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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40.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목적(롬8:28-30)

by 오용주목사 2017. 10. 1.

2017.10.1.                                                  40.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목적

8:28-30

 

 

로마서 8장의 흐름

-결코 정죄함이 없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우리를 양자 삼아 주셨습니다.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고난 가운데 고난을 잘 견딜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주셨는데 바로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의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도우신다.

 

또한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 꼭 붙잡아야 할 말씀이 있는데 바로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바울의 표현법을 보면 알거니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한다”.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표현은 그만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 특별히 고난 가운데 무엇을 알아야 한다고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의 의미는?

 

사실 오늘 본문 로마서 28장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그런 구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떤 고난이 찾아오던 어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던 결론은 항상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좋은 결론이 맺어진다고 하니까 이런 말씀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말씀일수록 우리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아하는 말씀일수록 성경에서 의도한 의도를 놓쳐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구절만 내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사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이며,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인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에만 관심이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말씀에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데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만 관심이 있고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의 뜻이 선입니다. 그러니 롬8:28절은 이렇게 읽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모든 일이 합력하여입니다. 여기 모든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믿음, 기도, 헌신, 섬김, 희생, 눈물, 이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인생에서 지우 버리고 싶은 삶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모든 일들입니다. 이 모든 일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없이 퍼즐을 완성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의 조각(기쁨. 슬픔, 실수, 실패, 상처)들을 다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세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처를 입었지만 하나님은 그 상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바울과 신라가 복음을 전하다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은 그 환경을 통하여 간수와 그 집이 구원 얻게 하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여러분의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것을 신학적으로 구원의 서정이라 하는데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예지

미리 정하셨으니 예정

또한 부르시고 소명

의롭다 하시고 칭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영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이 말씀을 시제가 과거 완료형으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들을 반드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도, 실수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믿는 자들은 현실적으로 어디에 와 있느냐? 부르심을 받고 의롭게 된 자리에 와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러 의롭게 하신 자리에서 영화롭게 하신 자리의 시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에 의해 시작됐고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고야 말 하나님의 뜻과 약속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중요한 말씀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현주는 언제나 성화입니다. 구원은 받았고 승리와 영광은 미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하죠? 부르심

홍해를 건너죠? 칭의

고전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10: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광야 40년의 길을 걷죠. (성화)

그리고 마침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영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주소는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 이제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 주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야의 기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이것을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거룩할 성, 될 화, 성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성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면,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진전 정도로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성화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수주일하고, 십일조하고, 새벽기도하고, 전도하고,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고, 제사 안지내면 그 사람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성숙한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성화라 할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성화는 이정도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목적을 위해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한 예수님을 닮는 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어렵죠? 이 말은 좀 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이하면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것은 우리의 과거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삶을 말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을 사도바울은 롬6: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 사는 삶, 새로운 삶, 새로운 차원으로의 삶을 성화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 주소에서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이해가 되신가요?

 

새로운 삶을 예로 들면 여기 죄를 짓고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 받을 날만 기다리던 사형수기 특별사면이 되어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화란 사형수가 감옥 안에서 이전보다 좀 더 착하고, 말 잘 듣고, 화도 들내고, 성질도 덜 부리고, 거짓말도, 욕도 덜 하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삶의 차원이 다른 자유인으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6:4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보세요! 성화란 과거 죄의 종이 되어 살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그래서 새 삶을 산다는 것은 더러웠던 인생을 깨끗한 인생으로 산다는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차원에서 생각하지 마시고, 존재적, 신분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나, 내가 어떤 신분이 되었나, 이것은 아주 약한 비유이지만 과거는 누구의 딸이었다가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사는 것과 같습니다. 딸과 아내의 삶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이 듯이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런데 우리 문제가 뭔 줄 아세요? 우리는 성화를 늘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책하며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신분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한 삶 -> 구별되는 삶 -> 구별되는 삶이란? 주일날 예배드리고, 식사할 때 기도하고, 짜증도 덜 내고, 이런 것도 포함되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구별된 삶은 이것 이상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미리아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칭의 의롭다하셨는데 겨우 몇 가지, 하고, 안하고 이정도 하게 하려고 이 엄청난 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셨겠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그 하나님의 권능과 크신 팔로 인도하셨는데 겨우 몇 가지하고, 안하고 이정도 삶을 살게 하기 위하였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별된 삶이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2) 하나님의 목적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삶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삶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할 삶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령, 오직 십자가에 의한 삶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영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영광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반사한다, 나타낸다, 보여준다, 증거 한다 의뜻입니다.

 

우리가 왜 1)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2) 하나님의 목적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입니다. 이것이 칭의와 영광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

 

여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그 그림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그림을 감상하지만 그 그림만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그림을 통하여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인격과 숨결과 영감을 보게 됩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여러분 우리가 왜 참아야 한다고요? 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겨야 한다고요? 왜 정직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왜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요? 그래야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올린 어머니의 기도

창조주이며 전능자라고 불리는 당신께 기도드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3년 전 우리 아이들을 살려 달라는 마지막 기도를 외면했었으니까요? 당신께 등 돌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너무 너무 원망 섭섭한 마음이 있어 가지고 이제 등 돌릴 거라고, 그랬는데 그 다음 내용이 너무 은혜가 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당신께 등 돌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당신이 계시더군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어 그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던 팽목항에서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해야 했던 국회 앞에서도, 내리쬐는 땡볕을 피할 그늘 하나 찾기 어려웠던 광화문에서도, 하수구 냄새에 시달려야 했던 청원 동사무소에서도, 침몰지점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동거차도에서도, 그리고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 신항에서도 당신은 계셨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눈물 가득고인 눈으로 다가와서 안아주시고 같이 울어주시는 따뜻함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슬픔을 당한 이웃, 울고 있는 현장에 가서 그 분 손 한번 잡아주면 그게 하나님을 느끼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칭의와 영화 사이의 삶이 지금 우리의 현주소인데 이 삶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 성화의 삶이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것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말은 사형수가 자유인이 되듯 죄인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의 새로운 신분의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새로운 삶을 무엇이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이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타내는 삶을 사셨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 자녀의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이 일을 여러분의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그곳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일을 교회 공동체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일이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통하여 남편이 아내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하십시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가정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이웃이 직장 동료들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십시오. 교회가 이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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