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43.하나님의 유업(1) 신앙의 본질로의 회복
(하나님 사랑하는 것에서의 회복)
롬8:35-39
지난 2주 동안 새물결선교회에서 제36차 십자가와 성령 컨퍼런스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주제는 십자가 복음의 유업이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를 통해 십자가 복음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을 요약하면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 으로 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삶을 롬5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의 삶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복음이 복음된 자의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 된 삶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7절에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 상속자”라고 말씀합니다. 상속자에게는 특권이 있는데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유업이 무엇인가? 롬8:26-34절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17-18)
2)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기도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26-27)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28)
4)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한다. (29)
5)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31)
6)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32)
7) 정죄감에서 보호하신다. (33-34)
8) 회복과 부흥(이사야 하반부)
이 모든 것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유업인데 이 모든 유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즉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러한 유업을 과거 받았으며, 현제 받고 있으며, 미래 받을 것입니다.
1. 오늘날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 아닌가요?
출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기 “함께 있으니라”라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실제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다윗에게 함께 하심은 막연하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말씀하시고, 필요를 채우시고, 의중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의 특권이며 하나님의 은혜인데 신앙이 타락하면 그 증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지만 떠난 것조차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알면 하나님 앞에 애통하고 엎드리기라도 할 텐데 모르니 더 심각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때에는 실재의 차원에서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실재 내 삶 가운데 작동되고 있는가? 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실재적으로 내 삶 가운데 운행하시는가? 동행하시는가? 이러한 차원에서 내 신앙을 보아야 바로 보게 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 지키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의중을, 목적을, 길을 보이시는 하나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이러한 하나님의 실재가 우리와 함께 하는가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보아야합니다.
오늘 교회가, 성도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지 못해서 아닙니까? 그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너희가 정말 예수를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여 달라는 말 아닌가요?
오늘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돈이 없어서도 아니요, 집이 없어서도 아니요, 양식이 없어서도 아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2.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에 있어서 황금률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대하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슥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지 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돌아오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존중하신다.
이 모든 표현들은 다양하지만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멸시한다.
그러면 우리 삶속에 왜 반드시 나타나야할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떠난 것의 의미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안 떠났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며, 하나님을 버린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안 떠났습니까? 그럼 안 떠난 증거가 무엇인가? 우리는 종교적 의식을 잘하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보세요, 이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을 분 아니라, 월삭과 모든 절기와 모든 대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많은 살진 짐승들을 희생으로 드렸습니다. 그들은 많이 기도하고 금식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존중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이렇게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멸시했고 멀리 물러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잘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떠난 것, 버린 것이 뭐냐? 그것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전 존재로 사랑하는 삶에서 떠난 것을 하나님을 떠났다 말합니다. 이들은 수많은 의식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것은 행동 이전에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도 이점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활동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급진적으로 이동하는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일정한 진행과정을 거칩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부부사이가 멀어지는 것도 마음에서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것도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 되는 것이 그치는 순간 시작되는 것입니다.
외도가 뭔 줄 아세요? 아내 한 사람으로는 부족한 것이 외도입니다. 남편 한 사람으로 마족하지 못합니다. 아내도 필요하지만 다른 여자도 필요한 것이 외도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으로는 한 분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한분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이레찬양 7장,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주님의 크신 사랑 찬양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신 주, 나의 모든 삶 변화 되었네, 크신 주의 사랑 찬양해
이 찬양이 신앙의 본질을 노래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입술로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하나님만 사랑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실제 내 삶은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주님 한분으로는 부족한 겁니다. 세상 사랑으로 가득하고, 세상의 돈이 힘이고, 더 넓은 아파트, 더 비싼 자동차가 힘이고,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소망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십니다. 여러분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유업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이 이사야 시대보다 훨씬 더 타락한 것 아십니까? 훨씬 더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때는 종교적 의식이라고 있었지만 이제는 종교적 의식조차도 없어지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영적으로 결핍하지는 않는지,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면 나타나는 특징이 결핍입니다. 탕자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 되시는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주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십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통치, 인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고, 내 주인이신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그럼 우리가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유업이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해답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도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주일날 예배를 빼먹지 않고, 십일조도 철저히 드리는 사람이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도 빠지고, 십일조 액수도 커지면서 십일조도 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지지 시작합니다. 그럼 그들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면합니다. 그 의미인즉 다시 예전처럼 예배를 더 잘 드리고, 기도회에도 잘 나오고, 헌근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약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면, 이사야나 호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의식이 그들 가운데 차고 넘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시대만 하더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수없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 되는 자리,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는 자리,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 우리는 이것을 호세아 6:1,3절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6;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면서 3절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보십시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1절과 3절의 내용은 정확하게 같은 것을 말함을 우리는 문맥에서 의심할 나위 없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은 전혀 그러한 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그분 자신을 간절히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의 뜻, 의중, 목적, 길을 간절히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호6:3절에 나와 있는데 보시죠.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리하면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황금률의 내용처럼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아침에 되면 해가 뜨듯이 반드시 그들에게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유업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유업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늘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는 시대입니다. 단 하루도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지 않는 날이 없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 시대입니다.
왜 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 먼저 믿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우리 믿는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유업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쳤습니다.
우리의 보고는 모두 비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함께 하심이 사라진 것은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믿는 성도들 개인이나, 가정을 보면 억압은 이루 말도 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것은 허공을 외치는 주문에 불과 하고, 기도는 하지만 기도응답은 아예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모든 정죄감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 이런 말들은 그저 성격에나 있는 말씀이지 내 삶 가운데 일어나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내 삶에 단 1%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떠난 줄도 모르는 이 비참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우리를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그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만이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다시 신앙의 본질로 돌이키는 은혜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이 찬양으로 설교를 마무리하기를 원합니다.
찬송가 528장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면 우리를 기다리네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 하려나
3.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 우네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후렴) 오라 오라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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