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5 42.누가 정죄하리요
롬8:31-34
우리는 지난주일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부터 천국에 이를 때 까지 이 땅에서의 삶을 성화의 과정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하면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진전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화란? 교회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삶을 말합니다. 과거의 죄의 종 된 삶에서 이제는 전혀 다른 신분,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이 삶은 성경은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이라 말씀합니다. 이 구별된 삶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1)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요, 2) 하나님의 목적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왜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 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이 삶을 통하여 믿는 않는 자들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의 공격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사탄, 마귀입니다. 그 원수가 어떻게 공격합니까?
우리를 대적 합니다.
성경의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두 나라, 즉,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나라가 서로 대적하는 구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여 궁극적으로 사탄의 지배아래서 신음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이 일을 결사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를 대적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이 세상의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대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나에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한 교회 지체들.... 뿐만 아니라 사탄이 사용하는 도구는 내가 쉽게 넘어지는 나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넘어진 것을 생각해보면 매밀 다른 것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똑 같은 것에 반복적으로 넘어집니다. 분을 잘 내는 사람,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을 사탄은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를 대적합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목말라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것에 넘어집니다. 돈에 목말라하는 사람은 결국 돈에 넘어지게 됩니다. 세상 쾌락에 목마른 자는 결국 세상쾌락에 넘어지게 되고야 합니다. 목사가 교회 사이즈나, 성도 수에 목말라하면 결국 그것이 자기의 올무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여러분 각자가 사탄의 도구가 되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대적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약한 부분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에 조심하셔야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사탄의 노리개 감이 됩니다.
마4장 시험장
그러면 이 원수의 방해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 잘 아시고 처방을 내리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롬8:3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단순히 아 그래 하나님이 내 편이야 정도로만 이해하지 말기를 바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한다. 여러분 약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이 그 연약한 부분을 위해 주시도록 은혜를 구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자기의 연약함을 이야기하면 나는 원래 그래, 원래 그렇게 때문에 은혜를 구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붙잡아야 할 것에 목말하게 하시고, 내가 붙잡지 않아야 할 것에 목마르지 않기를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에 목마른 자가 되도록 은혜를 구하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은 환경을 도구로 이용하여 우리를 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죠? 그들이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10:2로 극명하게 나눠집니다. 10명의 보고는 그 땅에 거주하는 자들은 다 거인들이다,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와 같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보고합니까? 그들도 똑 같은 상황을 보고 온 것 아닙니까? 10명의 말이 맞거든요, 그러나 그 말이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래서 내가 그 눈으로 보니까 그들은 우리 밥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기 부정적 보고를 한 10명과 여호수아 갈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 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아는 것과 인식의 차이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여정 속에 원수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 때 반드시 가져야할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나와 함께 하신다. 내 편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심되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때로 내가 실패, 실수의 자리에 빠졌을 지라도 그 실패의 현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십자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마치 탕자의 실패의 현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듯이 우리 또한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약한 부분에 은혜를 구하십시오. 내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것에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2. 마귀는 정죄 감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여러분 정죄감은 우리 생각을 통한 사탄의 영적 공격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도 생각을 통한 공격이었다는 것 아시죠?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이게 단순히 하와의 생각이 아니라 그 배후에 사탄이 있는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것이 이게 단순히 가룟유다의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찬 가지로 사탄은 오늘도 우리 생각에 정죄감, 죄책감을 심어놓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 언제 가장 낙심되고 절망이 되던가요? 정죄감, 죄책감이 들 때 아닙니까?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정죄감이 들 때가 있죠? 언제 정죄감이 민물처럼 물밀 듯 밀려오세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과거 예수 믿기 전 모습이 나타날 때 아닙니까? 이 정죄감은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이 정죄감이 몰려올 때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정죄감은 사탄이 우리 마음에 넣어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죄감에 빠지면 그 심각한 부작용이 뭔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흔들립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흔들이니 신앙 전반적인 것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인도, 보호, 기도응답. 필요를 채우심...우리의 신앙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비슷한 어려움을 만나도 결과는 완전히 다른 것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 사람은 완전히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뭔 줄 아세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 차이입니다.
내가 구원 받았겠나? 나를 보니까 흔들려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영적 무기력증이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죄 감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정죄 감을 처리할 수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그런데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생각에 정죄감, 죄책감을 넣어줍니다. 네가 그러고도 구원받았다고,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네가 다른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럴 때 마다 우리의 구원이 흔들리는 겁니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하나님, 저 인간은 선택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고발을 한 다해도 하나님께서 한번 선택한 선택은 취소되는 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여러분 고아원에 가면 부모 없는 고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큰 기업의 회장님이 아이를 한 명 입양하려고 고아원을 찾은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고아들 중에 한 아이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선택의 근거는 그 아이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잘생겨서도 아니고 어찌 보면 가장 못났고, 가장 연약한 부족함이 많은 것을 알면서 그 아이를 선택한 근거는 딱 하나 그를 사랑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많은 다른 고아들이 이 회장님께 회장님, 회장님이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저 아이는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하고 싸움질도 잘하고, 잘 때 오줌도 싸고 고자질을 하는 겁니다.
이 때 선택을 받은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 내가 너희들이 고자질 한 대로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붙잡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마귀가 끊임없이 정죄 감을 심어줄 때 마다 정죄 감으로 나는 구원을 받지 목한 것 같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은 바를 버리실 거야 코가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그래, 하나님은 이런 나를 아시고도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뭐라고요? 십자가, 십자가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4. 칭의, 의롭다 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선언해 주신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심어놓는 정죄감, 죄책감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여러분의 자녀가 많은 돈의 빚을 졌는데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아들의 빚을 대신 다 갚아 버린 겁니다.
아, 그런데 빚쟁이가 또 찾아와서 빚을 갚으라고 야단인 겁니다. 이 때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내 빚을 대신 갚아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 이 아들이 아버지가 빚을 대신 갚아 주셨다고 하긴 했는데, 맨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데 뭐 내가 예쁘다고 그 많은 빚을 대신 갚아주었겠나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 죄의 값은 사형,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대신 정죄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 용어로 “속량”이라 말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결과 우리를 칭의, 의롭다, 죄 없다,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잘 못을 용서한다. 내 감정은 아닌 것 같지만 아버지가 용서한다 하였으니 그 말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진리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저는 바둑을 전혀 못 두는데 바둑을 둘 때 상대편이 이렇게 공격을 하면 이렇게 막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 가지로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나와 함께 하신다. 내 편인 것으로 막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너 같은 게 무슨 구원을 받았다고, 구원 받을 자격이나 있어? 공격하면 어떻게 응수해야 하느냐? 무슨 소리,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는데.. 그렇게 응수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를 때마다 야, 너 그러고도 예수 믿는다고, 내가 네가 지은 죄를 아는데 너 같은 게 구원은 무슨 구원 이렇게 공격하면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탄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 이유는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이며, 또 하나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가 죄에 넘어질 때 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저 영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정죄감에서 자유케 되는 능력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설교를 여기까지 들으면 이제는 죄를 지어도 정죄감에서 자유하고, 죄를 지어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으니 이제는 마음껏 자유하며 살아도 되겠네 이게 아닙니다.
요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감동만 받고 끝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들 앞에 책잡힐 짓을 이제 다시는 하지 마라, 다시는 죄 가운데 거하지 마라, 오늘 우리의 문제가 뭔 줄 아세요? 우리 신앙이 왜 이렇게 저질이 되었느냐하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것만 붙잡고 그러면서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 그러면서 그 다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이 말에는 귀를 안 기울이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신앙 가운데 은혜가 떨어지면 나타나는 부작용이 뭔 줄 아세요? 서로 정죄가 많아요. 가정에도 교회에도 은혜가 떨어지면 비난이 난무합니다. 그 비난의 대표적인 것이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는 겁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나 때문에” 은혜가 떨어지면 비난. 판단, 후욕, 비방, 이간질 수군수군 이런 게 전화로, 카톡으로 구역모임에서 난무합니다.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정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맛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귀에게 책잡힐 짓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넘어 질 수 있는 있습니다. 그러니 그 넘어짐에 끌려 다니는 것은 마귀적인 것 아세요?
여러분 감동 받는 것 좋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이 말씀 앞에 벅찬 감동을 받으십시오. 그러나 감동만 받고 끝내면 안 됩니다. 이 준엄한 주님의 말씀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처럼 죄 짓지 않으려고, 밭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는데 누가 나를 함부로 정죄하겠는가, 이 담대한 선포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이 준엄한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처럼 죄 짓지 않으려고, 밭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사탄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단호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설교는 이레찬양 14장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지금도 우리들을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려 하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 계시네
지금도 내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시 예수님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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