구입니까? 애굽의 바로 왕이었습니까? 바벨론의 왕들이었습니까? 아니면 로마의 황제들이었습니까? 오늘 이 시대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분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을 인도하셨던 하나님, 다윗의 삶의 여정을 인도해 가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여정을 인도해 가심을 믿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한 민족 이스라엘 택하였습니까? 그들이 잘나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양자 삼으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것, 부모님의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어나게 하셨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 아내를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습니까? 그때 실수로 잠시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그 곳에, 그 환경에 두신분이 누구시라고요?

 

여러분을 춘천이례교회로 인도하신 분이 누구라고요?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입술로는 인정한다 하면서도 우리가 인정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뭘 보면 알 수 있는가? 우리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모세입니까? 아론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하나님이심을 믿는 다면 그 곳에서 묵묵히 그 길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때에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때를 인정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때가 차매를 말씀합니다.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보세요.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왕의 떡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그 해몽대로 떡맡은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게 되고 술맡은 관원장은 다시 복지하게 됩니다. 이 일로 요셉은 술맡은 관정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내가 억울한 누명으로 이곳에 들어왔는데 나가거든 왕에게 잘 말씀드려 달라고, 아마도 요셉은 내가 다시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는 지금이 아니라 그로부터 2년 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왕 삼은 것은 후회한다 말씀하시며 이세의 아들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 다음날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그예) 아브람을 보면 창12:1, 2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큰 민족, 복의 근원을 약속합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때는 창22장에서 이삭 낳게 되는데 아브람에게 75세에 약속을 주셨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진 때 100세로 무려 25년 이란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 요셉 -> 37:7-9(비전) ->형들에게 팔리움(17) ->노예시장 ->보디발의 총무 ->감옥 ->41:41(총리,30) ->13년 정도

 

) 다윗, 삼상16:13절에 왕의 기름부음을 받지만 실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10-13년 후였습니다.

 

) 바울, 9(예수님 만남) ->9:15(소명, 아나니아를 통하여) ->26:16-18(그때 받은 비전을 말하면서 사42:7 예수님의 오심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의 연속선상에서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아요) -> 9:17(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 ->11:19-26(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부름) ->13:1-2(안디옥교회에서 파송) -> 10년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게 된 대는 그들이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출애굽하게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된 것도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의 주님으로 오실 때도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인정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모르면 조급하게 되고, 낙심하게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게 됩니다.

 

1907년은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이후 100년이 지난 2007년 온 나라교회가 어게인 1907면서 야단이었는데 부흥은 무슨 부흥 도리어 성도수가 더 감소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을 부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 부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부흥으로 임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조급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몇 년을 기도했는데 안 이루어졌다고요? 그것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다. 그럼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실 것을 인정하고 믿고,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영적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십니까? 아니 그 방법에 내 생각, 내 방법과는 완전히 달라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십니까?

 

성경에 하나님의 방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 뱀이 나와 백성들을 물어 죽어가고 있는 그때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뱀에 물려 죽어가는 그들에게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그것을 처다 보게 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법궤를 메고 여리고 성을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로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방법, , 길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내가 잘못을 하지 않고 상대방이 잘못을 했는데 나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 내 자녀들을 위해 쓰기도 부족한데 하나님의 일에 물질을 원하십니다. 여주봉 목사님께서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시간적으로 건강 적으로 포도나무교회만 섬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시간을 건강을 열방을 위해 쓰여지기를 원하시므로 다시 열방을 향해 나간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이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면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셨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말씀 아닙니까?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유업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얼마나 혼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 혼미한 세상 속에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 말고 대안이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어떡해야 한다고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의 하나님의 주권의 상징인 여러분의 선악과는 안전하십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마무리를 송명희 시인의 곡 나 가진 재물 없으나찬양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찬양을 찾다가 이보다 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찬양이 없는 것 같은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성마미로 태어났는데, 여러분 뇌성마비는 생각은 정상인과 똑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뿐인데요, 이 송명희 시인이 얼마나 자신을 저주했으며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승복한 찬양이 이 찬양 아니겠습니까? 오늘 송명희 자매의 승복이 하나님을 향한 저의 승복이 되길 원합니다. 가사를 생각하시면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