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4. 23.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기쁨)
롬5:1-2
오래전 TV에 국민 코미디 프로인 개그콘서트에 “누려”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한 가족이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뒤 생활하는 모습을 다룬 내용입니다. 시부모님과 며느리가 나오는데 이들은 현재 돈이 많아 원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지만 그들의 과거 삶이 몸에 배여 있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과거의 행동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종업원이 와서 음식을 주문받았는데 이모! 여기 스파게티 두개와 와 파스타 하나요, 그럴 때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며 서로 현재의 호사를 누리라고 격려해 주며 큰 목소리로 “누려”를 외치는 그런 코너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 된 삶의 습관을 따라 살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렵지 않게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기도로 나가는 것이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두 번째 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 즉 “기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 할 축복이 기쁨인데 가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까? 이 기쁨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까? 만약 나는 기뻐, 그래 나는 기뻐지라고 판단되시면 그 기쁨이 어디서부터 오는 기쁨인가를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가짜 기쁨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왜 가짜 기쁨이 난무하는 줄 아세요? 그만큼 기쁨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소중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은 것 아시죠? 그래서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짜 기쁨이 뭐냐? 세상적 쾌락이 가짜 기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가짜 기쁨, 세상적 쾌락을 진짜 기쁨인 줄 알고 이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 좋은 자동차, 화려한 스펙 이러한 것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려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진정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여러분 이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의 마지막 고백이 뭔 줄 아십니까?
전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여러분 여기서 솔로몬이 수고한 그 모든 것이 헛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것은 세상 쾌락으로 통용되는 사이비 기쁨입니다.
2.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 할 축복이 기쁨인데 진짜 기쁨은 무엇인가?
기쁨과 관련해서 우리 앞에 두 갈래 선택길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성령님이 주시는 진품 기쁨, 다른 하나는 가짜 세상적 쾌락이 있다는 겁니다.
성령이 주시는 진품 기쁨이란?
1) 구원의 기쁨
왜, 구원의 기쁨이 성령이 주시는 진품 기쁨인가? 복음의 시작자체가 기쁨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도바울이 로마서 1-4장까지에서 강조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면, 다시 말해 복음을 받았다면 그 증거가 무엇인가? 반드시 기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약에 나오는 “복음”은 헬) “유앙겔리온”인데 즐겁다, 기쁘다, 희락이 넘치다 는 뜻을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그 자체가 기쁨의 회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가끔 선물을 받게 되는데, 선물 = 기쁨이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을 받으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기쁨이라는 겁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기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끝난 가족끼리 왜이래 드라마를 보면 달봉이가 서울이 에게 선물을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서울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달봉이가 왜? 마음에 안 들어? 이 때 서울이가 한 말이 아니냐. 기뻐, 선물은 다 기쁜 거야..
마찬가지로 복음을 받았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할 내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나님과 원수 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살았다. 이것이 복음인데 이 복음을 받았다면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나는 복음을 받았는데 기쁘지는 않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이냐? 바로 기쁨입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말씀은 이러한 기쁨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내게 주어진 현실, 일이 잘되고 안 되고, 가정이 어렵고 어렵지 않고 이러한 것들과 상관이 없는 내 안에 복음이 주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쁨이 있습니까? 이 기쁨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성경번역가 윌리엄 틴 데일은 이런 말을 합니다. “복음은 상처 입은 자를 기쁘게 하고, 찬송하게 하고, 춤추게 하고, 기쁨으로 뛰놀게 한다” 그러니까 복음 그 자체가 기쁨의 회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적질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것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해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너희 마음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라,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가장 시급히 회복해야 할 것은 기쁨의 회복이라는 겁니다.
눅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 현상만으로 기뻐하지 말고 본질을 가지고 기뻐하라는 겁니다. 일이 좀 잘 된다고, 가정이 좀 화목하다고 일이 잘 풀리는 이러한 것 가지고만 기뻐하지 말고 본질을 가지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행3장에 나오는 구걸하는 한 장애인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동전 한입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은 동전한 잎을 준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 것입니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이 복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은 기쁨, 그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본질적 기쁨이 예배 중에 일어나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동전 한 입 구하러 교회 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질을 구해야합니다. 동전 한 닢 얻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복음의 능력으로 영혼이 구원받고 기뻐하고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는 사건이 일어나야하는 것입니다.
요15:11절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어떤 일이 있는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것 아셔야합니다. 부흥이라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 내게 온전히 전이된 상태입니다.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부흥이 아닙니다. 애가 뚱뚱해 졌다고 건강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 많이 모였다고 부흥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진정한 부흥은 과연 주님의 그 기쁨이 내게 전이되고 있는가? 이 기쁨을 느끼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신천지 화두 – 당신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기존 교회 성도가 주님의 기쁨이 전이가 되지
않으니 일어난 일 아닙니까?
구원의 기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원받는 자 만 알 수 있습니다.
2) 2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리라” 고 하십니다.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을 조금 바꾸어 읽어보면 “나는 이 세상을 살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즐거워해야한다” 여기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유업을 소망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던 존 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은 천국이란 말과 동의어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계시된 곳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천국을 설명해야 하는데 가장 조심스러운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아직 한 번도 가본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빚나간 설교를 해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설교입니다.
요즘 인터넷에 가짜뉴스가 난무하듯 천국에 관한 가짜뉴스들이 판을 칩니다. 나름 천국보고 왔다고 하면서 별별 말로 순진한 성도들은 유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이 무엇이냐? 어떤 곳이냐 알려고 할 때 말씀에 충실해야 되고, 말씀을 통해서 추리하고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범위를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 듯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설명을 해줘도 우리가 감당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한한 인간은 천국의 참모습을 잘 알지 못합니다. 유한한 인간의 눈으로는 천국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천국의 그 무한한 기쁨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고 살기 위해서는 2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알아야하고 둘째는 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첫째, 천국은 죄의 저주가 없는 곳이다. 이 세상의 악한 것들, 슬픈 것들, 고통스러운 것들, 허무한 것들 비참한 것들 말로 다할 수 없는 저주가 있지 않습니까?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계21:3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영원한 평화가 있는 곳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둘째, 천국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는 곳이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세상과 동일할 것이다. 천국에도 하늘이 있습니다. 땅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있습니다. 천국에도 몸을 입고 사는 인간이 있습니다. 다르다고 하면 모든 것이 새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계21:5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하였으니 만물이 존재합니다. 에덴동산 보다 더 완벽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셨고 그 만물을 즐기며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의 몸도 부활하신 예수님 몸처럼 신령한 몸으로 덧입게 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어떤 곳이야?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지고 즐기는 실제적인 장소요 현실이 되는 곳입니다. 즉, 사람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예) 시원한 냉수, 사과, 음악, 반려견, 첼로, 완벽한 인간관계
어린아이가 배고파 우는 것은 엄마가 있기 때문이듯 이 세상에 불만족은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천국은 밤 낮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만큼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계7:9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런 찬송의 행복을 어거스틴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바라보게 되고, 실증남이 없이 사랑하게 되고, 지침이 없이 찬양하게 될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목적이 될 것입니다”
천국을 사모해야하는 이유?
첫째, 세상에 우리가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서
둘째,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고 살기 위해
셋째, 선한 일에 헌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한일이란? 하나님의 뜻이 다 선한 일입니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쉬게 될 우리의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의 본래 본향입니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그래서 우리의 즐거움의 원천은 국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땅 거센 비바람 그 많은 역경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가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가 있는 이유는 주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한 가정이 있는데 늘 전셋집을 떠돌며 살다가 처음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부터 이 식구들은 늘 그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는 것입니다. 아파트 기초를 다지고 한층 한층 올라갈 때 마다 이 아파트가 완공되면 그 곳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살 것을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아시죠? 이들이 지금 전셋집에 단다고 불평하겠습니까? 안 해요, 뭐하려고 하냐고요, 조금 있으면 내 집에 이사 갈껀데...
3.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또 내가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합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소관입니다. 성경에 “희락” 기쁨이라는 단어는 헬) “카라”인데 이 단어는 “은혜” 라는 “카리스” 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 하나 균형은 기쁨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 한 내가 기뻐하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에서 “성령의”를 원어로 보면 ~~에 속한, ~~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에서 성령의 열매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이 맺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에서 얻는 것, 내가 수고해야만 얻는 것입니다. 내가 쟁취해서 얻는 것입니다.
롬7:4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여기 주어 : 내가 주어 아닙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다윗이 사울에게 도망가다 도망가다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쓴 시가 시편57편 아닙니까?
다윗의 울분을 이렇게 표현
시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은 그 우울증 걸려 자살하고 싶은 상황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6절에 갇혀 사는 인생으로 날마다 억울하고, 날마다 분하고, 원수들은 왜 이렇게 많고, 일은 왜 이렇게 안 풀리고 날마다 6절에 갇혀 가지고 어두침침한 동굴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6절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기어이 자기의 감정에 상처에 매이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나님 주신 기쁨을 쟁취해 내는 것입니다.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4.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기쁨을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기쁨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셔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 내가 기뻐해야지, 기뻐해야지 한다고 다 기뻐해 집니까? 어떤 경우는 내 의지의 영역으로 기쁨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의지의 영역의 한계를 벗어난 그런 힘듦도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 여려움과 역경 가운데서 기쁨의 삶을 살았던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 중 다윗을 보세요.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6: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여러분 보세요. 여기 두 사람이 나오죠? 한 사람은 살기 위해 도망 다시는 사람과 또 한 사람은 죽이기 위해 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이 빼앗기지 않는데, 대신 칼자루를 쥐고 다윗을 죽이려 뛰어 다니는 사울은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세요.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on the Spirit of the LORD came(케임) upon(어폰) David in power.
-> 여호와의 성령이 다윗에게 능력으로 찾아와 주셨다는 겁니다.
다윗 안에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다윗이 삶의 먹구름에 함몰되지 못하도록 능력으로 찾아와 주시니 다윗의 활력 있는 삶을 살더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환경의 경, 중과 상관없이 성령님을 초청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면 그분이 in power 능력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되면 우리도 다윗처럼 환경을 기쁨의 삶을 살줄 줄 믿습니다. 다윗이 환경이 지금 당장 변화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환경은 그대로 인데 마음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배회복을 위하여 몸부림 쳐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는 인생을 덧입기 위해서는 예배회복 이것을 꿈꿔야 합니다. 왜? 예배하는 그곳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역하시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번뇌하던 사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때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가더라는 겁니다. 이 기쁨을 먼저는 내가 누리고 그 다음은 이 기쁨을 나눠주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인 진품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 기쁨의 출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기쁨과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기쁨이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성령 하나님께서 “in power” 능력으로 임하셔서 맛보고 경험하고 누리며, 이 기쁨을 흘러 보내는 삶을 사기기를 축복합니다.
'성경권별설교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은혜가 내 삶에 왕 노릇 하게 하라(롬5:12~21) (0) | 2017.06.18 |
---|---|
24.환난 중에 즐거워하나니(롬5:1-11) (0) | 2017.06.11 |
22.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기도)(롬5:1-2) (0) | 2017.05.28 |
21.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화평)(롬 5:1-11) (0) | 2017.05.21 |
20.구원받는 참 믿음이란?(롬4:17-25) (0) | 201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