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20 34.지혜롭게 생각하라(1)
롬12:3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생각이 왜 중요한가? 생각이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통해 미리 결론을 내리고 그 내린 결론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생각이 중요합니다. 불신의 생각이 불신의 결론을 미리 내리게 되고, 불신의 결론이 불신의 태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반면 믿음의 생각이 믿음의 결론을 내리게 되고 믿음의 결론이 믿음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생각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믿음의 생각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 무엇보다 십자가의 구원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의 생각을 심어주는 사탄의 생각들을 하나님의 생각에 복종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합니다.
자, 성경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기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렇다면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내 안에 답이 없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타락의 핵심이 뭡니까? 내가 내게 주인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하나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용어로 자기중심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원도 내게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답이 없음을 인식할 때 하나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복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가까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땅에 보내어 그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게 합니다.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는 딱 10:2도 나눠집니다. 10명은 이제 우리는 죽었다.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들은 거인이다.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 같다, 라고 보고합니다. 왠 줄 압니까? 그 문제의 답을 내게서 찾으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답이 없음을 아는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보고 합니까? 그들도 똑 같은 상황을 보고 온 것 아닙니까? 10명의 말이 맞거든요, 그러나 그 생각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하나님의 약속 앞에 복종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 말이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그 눈으로 보니까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나님의 약속에 자기들의 생각을 복종 시킨 겁니다. 하나님에게 답이 있고, 하나님이 답인 것을 알았습니다.
구약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데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사람과 아비라아 사람 게셈과 또 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여 성벽 재건을 방해를 합니다. 이 방해에 대해 느헤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느6: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무슨 말입니까? 내게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답이 있고 하나님이 답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내 가정의 회복, 우리 자녀들의 문제들... 이 모든 해답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답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2.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을 융통성 있게 생각하는 것이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상황을 잘 헤쳐 가도록 생각하는 것이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합니다.
1)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토대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을 만나면 가장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그 의심을 통해서 환경을 바라보니 거기에 무슨 감사가 기쁨이 승리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내가 어떤 환경을 만나던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랑을 통해서 환경을 보고, 환경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헨리 블랙사비 목사님의 외동딸 캐리가 열여섯 살 때 암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캐리가 암에 걸리기 훨씬 전부터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환경이 닥치든지 십자가의 공로를 생각지 않고는 그 환경을 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뭔 줄 아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환경을 보지 않고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도 변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파라면 하나님도 파랗게 보이고, 환경이 빨가면 하나님도 빨갛게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모든 환경을 보면 그 어떤 환경도 사랑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하나님의 사랑을 토대로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설교하면 오늘 설교를 다 한 것인데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랑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사랑하시는 것 같을 때는 언제? 잘될 때
사랑하지 않을 겉은 때는 언제? 안될 때
사랑하고 안하고의 기준이 뭐냐? 잘되고 안 되고 입니다. 그러니 기준이 잘못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뭐냐? 뭐죠? 십자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그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바로 나를 위한, 나를 사랑하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갈2:20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어느 사모님의 체험입니다. 환경적인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데 그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아니라 ‘위에서 바라 본 십자가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아래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위에서는 누가 보았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아들을 내어 놓으신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자녀들이 몸이 아파서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는 나를 향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환경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계시된 사랑을 선명하게 알게 되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환경을 보게 되면 모든 혼돈은 완전히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며 보이는 모든 환경에 반응하지 않고,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여러분, 하나님은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질과 상반되게 일하실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분의 우리에게 허락한 모든 것은 항상 최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차선의 것을 주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항상 최선이라는 사실을 또한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고 고백합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여기 강권하다는 말은 “쉬네코”로 가까이에서 강한 영향을 끼치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2)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토대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전지 하십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여기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 삼대방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아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한 몸이 되었기에 한 몸으로써 아는 앎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여기 “체휼”이란 말은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의 작은 신음도 다 알고, 느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에 바늘에 찔리면 손가락만 아픈 것이 아니잖아요. 온 몸이 신경으로 연결되었기에 온 몸이 아픔을 알고 느끼듯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사실이 실제가 된마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알고 계십니다.
출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보고, 듣고, 알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하나님은 여러분의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막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하나님은 여러분이 괴로이 인생의 노를 젓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50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심은 항상 옳습니다. 때로는 우리 관점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실 수 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항상 옳습니다. 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 광야의 길은 최악의 길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가장 최선의 길이요, 가장 옳은 길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께 다른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또 하나님이 지금 보여주신 길이 최선인지 혹은 옳은지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보여주신 그 길이 가장 최선의 길이요, 옳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최악의 길로 인도하실 거야, 아닙니다. 그 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최선의 길, 옳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신 길은 항상, 언제나 최선이요, 옳은 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는 데 문득 히10:20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게 산 길을 열어놓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의 길, 옳은 길을 열어 놓지 않겠는가...
3)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토대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즉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알기는 아는데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형편 처지 상황을 아실 뿐 아니라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 어떤 상황에 두셨을 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하나님께는 그 환경을 능히 견딜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러분 사도바울이 모 숫한 고난을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의 의지가 강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빌4;13절 말씀처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이 함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두셔도 그 환경 속에서 그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아신다.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임재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따라 믿음으로 한 걸음 내 딛을 때 거기에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혜롭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의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일이 최선임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 분이 하나님이 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여러분 앞에 일어나는 일들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허무감이나, 상실감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 분 자신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가질 때 여러분은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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