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6. 32.믿음의 생각
롬8:5-8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삶은 이제는 달라야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으로 살았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것은 한 마디로 성령에 의한 삶으로, 성령에 의한 삶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생각이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성령의 통제를 받은 그 생각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생각에 대해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은 결국 우리 신앙의 승패가 생각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어떤 생각에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 신앙의 질이 결정됩니다. 오늘은 우리의 생각 중 믿음의 생각의 얼마나 중요한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래전 수술을 앞두고 있는 한 성도님을 심방했는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 목사님!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겠죠? 나를 버리지 않으시겠죠? 보세요, 여러분! 지금 이분은 곧 수술실로 옮겨져 수술을 받아야하다는데 뭘 걱정하고 있습니까? 아프지는 안을까? 수술은 잘 될까?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나와 함께 하실까? 이것을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낙심되는 경우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이 흔들릴 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되는 그런 때가 없으셨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될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려는 줄 아세요? 내가 이 땅에서 잘되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도를 해도 내가 예수를 믿으니 이렇게 잘 되었다고 잘된 것을 가지고 전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잘되려고 몸부림칩니다. 돈에 집착하고 성공에 집착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였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부자여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난하면 하나님이 버린 사람입니다. 아프면 복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큰 집에 살아야 하고 큰 차를 타야 합니다. 불합격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입니다. 실패하고 환란을 겪으면 사람들 보기 창피해서 교회도 못나옵니다.
그들은 잘되면 하나님의 사랑이고 잘못되면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평가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좋다면서 여전히 돈에 목을 매고 살며 성공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부자로 성공으로 증명하려는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만약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지지리도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 십자가의 처형을 당했습니다. 어떤 제자는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하기도 했으며, 어떤 제자는 돌에 맞아 순교를, 참수형으로, 창에 찔려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살갖을 찢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까?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들입니까?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절대 십자가에서 죽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예수를 십자가에 몫 박아야 된다고 외치는 유대인들을 다 없애버려야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요?
혹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이 땅에서 잘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땅에서 잘되는 것만 추구하며 사는 분들이 계시다면 성령께서 이 시간 그 생각을 교정해 주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묵상하지 않았습니까?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잘되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이미 자기 생각을 따라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도 없어,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어, 결론을 내리고 행동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고 코가 석자나 빠져있고.... 여러분, 여기에 무슨 승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생각을 보세요. 믿음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잘 살고, 잘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를 어느 곳에. 어떤 환경에 두시던지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그분이 주신 환경이기에 감사하며 자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임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 생각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내가 잘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생각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이곳에 두셨다는 이 믿음의 생각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두 생각의 차이를 보세요. 삼상17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싸움을 보세요. 그 당시 싸움은 각 진영의 대표가 나와서 1:1로 싸워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전쟁인데 블레셋에는 어마 어마한 장수 골리앗아 버티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누구인가? 삼상17:4~7절에 보면 골리앗에 대해서 상세히 가록했는데, 키가 283cm, 갑옷의 무게가 57.5kg, 창날의 무게 7kg
이런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삼상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삼상17: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똑 같은 환경인데 다윗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여러분 똑 같은 환경에서 이 두 차이의 원인이 무엇인가 아시겠습니까? 생각의 차이입니다. 불신의 생각과 믿음의 생각, 불신의 생각은 불신의 결론을 불신의 답을 이미 내렸고 그 결과 불신의 행동을 하게 되었고, 믿음의 생각은 믿음의 결론을 내렸기에 믿음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홍해 앞에서 모습을 보세요.
출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런데 모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움과 불평과 원망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불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반대로 모세의 이 담대함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믿음의 생각의 결과 아닙니까? 결국 믿음의 생각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여러분들이 쉽게 내 뱉는 불평, 원망, 두려움이 이게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잘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말씀하셨을 때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믿음의 생각입니다.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또 그것을 바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몸이 아파서, 여건이 안 되어서, 돈이 없어서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불신의 생각 때문인 것 아세요? 불신의 생각이 쑥하고 올라옵니다. 불신의 생각은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그 생각에 결론을 내리고 그 생각에 반응해 버립니다.
행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럼 어떻게 믿음의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1. 믿음의 생각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요,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인가 하는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의 성품, 속성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니까 믿음의 생각을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기도 응답은 가뭄에 꽁 나듯이 잘 안하는 분이고,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 믿음의 생각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전능하시다. 사랑이시다. 신실하시다. 그 성품을 한 가지씩 묵상해보세요. 하나님이 얼마나 완전하신가, 얼마나 능력의 하나님이신가, 그분이 약속 하시면 그분의 때에 이루실 것이다. 그분이 모르시나, 다 아시지, 그분은 날 사랑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해보세요.
헨리 블랙가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최선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는 항상 옳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하여금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하나님이 이 상황 속에서 나를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왜? 나를 사랑하니까, 더군다나 그분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지금 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을 걷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 상황을 능히 다루실 능력이 있어,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그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질 때는 하늘을 나는 것 같고,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는 것 같고, 이제는 됐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내 맘같이 속히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약속 이거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 맞나,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냐, 맞다면 정말 하나님이 약속처럼 그렇게 하실까? 아닌 것 같은데, 수만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럴 때가 있죠? 이럴 때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고 완전하신지 묵상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형편을 모르시나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내 마음과 형편을 너무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렇기 때문에 내 기대와 다르게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대면하고 신실하게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깔아야 할, 이해해야할 이해력이 있는데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항상 묵상하는 겁니다. 그분은 항상 옳으세요, 그분은 진리이시구요, 그리고 그분은 신실하세요, 변하지 않으세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 놓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 삼으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내게 대하여 항상 신실하시고, 언제나 의로우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은 말씀하신 데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당신의 열심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힘들고 낙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씨름이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 올바르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제일먼저 그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상황만 바라보면서 안 되면 죽을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안 돼도 주님입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분이면 족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제 삶의 통치자요, 왕이요, 생명이시니 제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이 자리에 서야합니다.
우리가 약속을 신뢰하고 갈 때 주님 이거 아니어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깨졌다, 낙심됐다, 좌절됐다, 그러다 또 좀 뭐가 될 거 같으면 흥분했다가 금방 주저앉았다가 이런 자리에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움켜 줬던 손을 펴셔합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지금 여러분이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이것 안 되면 나 죽어요!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세요. 그리고 그것에서 손을 펴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냥 하나님 한분이면 족한 그 자리에 서야 합니다.
2. 믿음의 생각을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 민수기를 보면 기억하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수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의 길을 인도하고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요단 동편 모암평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고별설교를 하는 내용이 민수기입니다.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24: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마찬 가지로 우리가 믿음의 생각을 위해서 과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이루신 일을 생각하는 겁니다. 기도 응답하신 일, 우리 필요를 채우신 일, 무엇보다 십자가, 나를 죄에서 건지신 일, 이런 일들을 묵상하는 겁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는 예수님은 나에 대하여 항상 선한 의지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 대하여 하상 선한 의지를 가지신 분입니다. 나를 도와주기를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나를 일으켜 세우기를, 온전케 하기를, 변화시키기를, 자유케 하기를, 회복시키기를 항상 선한의지를 가지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눅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사실에 기초해서 생각하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주는 생각 들어오는 생각 다 받아들여서 낙심하고 좌절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생각하며 부정적인 생각, 엉뚱한 생각, 인본주의 생각을 처리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는 것 이것 하나만 실제가 되어도 얼마나 능력이 되는지 모릅니다.
시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삶이 어렵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인가? 십자가를 보면 그것은 아니고, 주님은 날 사랑하세요, 그런데 왜 어렵지? 그분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분은 능력도 있으신 분인데, 그런데 왜 이대로 두지? 아, 나에게 인내를 가르치려는가 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가 보다. 그래 죽지는 않겠구나
그래서 어려움이 올 때 마다 주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 하나만 해도 굉장한 힘입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능력이 되는지,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 모르시나요? 다 아세요.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눅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마10:29절에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이라고 하는데, 눅12:6에서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마리는 덤이라는 말입니다. 가치 없는 덤입니다. 그런데 그 덤으로 줘도 아깝지 않은 가치 없는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눅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모두가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실제가 될 때 강력하다는 겁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 나의 상황을 아신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신다는 인식이, 의식이, 확신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그분의 성품이 내게 얼마나 강력한 능력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성품을 자꾸 묵상하세요. 그 성품을 자꾸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 자리에 가야 믿음의 생각을 하게 되고 믿음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결론대로 내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을 하라 여기에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이주님의 성품을 보면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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