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30. 18.십자가 복음과 은혜
롬 3:21-31
우리는 지난주일 로마서 3장 20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두가기 측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오래참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과 또 다른 측면은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잘 믿는 다고 하는 자들의 죄, 바로 남을 판단하는 죄에 대해서 바울이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이나, 또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이나 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것을 3장20절까지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롬3:21절부터입니다. 원문에는 “그러나” 접속사가 있습니다.
롬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어떤 신학자들은 ‘그러나’를 기준으로 BC와 AD로 구분하는 ‘그러나’ 라고까지 말합니다.
BC :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
AD :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그러면 BC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자기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간구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 율법은 모세오경을 말하지만 좁게는 십계명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기에 자기들 나름대로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613가지 세부 항목을 정해서 이것까지도 율법이라고 하면서 이 613가지 항목을 지키는 것을 율법을 지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는가 하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단순히 기계적으로 613가지 항목을 지켜내는 행위에만 치우쳐있다 보니 좀 지키는 자는 교만과 또 지키기 못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악한 도구로 전락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하는 율법주의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왜 주셨는가? 근본목적이 무엇인가? 출20장에 십계명을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사도바울은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합니다. 롬3:3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을 지킴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도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제 롬3:21절에 나오는 “그러나”의 반전의 접속사를 타고 그동안 율법을 의지하고 율법을 행한 것을 자랑하는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로 나가야 합니다.
롬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오래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BC의 삶을 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을 통해 BC의 삶에서 AD의 삶으로 전환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환할 수 있습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1.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죄의 열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그럼 죄의 본질, 본성이 무엇인가? 롬1:18에서는 “진리를 가로막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예) 독도가 일본 땅 맞습니까? 그런데 일본 정부는 여전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합니다.
위안부도 그들은 스스로 창녀생활을 했지 한 번도 강제로 동원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식민지도 그들이 우리를 보호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분노가 일어나죠, 왜, 진리를 가로막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니까, 여러분 이것이 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이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가 사망, 죽음이라는 겁니다. 과거 죄 중에 가장 죄벌이 무거운 죄가 반역죄였습니다. 이 죄는 3족을 멸했습니다. 3족이란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인 조족, 형제와 그 소생인 부족, 본인의 아들 및 손자인 기족을 말하는데 마찬 가지로 하나님을 부인한 자들의 결과가 뭐냐? 죽음입니다.
죽음에는 3종류
- 육체의 죽음: 육체와 영혼이 분리(사형 집행의 오랜 세월 연기)
- 영혼의 죽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짐, (예, 줄기에서 끊어진 잎)
- 영원한 죽음: 지옥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죽어야지요,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 하와 이후의 인간들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육체와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죠. 그런데 문제는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혼은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여러분 왜 사람이 알면서도 하나님을 부인할까요?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목사다보니 많은 임종을 보게 되는데 사람이 죽은 증거가 뭐냐?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영혼이 죽은 증거가 뭐냐?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육체가 원하는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망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 그의 영혼이 살아있을까요? 죽었을까요? 이것이 죄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말씀 + 성령의 조명, 아침 세수를 하다가
2. 율법을 잘 지켜서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사람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와 질 수 없습니다.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팀 켈러목사가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려는 것은 태평양을 헤엄쳐 건너가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수영을 못합니다. 또 한 사람은 수영을 좋아하고 꽤 수영실력도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국가대표 수영선수입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첫 사람은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익사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처음에는 꽤 나가더니 얼마가지 못해 허우적거리다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수영 선수는 4.8km 지점에서 지치기 시작하여 6.4 km에서 힘이 소진되더니 8 km 지점에서 익사했습니다. 수영실력은 다르지만 태평양을 건널 수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대안을 제시해 주셨는데 그것이 21, 22절 말씀입니다.
롬3:21 (그러나)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지금 유대인들의 모습이 율법이라는 늪에 빠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져 가만있자니 죽을 것 같고, 살아나려고 바동거릴수록 점점 더 늪에 빠져가는 인생을 불쌍히 보셔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뭔가?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여기 화목제물이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시는 제사 이게 화목제물입니다.
그런데 여기 ‘화목제물’ 할 때 화목은 히브리어로 ‘쉐렘’인데 이 단어는 ‘샬롬’이라는 단어와 뿌리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어원적으로 조화, 안녕, 평화 이런 뜻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화목제물은 죄로 말미 암에 깨어져버린, 죄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의식으로서의 제사를 화목제물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짐승의 피가 아니고 당신을 내어 주심으로 십자가에서 흘린 피 생명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은 그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용어인데 당시 노예의 값을 지불하고 자유케하는 것이 속량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에 빠진 우리 인생을 돈을 지불하고 건저주신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생명을 대신 지불하고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으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그 피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어떻게 됩니까?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 두 아이 (내 아들, 이웃집 아들) 둘 다 물에 빠졌는데 내 아이는 너무 못 땐 놈인데 반해 이웃집 아들은 너무 착한 아이, 둘 중에 한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구하겠는가? 내 아들? 왜? 내 아들이기 때문, 아들이기 때문에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구원이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사실 진리는 단순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 가운데 이 십자가를 이론이나 논리나, 머리로 이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으로 의에 이를 수 없기에 대안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 그 보혈이 오늘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리로가 아니라 내 가슴으로 삶으로 맛보고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 식사 – 식비를 제가 지불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 믿는 것
이 사실을 여러분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고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선물은 그냥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신 선물을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는 죄인이고 내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것을 자각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대안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나의 좨 값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여기서 나는 구원 받을 믿음인가? 3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1. 율법(육신)을 의지하는 삶이냐?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는 삶이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발췌
기독교는 내가 무엇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나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이전보다 얼마나 더 변화되었는지 나아졌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흠 없고 완전한 의가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믿으면 그분의 의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여러분은 그분의 의를 입게 될 것입니다.
2.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한 자에게 나타난 감정이 있는데 바로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이 감격이 없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복음은 안 됩니다. 가슴으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머리로만 아는 것은 초등학교 동요와 같이 아주 유치한 것입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런데 이 유치한 복음이 내게 얼마나 능력이 되고 감격이 되는 가를 맛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 환경을 보면 쉼을 쉴 수조차도 없어 한숨만 나오고 죽을 것만 같은 환경인데 그런데 그 환경 속에서 옛날 우리 어르신 들이 많이 부른 찬송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 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이렇게 찬송할 수 있는 것 이것 복음의 능력 아닙니까?
남편의 외도로 지옥과 같은 삶속에 수십 번 이혼하자는 남편의 요구에 그냥 꽉 도장을 찍어버릴까 하는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아니야, 하나님은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실 거야, 하나님 우리 가정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셔 반드시 회복시키실 거야 믿는 믿음으로 참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이것 복음의 능력 아닙니까?
유배지와 같은 환경 속에서 언제 이 유배지에서 돌아가나, 돌아가나 자기 신세 한탄만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그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빗어가고 그래서 이제는 그곳에 있게 하셔도 감사, 떠나게 하셔도 감사, 이것 복음의 능력 아닙니까?
목사 안하겠다고 조금만 힘들어도 왜 나와 상의도 없이 하나님 마음대로 목사 시켰느냐고 지금이라도 한 말씀만 하시라고 너, 목사 그만해, 그러면 오늘이라도 당장 그만 두겠다고 그랬던 제가 그 모든 것이 제 마음에서 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고, 이곳 까지 와서 목회하고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났던 찬양하나 “한량없는 은혜 값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 과거에는 내 삶을 에워싸는 것은 아픔, 힘듦, 낙심, 좌절, 불안, 초초함, 사람들에 대해서는 섭섭함, 원망 이러한 것들이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내 삶을 되돌아보니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 감사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 이거 복음을 선포하는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두 가지가 나타나는데 바로 그다음의 7절을 보세요.
행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이건 복음의 능력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 8절을 보니까?
행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 이건 복음의 감격 아닙니까? 우리에겐 이 7절, 8절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율법을 의지하고, 내 행위를 의지 할 때는 절 때 나타나지 않는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은혜가 기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러 일이 언제 적 일입니까?
3. 내 삶이 변화되고 있는가?
성경에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구절이 많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당시는 로마제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가 왕 王인가?’ 아니면 ‘로마 황제가 왕王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과 연합한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유명한 구절이 요 3:16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목 해야 할 부분은 “믿는 자 마다”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믿는다’ 말은 헬라어 원문성경에서는 피스튜오 에이스, 영어로 ‘believe in’으로 believe 라는 단어에 ‘in’을 함께 사용 합니다.
‘believe’ 그냥 단순히 머리로 이론적으로 교리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believe in’은 믿는 자와 믿는 대상의 관계를 중요시한 구절입니다.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여 자신의 삶의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다시 태어나는’ 소위 ‘중생’하는 것이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 때, 믿는 자는 거룩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believe’와 ‘believe in’과의 차이점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가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죽은 믿음이 바로 ‘believe’ 만 하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입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고 할 때는 ‘in’이라는 전치사 없이 believe만을 썼습니다. 귀신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압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떱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구원받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한 사람이 세례 요한 다음에 누구신지 아십니까? 거라사의 귀신들려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막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귀신이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지적으로 동의하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순종과 함께 갑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로 묶는 끈이기 때문 입
니다.
롬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과 순종이 같은 의미로 번갈아 기록되었습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가 진정 은혜를 제대로 누리려면 믿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진정 예수님을 믿고 살아보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걱정과 근심을 다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모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생활에 매여 평생 두려움에 사로 잡혀 지내거나 서로 정죄 판단하며 사는 삶은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삶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주인이 되신 주 예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이렇게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찬양 한량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의 삶을 그동안 에워싸고 있는 것들이 뭔지를 한번 돌아보세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좌절하고, 낙심하고 불안 해 하고, 내 삶을 에워싸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 원망, 울분, 이것들이 다 사라지고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이 찬양 부르실 때 이 찬양이 능력이 되어서 내 안에 이 먹구름을 몰아내는 복음을 맛보고 경험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같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 제 안에 그 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오래 교회를 다니는데 여전히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치유 받지 못한 상처, 여전히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갖고 있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태도, 여전히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하다가 안 되어서 점점 딜레마에 빠져있는 초라한 우리의 모습, 하나님 이제 이것들이 다 사라지고 은혜가 나를 에워싸기를 원합니다. 은혜가 내 인생을 에워싸기를 원합니다. 이 소원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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