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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21.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화평)(롬 5:1-11)

by 오용주목사 2017. 5. 21.

2017.5.21.                               21.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화평)

5:1-11

 

여러분 혹시 오노다 히로오라는 일본 군인을 아십니까? 이 사람은 2차대전 당시 일본제국군 부대의 정보장교였는데 일본의 패전이후 무려 294개월 동안 전쟁이 끝났다는 외침을 거듭 거듭 듣고도 이 외침을 믿지 않고 도리어 항복을 받아 내려는 계략이라고 여기고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 루뱅에서 숨어 지낸 사람으로 큰 화제 거리가 된 인물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기사가 왜 생각났는가 하면 지금 이 오노다 히로오의 모습이 꼭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노다소위는 294개월 이란 긴 세월동안 얼마든지 자유를 누리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믿지 않음으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누리며 살아야 할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지 못하였던 것처럼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 거듭 반복적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누리며 살아야할 그 엄청난 축복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로마서 51절을 보십시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여기 그러므로는 로마서 1장에서 4장까지 전체를 요약하고 정리해주는 접속사 그러므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전체 내용을 어떻게 요약하는가 하면 이렇게 요약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바울이 로마서 서두인 롬1: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러면서 바울이 로마서 전반부에서 굉장히 길게 그리고 강력한 어조로 강조한 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쭉 길게 설명을 하고서는 321절을 기점으로 대 반전의 말씀이 등장을 하는데 3:21절을 보십시오.

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 그러나는 로마서 3:20절까지의 상황을 대 반전하는 그러나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길이 없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그러나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신 대안이 무엇인지를 3:23.24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렇게 설명하고는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인물을 예로 들어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선한 행함도, 할례도, 율법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의 피로 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4장까지 말씀을 피력하고 5장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앞에 내용들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로마서 5장 서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나오는 것을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1,2절을 보십시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여기가지가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것이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냐? 그렇다면 1절하반부와 2절에 나오는 화평, 은혜에 들어감,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것이 원인인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이 원인에 대한 결과를 누리고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리지 못한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먼저 구원 받은 자로서의 누리는 삶은 무엇을 누리는 것인가 본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가지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오늘은 한 가지 화평에 관해 살펴 보고자합니다.

 

1.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의 축복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여기 화평은 다른 말로 평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헬) 에이레네 로 히) 샬롬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화평은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으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데서 오는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화는 환경과 상관이 없는 원수 된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으로 오는 본질적인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환경적으로 전혀 부족한 것이 없는데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사람과의 깨어진 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환경적으로나 사람과의 관계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데 평안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있고, 뭔가에 눌리고, 그래서 늘 초초하고, 조급하고,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일을 하면서고 걱정, 잠을 자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원수사이기 때문입니다.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까요?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에서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죄의 열매들 도덕적, 윤리적, 관계적 죄의 열매들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롬5:10절을 보시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1절을 자세히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여기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도, 누릴 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평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의 감정 이것이 평안, 샬롬입니다.

 

오늘 이 세상을 한번 보세요. 참 평안을 모르니까 가짜 평안, 거짓 평안에 목말라 있는 것 아닙니까? 물질이 참 평화를 줄줄 알고, 더 넓은 아파트, 더 큰 승용차, 더 높은 지위가 평안을 줄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은 다 가짜 평안입니다.

이것이 진짜라면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다 행복해야 하고,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다 불행해야 합니다. 또 이 논리가 진짜라면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행복해야하고 시시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불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오스카 톰슨의 관계중심전도 책을 보면 서두에 여러분이 가장 행복한 때와 불행했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러면 가장 행복했을 때는 바른 관계였을 때고 가장 불행하였을 때는 깨어진 관계였다고 말합니다.

 

마찬 가지 아닙니까? 우리의 본질적 불행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우리의 본질적 불행이라면 우리의 본질적 행복은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이 아닙니까? 그 관계를 회복케 중개자 역할을 하신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참 평안은 예수님이 개입한 평안이 참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즐기는) 평안이 있습니까?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평안이 마음에 있는가? 평안을 체험하였는가?

 

2. 우리에게는 왜 이 본질적 평안이 없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평안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평안이 없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비정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본질적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죄책입니다.

죄책이란? 죄에 대한 가책의 약자입니다. 이 죄책은 과거에 범한 어떤 죄로 인하여 양심적으로 당하는 어떤 불안과 고통을 말합니다. 어떤 죄는 한번 회개하면 깨끗이 잊어버리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죄는 몇 십 년이 흘러도 계속 남아있습니다. 회개도 수십 번 했죠, 생각 날 때마다 눈물 흘리고 회개를 했죠, 그리고 그 죄를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의 죄입니다. 몇 년 전의 죄입니다. 회개도 하고 다시 짓지도 않는데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생각합니다. 내가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야, 설령 용서를 받는다 해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 스스로 이렇게 판단합니다. 따라서 계속 가책이 남아있습니다.

이 가책은 통증과 비슷합니다. 병원에 가면 무서운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통증이 찾아보면 어떻게 합니까? 모르핀을 맞습니다. 그리고 나면 잠간은 통증이 사라지지만 한두 시간 지나면 그 통증이 다시 찾아옵니다.

 

죄책이 이와 같습니다. 주여, 회개 합니다. 용서해 주시오 기도하면 사리지는 것 같아요.그런데 눈뜨면 금방 다시 찾아옵니다. 설교를 들으면 예수를 믿으면 나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구나, , 감사합니다. 할 때는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슬슬 고개를 내 밀고 나와요. 이 죄책이 우리 마음의 평화, 샬롬을 산산이 짓밟아 버립니다.

 

2) 불완전성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 내가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내게서 자주 노출 되는 옛 자아의 추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를 믿고 이만큼 신앙생활을 했으면 마음의 생각도 좀 선해져야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덕이 있어야 하교, 내 행동이 이만하면 예수 믿는 사람답다 하는 뭐가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변화지 않는 내 모습의 추태를 보면 죽을 맛이라는 겁니다. 습관적으로 자주 넘어지는 이런 저런 죄로 인해서 더러워지는 자기 자신을 볼 때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증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런 죄책이 마음에 있으면 절대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3)율법주의에 빠지면 이 샬롬이 사라집니다.(행위를 의지함)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은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 평안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뭔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있으면 평안한 것 같다가도 내 놓을 것이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기도를 왜 하느냐? 자기 평안을 위해서 합니다. 왜 성경을 읽느냐?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율법주의에 빠지면 마음에 절대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죄책이나 불완전성이나 내가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나쁘다는 말보다 불행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과거가 깨끗해서 우리를 의롭다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얼마나 의로우냐를 보고 나를 의인 취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든 현제든 미래든 나의 모든 죄를 먼저 처리하시고 무조건(조건이 없다는 말) 나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는데 왜 나는 과거에 매여 있을까? 왜 나는 현재 나의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고통 할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불행하죠.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인간의 모든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입니다. “내가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겠소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죄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은 과거 현제 미래를 통틀어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내가 과거에 지은 죄, 지금 현제 내가 짓고 있을 수도 있는 죄, 미래에 내가 빠질지도 모를 죄 까지 다 포함해서 모든 죄 용서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의 사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서 의인이 된 것 아닙니까? 아멘입니까?

 

여러분 세상 법에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일단 판결이 확정되면 같은 사건에 관하여 다시 공소(公訴)의 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이것이 일반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일반법도 이와 같은 원칙이 적용되거든 하물며 모든 법의 원천이시요 모든 법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서 똑 같은 죄에 대해서 예수도 벌하고 나도 벌하는 것이 가능하냐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벌을 받을 때 분명히 나 때문에 받았다 말입니다. 나 때문에 피를 흘렸습니다. 나의 모든 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그가 홀로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벌을 내리고 심판 하실 때에는 나에게는 이제 벌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나에게 내린다, 이중으로 벌을 내린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고통 한다 정말 바보스러운 일입니다.

 

3. 자 그러면 죄책, 불완전성서에서 오는 고통, 율법주의로 인한 불안 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축복 속에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비결, 그 비결이 뭐냐?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것이 비결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지 내가 과거에 죄가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 앞에 완전해서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 만족스러워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조건은 다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길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 분 때문입니다. 이 비결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데 그렇습니까?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가 누구냐?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희생된 분이다는 겁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고 의롭다하신 분이십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예수가 누굽니까? 내가 연약해서 선을 행할 수 없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 경건치 못할 때 그 경건치 못하고 연약한 것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분입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가 누가냐?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죄인의 신분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죽어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 안겨주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예수가 누구냐?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빼낸 사람입니다.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예수가 누구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자기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화목 시킨 분이란 말입니다. 이 예수 때문에, 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이지 내가 과거에 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거 깨끗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 화평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사 나의 연약함, 나의 죄 됨, 나의 원수된 것, 다 짊어지시고 죽으신 그분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뭔 줄 압니까?

우리는 이 예수님을 배재하고, 빼버리고 하나님과 독대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의 문제도 예수님을 빼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나의 죄를 생각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지 말고 예수 안에서 나의 과거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서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자기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고 용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나무가 만족스러운데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불만족스러운 것 아닙니까? 그러니 자기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내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예수 그리스도 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만족시킨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의 공로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때 자기 자신을 껴안아 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평화를 누리는 것이 비결입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는 자기를 보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