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9. 28.율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롬7:1-12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로마서1-4장까지 전체를 요약하는 차원에서의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가지고 로마서 1-4장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신칭의”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엡2장에서처럼 공중권세 잡은 자가 나의 주인행세를 하였다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는 겁니다. 주권이 교체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내가 누구에게 복종 하는가를 보면 내가 누구의 종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죄에 복종하면 죄의 종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면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러분은 실제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5장 1절의 이하는 “이신칭의”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이 무엇이냐, 그것이 5장, 6장, 7장 8장 까지 계속 연결이 되는데, 5장에서는 이 “이신칭의”로 말미암아 죽음의 지배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어떻게 죽음의 영향력에서 자유함을 누리는가? 빗을 진 사람이 언제 빗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까? 빚을 다 갚아야 자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 가지로 죽음에 문제도, 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돼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예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그 죽음을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은혜입니다.
그다음 6장에서는 이 “이신칭의”로 말미암아 죄의 지배와 영력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다. 이것을 다루는 것이 6장입니다. 그럼 어떻게 죄에서 자유할 수 있는가? 단순히 죄를 안 지어야지 결심하고, 죄를 안 지으면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죄에 반응했던 옛 사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이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할 때 온전히 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루게 될 7장에서는 율법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이게 로마서의 흐름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7장에서는 부부관계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롬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무슨 말인가 하면? 바울은 그 당시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속박이 되고, 그 남자에게 매이게 되는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문회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그동안 율법이 우리를 향해 이런식으로 억압을 하고 명령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는 관계가 되어서 이제는 그 강압적인 율법의 다스림으로부터 해방하게 되었다. 그것을 그 당시 가부장적 결혼생활을 빗대어서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하나있는데 4절을 유심히 한번 보십시오,
롬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우리는 롬7:2절에서 남편이 죽으면 하니, 아! 율법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7:4절을 자세의 보면 죽은게 율법이 아니라 우리가, 내가 죽은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내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죄나, 율법은 없어지거나, 폐기되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율법에 대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율법에 대하여 나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옛 사람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그리스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주권이 교체되었다면 율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하는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율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고자합니다.
1. 율법이 뭐냐?
존 파인버그(John Feinberg)에 의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신 “삶의 규칙(rule of life),” 순종하고 지켜야 하는 계명들(commandments)이다. 라고 말합니다. 율법에는 크게 하라는 것과 하지마라는 것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그럼 성경에 율법이라 하면 모세 5경을 말하는데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합니다. 그 중에 율법의 핵심이 레위기이며, 이것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요약한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러면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이 후 24장까지 주어진 율법은 뭐냐? 임시입법입니다.
그럼 나머지 구약 성경은 뭐냐? 그것은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율법대로 잘 살았느냐? 살지 못했느냐? 잘 살았을 때는 복을, 실지 못하였을 때는 심판을 기록한 것이 나머지 구약성경입니다.
복음은 뭐냐? 신약성경에 4복음서를 말하는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4복음서 외의 나머지 성경은 도대체 뭐냐? 그것은 복음을 믿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뭘까요?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요, 복음은 내가 믿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은 건강검진과 같은 것이라면 복음은 실제 치료와 같은 것입니다.
2. 율법에 대한 그릇된 견해
1) 율법주의, 먼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견해
이 견해는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열심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 관점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을 만한 심각한 죄입니다. 왜냐하면,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의로와 보이지만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걸레와 같은 것들입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뿐만 아니라 만약 우리가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율법을 한가지라고 어기면 안 되고 100% 다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말해주는 성경구절이 갈3:10절입니다.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이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고 자기의 행함을 의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하나님의 그 많은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동안 단 한 번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면 그는 절도죄를 범한 것이요, 그에 대한 처벌을 받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면 일평생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저주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처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옛 사람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롬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여기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도 죄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죽은 것은 죄와 율법이 아니라 죄에 반응하고 율법에 대하여 그릇되게 반응하는 옛 사람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릇되게 반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 아닙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예를 들면 요즘 영화나 TV를 보면 등급이 매겨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에 19세 관람불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릇되게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이놈들은 영화를 봐도 꼭 19세 이하 관람불가 이런 것만 골라서 보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여러분,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에 대해 나의 타락한 본성, 옛 사람이 그릇되게 반응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 그릇되게 반응하는 것이 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율법을 좀 지킨다는 사람들은 못 지키는 사람들을 눈 아래 깔고 보는 영적으로 교만이 얼마나 충만한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비방입니다. 율법도 못 지키는 것들이...
또 반대로 내 세울 것이 없으면 영적으로 죄책감에 깊이 빠져 맨날 하는 말이 하나님이 이제 나 같은 놈은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에게는 관심도 없을 거야, 이제 나를 버리실 거야, 코가 석자나 빠져 허우적 되는 것, 이것이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다 율법에 대해서 그릇되게 반응하는 옛 사람 때문인데, 그런데 그 그릇되게 반응하는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뼛속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의 옛 사람이 율법에 대해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종이 아닙니다. 율법의 노예가 아닙니다. 더 이상 율법이 우리 주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바울이 앞에서 그렇게 강조한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뭘 믿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이루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도저히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예) 마22장 예복
2) 반 율법주의,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니,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은 필요 없다,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율법 폐기론 자들의 견해
이 견해는 이신칭의,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니, 율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은 필요 없다,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율법은 폐기 되어야 한다는 율법 폐기론 자들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엠 알 디한(M.R. Dehaan)이라는 설교가가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과거 봉건시대에는 주인들이 노예 하녀들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엄격은 법을 제정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주인이 자기 하녀들에게 이런 법을 제정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상시간은 반드시 아침 6시어야 하며 7시까지는 집안의 모든 청소를 완료할 것, 그리고 8시까지 주인의 모든 식사준비를 완료하고 9시까지는 자녀들을 위한 모든 뒷바라지를 끝낼 것 등등의 하루의 일정을 정하고 규칙대로 수행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추방도 가능하고 매질도 가능한 법률을 정했다고 한다면 그런 법아래서 행동하고 봉사하는 하녀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녀와 주인 사이에 일이 벌어져서 이 주인이 하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은 하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내로 맞아 들였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제 주인의 아내가 된 이 여인은 아직도 주인의 법아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제는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사랑 아래, 은혜아래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법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겠네... 물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주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는 함부로 막 살겠습니까? 늦잠자고, 청소도 하지 않고, 식사준비도 안하고 아닐 것입니다. 또 주인의 엄청난 사랑과 호의로 자신이 주인의 아내라는 놀라운 신분이 된 것을 깊이 깨닫는다면 과거 법아래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지금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렘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조금 전의 예화의 노예 하녀가 노예 하녀로 있을 때에는 그 모든 법이 문자에 의한, 조문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인의 사랑하는 아내가 되고 나니 그 문자에 의한 법이 이제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러니 문자에 의한 법일 때 보다 더 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죄와 사망과 율법의 종으로 있을 때는 율법이 나를 억압하는 법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보니 그 율법이 이제 내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당연한 것 아닌가요?
따라서 우리는 율법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율법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노예하녀가 이제 주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노예로 있을 때 법에 이제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은혜 입은 것을 생각하면 그 법들을 이제는 마음에 새기고 이전보다 더 잘 지킬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은혜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은혜 아래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이 좋은 예가 요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뭔 줄 아세요? 요8:11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간음한 여인이 법아래 있습니까? 은혜 아래 있습니까? 은혜 아래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법아래 있었다면 그 결과는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간음한 여인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여인이 이제 나는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이제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했겠습니까? 만약 그래 이제 나는 은혜 아래 있으니 마음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면 이 사람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이 여인이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켰을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무엇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은 히) 토라 라 하는데, 토라의 뿌리는 야라 라는 단어에서 출발이 되는데, 야라는 방향을 지시하다, 가리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것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과 같다는 겁니다. 인생사용설명서가 율법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의롭게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지옥가지 때문이 아닙니다. 이 율법은 우리 인생길의 나침판이요, 인생 사용설명서 이기 때문에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무당이 사람 잡는 다는 말 아시죠? 선크리스찬이 사람 잡은 것 아세요? 어디서 율법주의, 율법주의, 들었다고 말씀대로 살려하면 율법주의에 빠졌다고 온갖 비난을 다 퍼붓고 자기는 율법에서 자유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진정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하려면 율법을 잘 지켜야 자유한 것 아세요? 율법을 잘 지켜야 의롭게 되고, 구원받고, 은혜와 축복을 받기 때문에,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나를 사랑하사 나의 인생의 나침판이며, 내 인생의 사용설명서로 주인 율법이기에 내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몇 주 전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왕 노릇하라 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생각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경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뭔 줄 아세요? 어떤 율법주의자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키려는 마음의 동기가 일어납니다. 조문에 기록되었기에 아니라 이제 내 마음에 새겨졌기에 과거에는 의롭게 되기 위해서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율법을 더 잘 지킬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멕아더 역을 말았던 리암 니슨, 그가 출연한 영화 중 테이큰1이 있는데, 딸 매기 그래이스가 파리에 여행을 가겠다고 조르는데, 아버지 리암 니슨은 혼자 여행은 절대 안 된다. 딸이 얼마나 원망하였겠습니까? 할 수 없이 허락을 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인신매매 단에게 납치를 당해 경매로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것을 안 아버지가 딸을 인신매매의 손에서 구해내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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