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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29.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롬7:7,13-25)

by 오용주목사 2017. 7. 16.

2017.7.16.                                                     29.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7:7,13-25

 

제품을 구입하면 그 제품을 고장 없이. 오래 오래 잘 사용하도록 사용설명서기 들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이 땅에서 고장 없이 인생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창조본래의 목적에 맞게 살도록 인생사용설명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잘 읽고 숙지하여 인생사용설명서대로 살아갈 때 내 인생이 고장 없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고장 난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고장 난 가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장이 나도 보통 고장 난 게 아니라 아예 폐차를 할 지경 아닙니까? 요즘 TV의 이슈가 무엇입니까? 고장 난 개인, 고장 난 가정, 고장 난 학교, 고장 난 기업, 고장 난 사회, 온통 고장 난 것투성이 아닙니까?

 

한 예로, 요즘 한참 재판이 진행 중인 지난 3월 인천에 한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그 아이를 죽이고 시신을 훼손하여 옥상 물통에 유기한 사건 기억하시죠? 여러분 이 사건의 가해자 17살 김양은 아이큐가 130-140나 되는 엄청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김양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그의 인생 전체가 고장이 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사용설명서 없이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사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인생네비게이션 없이 인생을 달려가니 그 모양이 된 것 아니냐고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인생사용설명서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잘 숙지하고 그렇게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내가 그렇게 살아갈 뿐 아니라 내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오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 생각이 옳다고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두 생각이 항상 대립을 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요, 또 다른 하나는 내 생각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단순히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생각 배후에 누군가 내 생각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인류의 시작인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사탄이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내 생각을 심어준 것 아닙니까?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의 생각이 뭡니까? 너희는 절대 선악과를 먹지 말라,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사탄이 심어준 생각이 뭐죠? 먹어도 된다, 먹어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안 는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 생각을 넣은 준 겁니다.

이 두 생각에 아담과 하와가 어디에 반응합니까? 사탄이 넣어준 자기 생각에 반응합니다. 그 반응의 결과 다 아시죠? 타락하게 되죠, 결과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가룟유다를 꼽습니다. 그러면 어쩌다 가룟유다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한 마디로 자기 생각의 결과입니다. 사탄이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가룟유다는 그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주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가 예수님을 팔았겠습니까?

 

지금도 사탄은 끊임이 우리 마음에 자기 생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내가하는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합니다.

어떤 사람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시기, 질투, 불평, 원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행동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질문? 여러분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겠죠? 그런데 이 생각이 자기 생각인 것을 알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긴 겁니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왼 줄 아세요? 자기가 자기에게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생각보다 자기 생각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 생각에 있어서 아주 무서운 것은 이 생각을 사탄이 아주 교묘하게 심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러분 무슨 내용인가 아시죠?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첫 수난예고를 하시는데 이 때 이 말은 들은 베드로가 한 말이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러분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을 생각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을 위한다고 한 생각이 사탄이 심어준 생각인줄 꿈에라도 알았겠느냐 말입니다. 이게 위험한 겁니다.

 

오늘도 마찬 가지입니다. 요즘 교회 성도들이 둘로 나뉘어져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것 보시잖아요. 한쪽에선 바리케이드를 치고, 또 한 쪽에선 피켓 들고 시위하는데 이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교회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켓 드는데 이 분들이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의 행동의 배후에 사탄이 있음을 알겠습니까?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꿈에라도 생각을 했겠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55:9절 말씀입니다.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 말씀을 토대하여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이론, 논리를 하나님의 이론, 논리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일단 믿고, 하나님 생각에 한번 순종해 보는 겁니다. 처음 순종하면 더 엉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정입니다. 그래도 다시 순종하고, 또 순종하고,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옳고, 최선이고, 완전하다는 것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맛보고 순종하고 맛보고 순종하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 생각을 내리고 하나님의 생각에 내 삶을 드리는 자리로 나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을 아는 것인데 그 목적이 뭐냐? 죄를 깨닫게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여기 한 사람이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차를 새로 구입하면 새 차 길들이기를 한다고 하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차를 인수 받자 말자 몰고 나갑니다. 어디로? 고속도로로 그리고 고속도로에 올려놓고 차를 길들인다고 엄청난 속도로 달립니다. 그러면 차가 잘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설명서를 자세히 보면 차를 구입하고 1000km 까지는 급출발, 급정거 하지 말고 과속을 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차를 관리했는데 사용설명서를 보니 아! 내가 잘못했구나, 알게 되듯이 율법 또한 내가 잘 못한 죄가 무엇인가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탐심을 예로 듭니다.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여러분, 탐심이 죄입니까? 몇 년 형입니까? 법정에 가면 탐심은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여야 죄입니다. 그런데 골로새서를 보면 탐심을 심각한 죄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을 우상 숭배로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상숭배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금송아지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우상숭배라 하면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섬기는 형상물을 우상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신 관점으로는 그것도 우상이지만 또 다른 우상이 하나있는데 너 마음 안에 있는 탐심이 우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탐심이 얼마나 무서운 우상인지 빌3:18절에서 바울이 이 문제를 경고를 하면서 이중, 삼중으로 경고를 합니다.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여기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한두 번 말하데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 여러 번 말했을까요?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것 아닙니까?

 

그다음 보세요.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고 합니다. ? 그냥 말해가지고는 안 들으니까, 너무 너무 답답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그다음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절하는 이것만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고 너 배를 섬기고자하는 그 탐심 이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탐심이 뭐냐? 나를 지나치게 위하고자 하는 마음인데, 11장에 탐심이 무엇인지 너무나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여러분 무슨 상황인지 아시겠죠? 홍해 -> 광야 -> 불평

불평에 대해서 하나님의 반응이 어떤가를 보세요.

11: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실의 산해진미를 요구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들이 요구한 것은 너무 소박한 것들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렇게 화를 내시는가? 그렇다면 보세요.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화를 내신다면 분명 여기에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 그 뭔가가 뭔가 하면

 

1) 하나님의 관점에서 탐욕이란 엄청난 그 무엇을 품는 것도 탐욕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자족하지 못하는 마음, 이게 탐심이라는 겁니다.

2)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가 탐심입니다.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속는 것이 뭔가 하면 우리는 탐심을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어 하고 수억 하는 차를 갖고 싶어 하고, 수십억 하는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을 탐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탐심은 이따 마한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건,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갖고 싶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자족하지 못하는 마음, 이게 탐심이라는 겁니다.

아내, 남편, 자녀 하나도 마음에 안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 그 아이조차도 자족하면서 품고 사랑하고 이 아이는 반드시 변화된다, 늦게 자라지만 반드시 열매 맺는다. 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품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게 탐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 율법을 통하여 내 죄를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겁니다.

 

우리 자녀들 키우다보면 애들에게 이제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야지 하면 애들이 하는 말,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면서 게임을 계속합니다. 그때 엄마가 하는 말, 알긴 뭔 알라, 무슨 말입니까? 진정을 아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애들과 똑 같다는 것 아세요?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아는데 여전히 탐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게 아는 겁니까? 그래서 아는 것과 실제 율법을 통하여 내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도들 가운데 난무한 탐심, 미움, 시기, 질투, 불평, 원망, 판단, 비판, 후욕.. 지금 열거한 이 모든 것이 다 죄라는 것 알아요, 그런데 아는데 왜 그 죄를 자꾸 짖고 있느냐 말입니다. 혹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 여전히 교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죄의 심각성을 자각할 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의 조명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읽고 아! 탐심이 우상숭배이구나 교리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단계가 1단계입니다. 우리는 이 1단계에 머물면 안 됩니다. 이제 2단계로 가야합니다. 그것이 내안에 탐심이 가득하구나, 내가 바로 우상 숭배자였다는 것을 성령의 조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2장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우리가 어찌할꼬 이것이 깨닫는 자의 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좀 나타나야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이 모습이 나타나야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앞에서 성령의 깨닫게 해 주심을 사모하는 자세가 너무 중요합니다. 내 얄팍한 머리로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심을 갈망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면 내 삶을 조정하겠습니다. 이 자세로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그 사람에게 단 1%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정말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말씀 가운데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의 모습이 깨달아 지길 원합니다. 여러분 이사야를 보세요. 온 세상이 타락해서 나라가 이 꼬라지가 되었다고 비판해야 할 이사야가 성령의 조명으로 자기를 보게 되니 뭐라고 고백합니까?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저는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말 오늘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뭡니까? 이 썩어빠진 세상이 문제입니까? 이사야처럼 자기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그러니까 맨날 남만 탓하는 거 아니냐구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고, 누구 잘못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여러분 이제는 내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성령 하나님께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조명으로 죄를 깨달았습니까? 그럼 그 죄의 문제를 가지고 의사이신, 우리의 치료자 이신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오십시오. 이것이 3단계입니다.

 

1단계 : 성경을 통해 교리적으로 아는 것 (아 탐심이 우상숭배구나)

2단계 : 교리적으로 아는 것을 성령의 조명으로 깨닫는 것 (내가 그런 자구나)

3단계 :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 (주님을 찾는 것)

 

여러분 말씀을 통해 죄가 무엇인가 습득하셨습니까?

내가 바로 그런 자 임을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아졌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포장하지 말고, 가리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셔서, 하나님 제가 이런 자입니다. 하나님 제 가정이 이런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한 번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구하셔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바울이 롬7:19절 이하에서 성령의 조명으로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새번역)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를 깨달은 것 아닙니까? 예수를 믿지만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 인간은 여전히 죄의 영향아래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불평, 원망, 탐심이 내게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울의 위대한 점이 무엇입니까?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내가 그런 자임을 철저하게 보는 것입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성령의 조명으로 24절의 이 탄식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24절의 탄식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절의 탄식이 25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로 연결되고 있는가? 이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고 자각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이 거룩한 탄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계속 이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탕자가 돼지우리 살면서 맨날 아,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 비참한 자리에 빠져서 맨날 우울고하고, 맨날 죄책감에 빠져있다면 그러면 24절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자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이게 중요한 겁니다. 24절의 자각이 탄식이 귀한 이유는 25절의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로 나아가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24절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갈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용서만 하면 뭐합니까? 나가서 또 그 죄를 짓는다면 그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시 그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한 것입니다. 이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삶에 실제 사건이 되는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녹여 놓은 찬양

언제나 내 모습 너무나 부끄러워,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합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그런데 깨닫는 자리에 머물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릎으로 주님께 기도로 가오니, 주님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주님께 나갈 때 어떻게 하십니까? 나 홀로 서있는 죽은 내영 깨우사, 주님만 나를 깨워 내 영 살게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주님 내안에 주님 내안에 내 안에 계시고 주님 내안에 주님 내안에 나를 세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