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권별설교/로마서

36.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자의 모습(롬8:12-17)

by 오용주목사 2017. 9. 3.

2017.9.3.                                     36.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자의 모습
                                                                                      롬8:12-17


우리는 2017년에 들어와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라”는 표어아래 성경 66권 중 복음의 보고인 로마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롬1장 인사말에서 사도바울은 참된 복음은 세상의 황제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참된 복음임과,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시도 그분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론에서 먼저 로마서 전체의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이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렇게 서론에서 결론을 내리고 이제 본론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여기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말은 고의적으로 의도적, 계획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죄 못지않은 똑같은 죄가 있는데 그것이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자랑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죄입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죄의 결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3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 갈 죄인이 의롭게 되기 위해 열심히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 하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대안을 제시해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이신칭의 입니다. 이것이 3장입니다.

4장에서는 믿음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로마 유대인들을 향하여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의 행위나, 할례나,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 말씀합니다.

5장-7장까지 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누리는 결과물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5장에서는 죽음에서 자유함을, 6장에서는 죄에서 자유함을 7장에서는 율법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1-2절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결코 정죄함을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말씀합니다. 여기 “정죄”란 말은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유죄판결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죄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기 10억의 빚을 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정죄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10억을 대신 갚아주었다는 겁니다. 결과 죄 없다 판결이 난 것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인된 우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땅땅땅,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자에게  죄 없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롬8: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데 여러분 사탄은 악덕 사채업자와 같습니다. 10억을 대신 갚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빚 갚으라고 시도 때도 없이 끊임없이 우리 정죄합니다. 야 그 사람이 뭐 할 일이 없어서 너가 꿔간 돈을 대신 갚아주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계속 십자가를 의심하게 합니다. 혹 우리 중에 난 아직도 죄의 빚을 갚지 못해서 지옥 갈 텐데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어지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1. 남을 정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10억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1억 빚을 진 사람을 향해 너 아직 그 빚을 안 갚았어, 그동안 안 갚고 뭐했냐고 정죄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괘씸하죠. 운전을 하다보면 상대방은 자기에게 양보를 해 주었는데 자기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 있죠? 이런 사람 정말 밉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제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용서한다. 용서함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면 그 사람은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정죄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굴 정죄한다면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몸이 누구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가?
우리가 가장 쉽게, 많이 정죄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당신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 꼬라지가 되었다고, 당신 때문에 애들이 저 모양이라고, 당신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여러분 ‘당신 때문에’ 원조가 누군 줄 아시죠? 타락한 아담과 하와입니다.
창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끌려온 여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요8: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더 이상 정죄하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죄하는 그것이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의 연약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비판하고, 판단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입니다. 그 연약한 부분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 부족한 부분을 여러분이 채워주십시오. 이것이 부부요, 성도입니다.


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빚 진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2017.6.15. 문재인 대통령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266명 청화대에 초청오찬을 가졌는데 이곳에는 6.25상이군경을 비롯 및 파독광부와 간호사 등을 초정에 그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는 자리는 마련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국빈방문용의전을 유공자들을 맞이하였고, 266명 유공자와 일일이 악수하고 안부를 묻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탓에 15분으로 예정되었던 인사 시간이 36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빚 진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장진호전투 기념비’였습니다. 이것 또한 빚 진자의 자세 아닙니까?


춘천 공지천에 가면 에디오피아 6.25전쟁참전 기념관이 있는데  6·25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던 에티오피아 참전군의 전공을 알려,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하여 춘천시에서 설립하였다. 에티오피아군은 6.25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파병을 해서 우리를 도운 나라이다. 1951년 5월 1일 한국에 도착하여 1965년 3월 1일 철수할 때까지 3개 대대 6,037명을 파병하였는데. 이후 양구, 화천, 철원 지역 등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253회의 전투에 참여하여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전상자를 내어 총 657명의 군인들이 피를 흘렸다. 그런데 에테오피아가 아무 관계도 없는 이 대한민국에 먼저 손을 내 밀고 군인을 파병하게 된 동기가 매우 감동적인데 일찍이 에티오피아는 외세의 침략을 무찌르기 위해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무위로 끝난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었답니다. 그 아픔을 뼈져리게 느꼈기에 에티오피아는 부유한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일레 셀라시 황제는 파병을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동네고아와 같은 존재였는데 식량, 의약품, 교과서 그걸 다 지원 받아서 연명하다시피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이제 이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세를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티오피아하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적개발원조 ODA통계를 보면 한국사람 한 사람의 연봉이 1억이라고 할 때 세계를 향한 기부한 금액은 30만원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6.25 당시 우리나라를 도왔던 수많은 외국군인들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에 빚 진자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빚 진자의 감격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도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지못해, 할 수 없이 끌려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빚 진자의 감격이 나를 예배의 자리로 달려오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한 번 자신을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애쓰고 수고하고, 섬기는 모든 섬김의 근원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혹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정죄 받기 싫어서는 아닌지? 아니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거라 생각해서는 아닌지?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섬김의 진정한 동기는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빚 진자의 감격, 이것이 우리의 섬김의 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헬) 쉬네코


이제는 빚 진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입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1대왕 사울의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왕이면 그 다음 왕은 그의 아들이 계승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요나단은 다윗으로 인하여 자기의 물려받아야 할 왕 자리가 위태롭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다윗의 제거해야죠. 그런데 요나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을 걸고 다윗의 보호하였습니다. 이런 요나단이 사울과 함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이후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빚 진자의 모습 아닌가요? 요나단에게 사랑의 빚을 진 다윗이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요나단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주님의 사랑에 빚 진자의 삶은 주님이 사랑한 것을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한 것이 뭔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아내를 사랑할까요? 안 할까요? 당연히 사랑하죠. 그러면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마음으로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 주님이 그 사람들 미워할까요? 사랑할까요? 그렇다면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인식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급하게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 이제 광야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건 완전히 노숙 아닙니까?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눈뜨면 짐 챙겨가지고 저기 가서 자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결핍을 겪었을 텐데 그런데 여러분 그런 결핍이 있는 그들에게 놀랍게 하나 경험되어지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할 때 만나를 내려 주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이 없어 목마를 때는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시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사라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까? 기대감이 있습니까? 매일 매일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정확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고난은 싫고 평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할 것은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하면 나에게 유리한 것, 혜택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불편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란 그런 배려와 혜택도 있지만 이건 또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간섭하심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령의 간섭하심을 받지 않을 때는 내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내 멋대로 생각하고, 내 멋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화나면 화내고, 짜증나면 짜증내고, 미운 사람 있으면 다시는 보지 않으면 되니까 딱 잘라 버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나니 성령님이 통제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령님에 의해 통제 받고 계십니까? 열 받으면 냅다 퍼부어버립니까? 그거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본능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능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령님에 의해 통제 받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이 성령님의 통제를 받고 산다는 해석이 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4.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실을 믿는 하나님 자녀 됨의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어떤 관계라고 하는가?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한 때 탤런트 송일국과 아들 삼둥이 대한, 민국, 만세가 나왔던 ,슈퍼맨이 돌아욌다‘에서 하루는 송일국과 대한, 민국, 만세가 서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데 대한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는데 그 말이 뭐냐? 아빠예요, 아빠예요, 내 아빠예요, 내 아빠예요. 하는 겁니다. 저는 아빠예요, 내 아빠예요, 이 한마디에 아빠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로써 아빠에 대한 신뢰, 긍지, 사랑, 믿음, 자부심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에 대한 긍지가 있으세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 긍지가 있으세요.
사탄은 끊임없이 이 긍지를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니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냐.. 니가 하나님 자녀라면 어떻게 그따위로 살아, 하나님이 니 아버지라면 니가 어떻게 그 모양이야...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내 부모님이 친 부모님인지 아닌지 꼭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아는 것 아닙니다. 내가 가장 구질 구질 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섬겨 주시는 것 보면 금방 압니다. 부모는 자식이 가장 어려울 때 똥오줌 가려주는 것 보면 금방압니다.
십자가는 부인할 수 없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의 증거입니다. 아버지가 아니면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를 위해서 내어주십니까?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긍지가 왜 중요한가하면 이 긍지가 이 땅에서 사탄의 유혹,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더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내가 정죄함을 받지 않기 위해, 지옥 가는 것이 무서워서 지옥가지 않으려고 죄를 안 지었다면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받게 되었으니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친밀하게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가졌으니까 죄를 멀리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이 존재감이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실패의 자리, 낙심과 절망에서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긍지가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으로 나가게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부모에 대한 긍지, 자녀 됨의 긍지가 결국 친밀함으로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도리어 아버지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인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하세요? 친밀하다면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친밀함의 증거는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겁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 친밀함이 뭔가요?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내가 아직 하나님과 친밀함이 없다면 처음에는 어색하고 미숙하여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데서 부터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은 종교의식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교제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교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만약 여전히 하나님이 두렵거나 친밀하게 여겨지지 않다면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들이 “아빠”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아버지의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