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18 25. 은혜가 내 삶에 왕 노릇 하게 하라
롬5:12~21
혹시 중환자실에 가본 적이 있으십니까? 중환자실에 있는 분들의 소원이 뭔 줄 아십니까? 일반 병실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가니까 나도 죽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처럼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였지만 아직 풀지 못한 난제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왜 사람이 죽는지, 이 죽음은 어디서 왔는지, 세상의 종교와 철학의 지혜로 풀 수 없습니다. 정치와 군사의 힘으로도, 과학과 경제의 발전으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그러면 죽음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 죽음이 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한 사람이 누굴까? 성경을 조금만 읽은 사람이라면 이 한사람이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럼 아담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가 무엇인가?
창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바로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여기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의미보다는 이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에게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한 나라의 임금이 계시는데 반역을 하고 자기가 임금이 되겠다는 반역행위 이것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의미이고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의 결과죽음이 온 것입니다.
창2장에 보면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도 죽음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까? 죄가 인간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죄가 죽음을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창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고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어 인간은 사망을 당하고 죽음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롬5:12을 다시 보시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왜 아담이 먹지 말라한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었으니 그 죄의 결과 죽는다. 아무런 문제가 없죠? 그런데 그 다음절이 뭡니까?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와 같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이와 같이” 라는 말이 성립이 됩니까? 왜 아담하고 우리를 똑 같은 죄인으로 취급합니까? 왜 똑 같은 형벌을 우리에게 내린다는 겁니까? 성경은 아담의 죄가 온 인류의 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가 어떻게 온 인류의 죄가 될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장 성경에 옳은 해석은 아담이 죄를 지을 때 우리도 함께 죄를 지었다는 해석입니다. 즉 아담이 죄 짖는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었고, 그 함께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벌을 우리 모두가 함께 받았다는 겁니다.
롬5:12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여기 “죄를 지었으므로, 죄인 된 것 같이”는 일회성 단순과거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범하는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지을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딱 한번 범한 죄를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지었다는 말입니까? 언제 지은 죄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가 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죄라고 말합니다.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리지만 증거가 분명하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죄를 지었다는 겁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죽음이라는 겁니다. 죽음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면 우리도 아담 함께 죄를 지은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죽음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리신 벌인데 왜 그 벌을 우리가 받느냐? 우리도 같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몇 시간 며칠 만에 죽은 일이 있습니다. 왜 죽습니까? 죄인이기 때문에 죽습니다. 왜 죄인입니까? 죄를 법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언제 범했느냐? 아담이 죄를 범할 때 그 아이도 함께 동참했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우리 역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지을 때 우리도 그 자리에 동참했다고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인류의 대표로 임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아담 = 시람이라 부른 것은 아담으로 인류의 대표로 임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축복한 것은 아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전부에게 내리신 축복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축복은 아담 혼자만이 독차지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담 후손 전부가 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 아담이 대표니까, 대표로 받았으니까 이처럼 축복을 대표로 받았다면, 죄의 결과도 아담의 후손이 함께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의 범죄는 곧 우리의 범죄요. 아담이 받은 죄의 결과 또한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죄의 결과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5번이나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5:15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롬5:16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예들 들면 지난 14일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이 카타르와 중요한 일전에서 아깝게도 3:2로 졌습니다. 그러면 월드컵대표팀 그들이 졌습니까? 우리나라가 졌습니까? 우리나라가 졌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나라를 대표했기 때문입니다.
예) 창9장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
노아가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된 상태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술에 곯아떨어져있었습니다. 이때 아들 중 하나인 함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가서 옷으로 그 치부를 가려줍니다. 나중에 술이 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하고 함의 별명 가나안을 지칭하여 저주했습니다. 그 결과 함의 후손들은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하고 극심한 환난 가운데 고통당하는 종족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마찬 가지로 영적 세계에서 대표성의 원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는 아담 한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 우리 모든 인류를 대표서서 지은 죄이기 때문에 아담이 지은 죄의 값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죄의 전가(轉嫁)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정리를 해보면 사람에게 죽음이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 죽음이 들어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한 사람은 아담을 말합니다. 그러면 아담이 지은 죄는 도대체 어떤 죄인가? 먹지 말라한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은 죄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을 거부한 죄입니다. 그 죄의 결과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담의 죄의 값이 우리에게도 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입니까? 아담이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인류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시고 한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15절 이하에서는 한 사람 아담과 대조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죽음의 존재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또 한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원코자 하셨던 것입니다.
16절을 보세요.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첫째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도장 찍혔습니다. 정죄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은 참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이 지은 죄로 왜 내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는데 내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는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의인 된 사실입니다. 저 사람이 잘했는데 내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저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산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오늘 본문은 “은혜” “은사” “선물”이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요 사랑을 은혜, 은사라고 합니다. 선물은 이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 이 은사는” 16절에 “이 선물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가리키고, 그것으로 인해 영원히 사는 생명 얻음을 가리킵니다. 의롭다함과 영생을 가리켜 이 선물, 이 은사라고 말을 합니다.
첫째 아담이 죄의 시발점이 였다면 둘째 아담은 죄의 마감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인하여 죄가 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에서 의롭다하심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을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완벽하게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은사요, 선물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을까요? 첫째 아담이 범죄 하여 많은 사람들을 죄로 물들었으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 구원을 우리에게 은혜, 은사,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선물이요, 은사요 은혜입니다. 이 은사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은혜가 뭡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바를 우리로 하여금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인데 이것을 값없이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은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더욱, 넘쳤느니라
바울이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불순종한 아담에 의한 죄와 죽음의 권세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의 월등하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뛰어넘는 강력이라는 겁니다. 죄와 죽음을 뛰어넘는 풍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딤전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지금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할 당시는 바울은 이제 대사도의 반열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바울, 바울, 위대한 종이라고 떠 받들던 그때 바울은 틈만 나면 과거 비참했던 것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13절에서만 머물고 있지를 않습니다. 14절로 넘어갑니다. 딤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과거에 참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 얽매여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의 영향을 받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신감 아닙니까?
3.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은 로마서5:17, 21절입니다.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은혜가 내 삶에 왕 노릇 하게 하라, 은혜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라, 은혜가 내 삶을 다스리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하고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아담으로 인한 죄의 영향, 옛사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늘 염려하며 걱정하며, 열등감에 빠져 불안해하고 초초해하며, 남을 판단이나 하며 세상 쾌락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영향을 받으며 늘 평안과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자는 겁니다.
롬5:12-14에서는 과거에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죄와 사망이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5절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사망이 더 이상 나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더 이상 내 주인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이제 내 새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의롭게 하시고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새 주인이 되셨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면 그러면 예수님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사람답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딤전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13절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부 싸움을 전혀 안할 수는 없지만 부부 싸움을 하고 계속해서 13절에 사로 잡혀 있지 말고 빨리 은혜가 영향을 미미는 14절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전히 13절에 사로잡혀 머물러 있습니다.
13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특징? 불순종입니다. 말끝마다 반항하는 사람,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판하고, 판단하고, 시기, 질투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체질의 분들 계시죠? 이런 처질의 분들은 회개하고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판하고, 고발하고 남을 꼬집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라온 과정에서 늘 당하고 거절당하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체질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항상 푸근하고 격려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캐릭터입니다.
딤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4절로 뛰어넘어온 사람의 특징? 사도바울은 19절에서 한 단어로 설명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되리라”
여러분 은혜가 나를 다스리는 자의 삶의 특징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캐릭터를 순종이란 단어를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가 마셔야만 합니까?”하는 질문이 예수의 마음속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스트롱 헬라어 사전에 은혜를 이렇게 정의 합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은혜란 마음을 거처 삶으로 나타나는 신적 영향력이다” 여러분 은혜는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란 마음을 거처 삶으로 나타나는 신적 영향력입니다. 은혜는 단순히 이론적, 교리적이고 정적인 그 무엇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란 말로만 은혜, 은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실제적 내 삶을 회복시켜주는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실제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견인해 가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은혜가 여러분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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