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0. 30.정죄감에서 자유케 된 자의 삶
롬 8:1-11
로마서 1-4장 전체를 요약하면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5장에서 6장, 7장, 8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결과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5장은 죽음에서 자유, 6장은 죄에서 자유, 7장은 율법에서 8장에서는 정죄감에서 자유케 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는 말은 ‘옛사람이 죽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데 이 말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바꾸었지만 오래 동안 옛 주인의 지배 아래 있었기에 새 주인의 의도를 잘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등을 느끼면서 새 방향을 향해 몸부림칩니다. 이것을 로마서 7장 후반부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염두해 두고 로7:19-25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러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탄이, 죄가, 율법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는 그들의 노예가 되어 그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새 주인 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주인의 명령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새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행하기를 소원하지만 항상 죄의 법이 성도의 육신을 사로잡아 마음이 원하는 바를 못하게 합니다. 이 때 나타나는 감정이 정죄감입니다.
우리 또한 정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죄와 결별하지 못한 나를 볼 때마다, 정죄감이 듭니다. 정죄감에 빠지면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가하면 “나는 해도 안 돼” “나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 “난 아무래도 희망이 없어”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어” “난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이런 절망감과 패배감, 정죄의식과 패배의식이 올라와 우리를 사로잡게 되고 결과 영적인 자포자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 정죄감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육적, 영적인 삶의 비극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정죄감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정말 괴로운 것이 누군가가 나를 계속적으로 정죄한다는 겁니
다.
예) 1963년 고제봉 살인사건
마찬 가지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 놈의 특기는 우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계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성경은 사탄을 참소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소하고 참소하던 자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의 죄를 가지고 그들을 정죄하는 자입니다. 사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도 죄를 짓습니다. 여전히 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롬 7:25에서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상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육신은 여전히 죄의 법을 섬깁니다. 그래서 죄로 인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며, 내적인 고통이 불신자들 보다 더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이것을 이용해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너가 지금 예수 믿은 지가 몇 년인데...”
그러나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죄지을 수 있지만 정죄 받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롬 8:2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을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 적용되는 법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죄와 죽음의 법” 아래 있습니다, 롬 6:23에 말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누구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적용되는 법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집 자식들이 부모의 법아래 살지 않고 은혜 아래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법아래 살고 있다면, 잘못했을 때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다행히 부모의 은혜 아래 또는 사랑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끊임없는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서는 은혜라는 단어 대신에 생명의 성령이라고 씌여졌습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삶의 원리가 너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는 정죄가 없습니다, 허물과 죄가 있더라도 심판을 받아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죄와 허물이 있다고 해서 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정죄함이 없는 은혜를 받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장난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정죄함이 없다는 확신을 흔들려고 온갖 방법을 다 씁니다. 그 중 하나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죄짓게 하고 마음에 정죄 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난 아무래도 희망이 없어”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어”. “난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즉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피하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죄를 숨기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끗함을 얻게 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롬8: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 죄와 사망에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했는데 그럼 죄와 사망에 법에서 해방된 삶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래 나는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는 율법이 나를 더 이상 죄 있다고 정죄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는 마음 편하게 죄를 짓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니고 따라서 율법의 저주나 정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이제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원리는 성령의 인도에 의해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되면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게 됩니다. 율법대로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아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게 되면 율법이 이렇게 살라는 삶의 기준을 오히려 성취하는 놀라운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절에 나와 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제는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도 ‘나는 정죄 받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떳떳하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가 정말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의심이 갑니다. 정말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는 사람이고 죄에서 떠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겸손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정죄하지 않으시지만 죄를 용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히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자녀라도 죄를 지으면 내적 기쁨이 사라집니다. (살전5:16) 기도문이 막힙니다. (살전5:17) 감사가 사라집니다. (살전5:18) 마음의 평화가 사라집니다. (살전5:23) 모든 힘을 다 빼앗긴 채, 무능한 성도가 되고 맙니다. 이 때,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정죄함이 없다고 죄를 작게 여기면 큰일입니다. 정죄함이 없다고 죄를 작게 여기는 것은 마음에 임하신 성령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고 정죄 받지 않는 은혜를 교리로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란?
1) 우리 생각이 성령의 통제를 받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성경 롬8:5-7사이에 생각, 생각, 생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가만히 보십시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까? 혈기가 나고, 분이 나고, 한번 퍼붓고 싶을 때 성령님이 여러분의 생각을 통제하심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일이 일주일에 몇 번이나 있으십니까?
여러분, 우리 생각이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6절에 보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왜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냐?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여러분 가룟유다는 사탄아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그날이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최후의 만찬에도 참석하고 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가룟유다는 요13:2절에서 마귀에게 생각을 빼앗긴 그때 벌써 죽은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성령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습니까? 가룟유다처럼 마귀에게 팔려버렸습니까?
우리가 은혜 받아야 되, 은혜 받아야 되, 하는데 무엇을 기대하고 은혜 받으려고 하십니까? 예배드리고 집에 갔더니 2만원 밖에 없던 내 통장에 2000만원이 들어와 있는 것, 이런 것을 기대하십니까? 기도회 마치고 집에 갔더니 그렇게 안 풀리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도 은혜이지만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상황에 함몰되지 않도록 그 상황에 대한 생각을 교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결과물이 외부적 환경이 바뀌기를 원하는데, 상황이 달라지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의 일하심은 은혜 주심으로 외적인 환경이 바뀐 것은 없는데 뭐가 바꿨나? 내 생각이 바뀐 겁니다. 이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보니까 딱 10:2도 나뉘어 가지고 10명은 이제 우리는 죽었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그들은 거인이다.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 같다고 생각이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은혜를 받은 여호수아, 갈렙이, 자기들도 보고 온 것 아닙니까? 그 말이 맞거든요, 그러나 생각이 어떻게 바뀝니까? 그 말이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그 눈으로 보니까 그들은 우리 밥이라, 생각이 바뀐 겁니다.
오늘 이해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면 이 상황을 바꿔 달라고 기도도 해야겠지만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이 상황과 환경을 보는 내 생각이 교정되기를 원합니다. 생각을 바꾸어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저는 오늘 성령님이 여러분들의 생각을 교정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란? 성령에 의해 통제된 생각을 따라 사는 삶, 이 삶을 한 마디로 거룩한 삶이라고 합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이 대조해서 나오는데, 육신의 일이라 성령하나님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삶이 육신의 일인데, 육신의 일 초점은 끊임없이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보세요. 육체의 일을 쭉 열거하는데 하나같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들 아닙니까?
반대로 성령의 일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뭡니까? 육신대로 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성령의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13절에 보시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어떻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수가 있을까요? 성령님의 생각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육신의 생각, 부패하고, 지저분하고, 우리를 좌절하고 타락시키게 하게하는 생각을 따라 행하지 말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에 반항하지 말고 이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 때에 우리의 육체의 행실이 죽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가능합니다. 이 삶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까?
성령님이 주신 생각에 반응하지 않은 결과 아닙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의 쾌락만을 추구하였지 거룩을 추구하지 않은 결과물 아닙니까?
프란시스 쉐퍼의 말 “이 시대의 절망은 이 시대의 성도들이 행복은 갈망하지만 더 이상 거룩을 갈망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왜 입니까? 내 안에 내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이기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한 삶을 위하여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과 성령의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 하라 하지말라 하는 율법적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생각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바울사도는 빌립보서에서는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인데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대한 소원(생각)만 주실 뿐 아니라 또한 행하게 하십니다. 크리스챤 생활을 단순하게 말한다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육체의 소원에 대해서는 No(아니라)라고 하고, 그러나 내 안에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생각에 대해서는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우리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새로운 생각을 우리 안에 두시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행실을 가능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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