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7 38.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롬8:26-27
우리는 지난 시간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광과 고난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 고난과는 차원이 다른 영광과 고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우승하여 트로피를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는 그런 차원의 영광이 아닙니다. 또 온갖 더러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 성공했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말하는 영광은 하나님께서 나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타나십니까?
지난주일 오후 삶 공부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 크기의 일로 초청하십니다. 이때 우리들은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러면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결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게 되고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구약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당시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 아닙니까? 결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심판을 내리는데 3년 동안 비도 이슬도 그치게 하였습니다.
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비의 신, 풍요인의 신으로 믿고 섬겼는데 비가 오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 갈팡질팡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바알이 참 심인 것 같기도 하는 겁니다. 이 때 하나님이 참 신인지 바알이 참 신인지를 가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한 사람과의 대결이었습니다. 갈멜산에 두 제단, 바알선지자들의 세운 제단, 엘리야가 세운 제단을 세워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재물을 다 태우는 쪽이 참 신인 것으로 대결을 합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려와 하나님 참 신이신 것을 이슬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엘리야가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그 일로 엘리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왕상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말씀대로...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로 엘리야를 부르셨죠? 그 부르심에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결과 왕상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엘리야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하는 대가 지불이 엘리야의 고난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잘 나타내는 찬양이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여러분 이것이 주님의 영광 아닙니까? 이 일에 동역한 우리의 영광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떤 영광을 바라세요.
그럼 고난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이것이 우리의 고난입니다. 이 찬양은 이어서 이 고난 후 우리가 장차 누릴 영광을 노래합니다.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에 동참하며 따라 가노라면 고난을 당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는 그 고난을 홀로 치러내라고 말씀하시 않으십니다. 그 고난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을 잘 이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강력한 도구를 주었는데 그게 뭔가 하면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엔진과 같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심장의 박동과 같습니다. 아무리 겉이 화려한 자동차라 할지라도 엔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리 겉으로 멋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장의 박동이 멈춰버리면 겉의 화려함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데 기도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겔3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겔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알아서 때가되면 이루어주겠지 합니다. 이런 자세는 잘못된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을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기도해야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한 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신뢰하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가 중요한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특별히 오늘 사도바울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라고 할 때 우리의 연약함은 기도생활에 있어서 연약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기도생활에 있어서 연약함이란 무엇일까요?
1. 그것은 내가 무엇을 기도해야하는가를 모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에 가서 울어도 누가 죽었는지 알고나 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밤새 실컷 울고 나서 아침이 되어서 도대체 누가 죽었습니까? 한다면 이게 말이 되겠습니까?
기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내가 금식기도, 철야기도, 새벽기도, 나홀로 기도를 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가는 알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때 당하는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을 잘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데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기도한다면 이것처럼 답답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내 기도가 마땅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그 기도는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루 세끼 밥 먹는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밥도 먹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마찬 가지로 기도에도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기도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가 우리 기도의 가장 큰 방향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나름대로 기도를 좀 해 봤는데요” 하는데 내 나름대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고, 하나님의 생각에 자기의 생각을 맞추고, 하나님의 방법에 자기 방법의 일치를 이루어 가는 과정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기도가 바른 기도인가를 알지를 못한다면 기도의 중심을 잃어버린 것이고, 기도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의 열심은 강조지만 기도의 방향을 놓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도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이 기도의 방향성입니다.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길인지 어떤 기도가 잘 못된 기도인지를 알아야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환경에 빠져 있을 때 기도의 바른 방향을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배를 항해하는 선장들이 큰 파도를 만났을 때 그 배의 방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큰 파도가 몰아질 때 90도 수직방향으로 돌파해야만 뚫고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파도는 반드시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파도를 피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파도가 배의 측면에 부딪히게 되고 파도와 측면으로 부딪힌 배는 여지없이 전복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오늘 로마서 8장에서처럼 우리의 삶에 혹독한 시련과 고난이 찾아왔을 때 기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가면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도의 방향을 잡지 못하면 갈 길이 멀죠. 문제는 꼬이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의 연약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의 방향을 잘 잡지 못합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위험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축복이 될지 나에게 해가 될지, 재앙이 될지 알지 못한 채 막 구합니다. 한치 앞을 모릅니다.
여러분 특히 우리의 기도에 욕심이 들어가면 기도의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기도가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버리는 기도는 온전한 방향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위험한 기도가 뭔 줄 아세요. 내가 구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구하는 기도입니다. 특히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대단히 힘이 듭니다. 왜 내가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그 뜻을 모르면 내가 당하는 고난은 내 삶에 저주가 됩니다. 죽고 싶은 거지요.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고난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고난은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 고난이 빨리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더 중요한 것은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것은 고난이라는 돌을 골라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지 못할 때 우리를 도우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우리의 기도의 연약함을 돕는 성령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성령의 도우심은 단순히 우리의 기도만이 아니라 내 삶의 전 영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 헬)파라클레토스, 즉, 내 곁에서 나를 돕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도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로 알게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고생이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고난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당하는 대가지불은 나 혼자만이 당하는 나 홀로 고난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고난 가운데 혼자 악을 쓰고 죽어가는 인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여기 “도우시나니” 이 말은 ‘넘어지지 않도록 곁에서 붙잡아 주다, 지탱해 주다’의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게 지팡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게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게지팡이가 받쳐주듯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있는 것은 지게입니다. 그리고 그 지게가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도우신다는 말을 오해한 나머지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그런데 우리 기도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다해 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회복시켜 주옵소서, 부흥시켜 주옵소서, 기도는 하는데 진작 본인은 회복을 위해, 부흥을 위해 내가 잘 못했다는 말하는 것조차도 자손심이 상해 하지 못하는 것 압니까? 그러면서 우리 가정을 회복 시켜 주옵소서, 회복 시켜 주옵소서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정연호 성도님 펜션에 손님이 왔다 돌아갔는데 방이고 싱크대고 화장실이 테라스를 완전 엉망으로 해 놓고 갔다고 합시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돕는 다고 하셨으니 나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 알아서 청소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시던가요? 아닙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손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남편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아내를 변화 시켜 주옵소서, 자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여전히 남편을 무시해요, 아내에게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해요, 여전히 자녀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길 기대합니다. 이게 아닙니다. 내가 남편을 아내를 자녀들을 최선을 다해 섬길 때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말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까? 또 경험하고 있습니까? 만약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거 대단히 심각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경험하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은 인격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우리가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기도는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합니다. 기도가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하는 것은 무엇인가?
롬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 = 성령 안에서 기도인데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는 구체적으로, 성령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 성령님 제가 무엇을 하지 말까요? 성령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특히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도우심에 있어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결혼을 하고 자녀가 태어났을 때도 기뻤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를 때 그 기쁨도 말 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 삼은 것도 기쁨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라고 부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말 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를 왜 고난 가운데 두시겠습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난 가운데 두시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난을 하락하시고, 고난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살피시는
본문 가운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를 왜 굳이 너 놨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고난기만 있어도 원망과 불평을 솥아 내는 우리를 향해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내 마음도 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아 저렇게 마음 아파함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좀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는 이 찬양으로 마무리하기를 원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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