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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19.이신칭의(以信偁義)(롬4:1-17)

by 오용주목사 2017. 5. 8.

2017.5.7.                                                19.이신칭의(以信偁義)

4:1-17

 

 

우리는 2017년에 들어와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라는 표어아래 성경 66권 중 복음의 보고인 로마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1:1-7 인사말이 무려 7절을 할애하는데 인사말에서 강조하는 것

1) 참된 복음은 세상의 황제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참된 복음임을 강조합니다.

2)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임을 강조합니다.

 

1:8-17 서론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18절 본론이 시작되는데 본론에서는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의 죄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롬1:29-31 탐욕, 미움, 질투, 살인, 분쟁, 거짓, 빈정거림, 험담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난폭, 거만, 허풍,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방법으로 죄지을 생각을 하고, 부모에게 반항, 1:31 사물을 곡해,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김, 동정심 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냉혹한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2장에 들어와서는, 로마서 1장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씀했다면 2장은 하나님을 잘 믿고, 율법을 잘 지킨다는 유대인들을 향한 죄의 심각성을 신랄하게 지적하는데, 그 죄가 바로 남을 판단하는 죄입니다. 그러면서 1장의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죄나, 잘 믿는다 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너희들이나 똑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3장으로 넘어오면, 3:1-20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다 지옥 갈 죄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앞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롭게 되기 위해, , 심판을 피하기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열심히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구원)게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31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대안을 제시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 것을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이신칭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이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못 알아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3장에서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은 오직 한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몇 번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렇게 몇 번이고 설명했는데 그런데 오늘 본문 로마서 4장을 보면 또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초대교회 당시 교회 안에 가장 골칫덩어리가 누군가 하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골치가 아니라 믿으면서 골칫거리였습니다. 등록카드 다 제출했습니다. 성경공부에도 잘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성경을 순수한 그대로 잘 받아들이지 않고, 이유를 달고, 비비꼬고, 잘 안 믿으려 하는 겁니다.

 

3장에서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거든, 모든 죄 용서 받기를 원하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러면 믿으면 되는데 자꾸 이유를 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여전히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된다는 율법주의 때문입니다. 율법주의는 지금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그 시대에 팽배한 신앙관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에 쉽게 동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제가 여러분에게 아니야, 구원은 율법을 열심히 지켜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아멘 하시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그런 상황입니다.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자꾸 이유들 들이 됩니다.

 

아니, 구약의 우리 선조들은 그런 식으로 구원 안 받았는데, 구약에 우리 선조들은 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았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나? 그때는 예수가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런 식으로 이유를 달고 나온 겁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이유를 들고 나온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됩니다.

) 여기 병이 들어 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그 환자보고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가 뭐라 해도 약도 먹지 말고, 병원에도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을 믿고 가만있어 이렇게 하는 것과, 이봐 이거 요즘 새로 나온 신약인데 한 번 먹어봐, 먹어보면 분명 차도가 있을 거라고 할 때 어느 쪽이 더 쉬워요? 후자가 쉽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차라리 이것해라, 저것해라 그래야 의롭게 된다고 했으면 받아들이기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가만있어라, 믿기만 해라, 너 잘난 것 들고 나올 필요도 없고, 예수만 바라봐, 예수만 믿어, 이러니까 이걸 유대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오늘 현대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내가 공을 들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믿기만 하면 된다 하니, , 이런 진리가 다 있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설명해 주기 위해서 4장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롬4장에서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들의 예를 듭니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닌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면서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함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아브라함의 예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 1-2

아브라함은 할례를 통하여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다. 9-12

아브라함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도 아니다. 13-17

 

1)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 1-2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육신 :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어떤 것 = 행위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입니까?

문명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말씀에 순종하여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사람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이 축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조카 못의 종들과 아브라함의 종들이 목초지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될 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하리라 하면서 얼마든지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아브라함 혼자만이 아닌 모든 식구와 종들의 생명과 직결된 기득권을 포기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약속받는 사람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사도바울은 이런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하고 싶은 말은, 아브라함이 이런 놀라운 이력서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구원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모든 놀라운 타이틀과 화려한 삶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행위로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아브라함, 이 잘난 아브라함, 이 대표적인 아브라함이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었다면 여러분과 저 가운데 자신의 행위나 업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있는 사람이 도무지 존재할 수가 있을까요?

 

그럼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2) 아브라함은 할례를 통하여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다. 9-12

할례 : 남자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행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브라함도 할례를 통해서 의롭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러나 본문의 9절 이하에 보시면 바울사도는 무엇을 지적하고 있습니까?

 

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말씀하셔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7: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17: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런데 창세기 15장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먼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이 창15장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후 14년이 지난 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받은 것과 구원, 의롭다함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를 왜 하나님이 받으라고 했느냐?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 할례는 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샤인 입니다.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14년 전 오직 믿기만 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도장을 찍듯이 14년 후에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내용이고 할례는 그것을 인정하는 도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할례를 받아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다 틀렸다는 말입니다. 할례를 받은 것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확증하는 샤인 입니다.

그래서 갈5;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은 성격을 띱니다. 세례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를 받음으로 비로소 죄가 용서를 받습니까? 아니면 죄 용서 받은 것을 세례로 확증하는 것입니까?

세례는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받는 것이지,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 : 영세를 받아야 죄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죄 용서를 받았습니까? 예수를 믿자 말자 죄용서 받은 겁니다. 그리고 죄 용서함을 받았으니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본문의 9절과 10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된 것이 할례를 받음으로써냐? 아니면 무할례시냐? 정답은 무할례시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통하여 의롭다 함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본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도 아니다. 13-17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아브라함도 율법을 신실하게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만약 여러분 아브라함이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 아브라함은 율법시대에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율법이 주어진 때는 언제인가하면 모세 때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후 430년이 흐른 다음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시대에는 율법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주시기 43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13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 이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세상이 복을 받고,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그 씨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이 구원을 받고 그래서 구원받은 자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세상의 후사가 되겠다고 하는 이 언약,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율법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성취되는 예언이었지 율법을 지켜서 성취되는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2. 다윗의 예

4:6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다윗은 누구입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민족을 통일했던 위대한 통일대통령이요, 한 나라의 국부요, 역사의 위기에서 그 민족을 구출한 구국의 영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노래와 악기는 귀신들을 좇아냈고 그 민족에게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백성들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고난의 역사와 어두움의 터널을 승리롭게 지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불법한 사람이었고 죄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죄가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의 부하의 처를 간음한 사건이요, 그 아내를 빼앗은 사건이요. 간음으로 임신한 것을 감추기 위해 그 처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간 살인죄를 저지른 천인공노할 자입니다.

그런데 롬4:7절에서 뭐라고 말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이 말은 다윗이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편이서 일방적으로 무조건 다윗의 죄를 눈감아 주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 편이서 일방적으로 다윗의 죄를 눈감아 주었다는 말입니다.

 

여기 중요한 단어가 둘이 나옵니다. 첫째는 사하심이고 둘째는 가리어짐입니다.

사하신다는 단어는 본래 원어에서는 없앤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자기 죄가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의 기록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일본이 과거 죄를 없애려고 하는 짓이 이 짓 아닙니까? 그러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갈등입니다.

 

둘째로 가리움입니다. 죄인들은 자기가 죄를 범했다는 그 자체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죄가 노출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가리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가리워지지 않습니다. 가릴 수 없는 죄 문제, 없앨 수가 없는 죄 문제.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약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애 주실 수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여러분과 저의 죄가 완벽하게 가리워 질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복음일까요?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 가리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처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에게서 하나님은 무엇밖에 보시지 않습니까? 피 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가 완전히 가려진 하나님의 완전한 처방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구약에 나타난 구원의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 그리스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한 가지 예를 드는데 4,5절을 보십시오.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자들을 그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당연한 대가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일당을 받은 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일을 하고 당당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일당을 받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 어떤 선한 행위를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경건하지 아니한 : 성품이 깨끗하지 못하다. 본성이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아멘입니까?

 

여긴다” : “내 주머니에 돈을 넣는다는 의미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내 주머니에는 예수님의 의를 갖다 넣으시고, 예수님의 주머니에는 내 죄를 넣는 다는 말이 여기신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인정해 버린다는 말입니다.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는 자로 인정하고, 깨끗하지 못한데 깨끗한 자로 인정하고, 일도 하지 많았는데 일한 자로 인정해 버립니다. 의가 없는데 의인으로 인정해 버립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보시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피의 공로로 나를 무조건 의롭다고 인정해버리는 것이 여기다입니다. 4장에 11번나옴

 

여긴다. 이 말은 하나님 편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따지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 편에서 의롭게 되게 위해서 내가 할 일이나 보탤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또 이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좋아서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요청해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서 우리가 할 일을 하나님이 주시니 감사함으로 그냥 받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내 같은 것이 어떻게 받습니까? 이런 자 하나님이 참 싫어하십니다.

) 아브라함

 

말씀을 맺습니다.

4:6절에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여기 행복이란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 따라오는 축복인데, 여기 행복이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하나는 현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현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 나를 의롭다 하신 진리,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나를 의롭다 하신 진리,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지금까지 상습적인 죄책감에서 살던 사람이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게 행복입니다.

 

나를 의롭다 하신 진리,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살았는데 그 모든 노예에서 자유함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는 무엇입니다.

 

내가 죄인인데 의롭다 함을 받았다. 생각하면 기쁨이 넘쳐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평안이 있습니다.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는 상쾌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이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무자격도 없는 사람, 일한 것도 없고, 경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니까 나를 의롭다하시고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다 잊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감사합니다. 감합니다. 하니 그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것이 다 풀어지고요 그 가슴속에 있던 불만 요인이 다 사라지고요, 그 가슴속에 있는 모든 욕심이 다 녹아시즌 것을 그들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난해도 찬송하고, 실패해도 감사하고

그래서 이 땅위에 있는 일들이 잘되지 않아도 항상 나를 의롭다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 마음속에 감격이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행복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 행복 주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감격을 회복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