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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22.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기도)(롬5:1-2)

by 오용주목사 2017. 5. 28.

2017.5.29.                                    22.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축복(기도)

5:1-2

 

 

우리는 로마서 1-4장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 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 불뱀에 물려 고통 가운데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처방이 무엇인줄 아시죠?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의 처방을 보세요.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결과 바라보는 자는 모두 살게 됩니다.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여러분 이 사건은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실체입니다. 뱀에 물려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길은 놋 뱀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들이 사는데 있어서 바라보는 것 외 다른 조건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쳐다본즉 살더라 이거면 충분합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 외에 다른 그 어떠한 조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러면서 51절 서두에서 그러므로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그 결과 우리가 누리는 삶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1. 먼저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과거에는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결과 우리에는 참 평안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평안은 다 가짜 평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엡2장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문제는 당연히 평안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죄책과, 인간의 불완전성서에서 오는 고통과, 율법주의로 인한 불안이 평안을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죄책이 있죠? 분명 회계도 여러 번 했습니다. 생각 날 때마다 눈물 흘리고 회개를 했죠, 그리고 그 죄를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의 죄입니다. 몇 년 전의 죄입니다. 그런데도 죄책이,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생각합니다. 내가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야, 설령 용서를 받는다 해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 스스로 이렇게 판단합니다. 따라서 계속 가책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자기의 불완전성입니다. 자기 불완전성으로 오는 고통은 한 마디로 예수를 믿고도 내게서 자주 노출 되는 옛 자아의 추태를 가리킵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뭔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 같은데 집에 가가마자 성질 한번 내고나면 그 평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죠? 그리고 이런 자기 모습을 보면서 자기를 혐오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지면 이 샬롬이 사라집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은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 평안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뭔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있으면 평안한 것 같다가도 내 놓을 것이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기도를 왜 하느냐? 자기 평안을 위해서 합니다. 왜 성경을 읽느냐?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율법주의에 빠지면 마음에 절대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축복 속에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비결, 그 비결이 뭐냐?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것이 비결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지 나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 분 때문입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의 연약함, 나의 죄 됨, 나의 원수된 것, 모두 다 짊어지시고 죽으신 그분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여기 나오는 모든은 과거 현제 미래를 통틀어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내가 과거에 지은 죄, 지금 현제 내가 짓고 있을 수도 있는 죄, 미래에 내가 빠질지도 모를 죄 까지 다 포함해서 모든 죄 용서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의 사죄입니다. 우리가 이것 때문에 의인이 된 것 아닙니까? 아멘입니까?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볼 때로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보아야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를 보아야합니다. 여러분! 내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예수 그리스도 피로 충분합니다.

 

2. 구원 받은 자로서의 누리는 삶 날마다 하나님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삶입니다.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두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 있다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들어감입니다. 여러분이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는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웬 줄 아십니까? 의사 앞에서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혹시 자기에게 어떤 좋지 않은 병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법정에 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요? 자기가 지은 죄들이 낱낱이 밝혀지지 때문 아닙니까?

마찬 가지입니다.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죄인인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나를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든 죄가 송두리째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 앞에 내가 나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혹시 오래전의 사극 중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처음에는 살아있는 미륵이라 불리며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지만 점점 폭군으로 변해 자신의 왕권강화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던 왕비를 잔인하게 죽이고 이를 말리던 아들 청광과 신광까지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많은 신하들까지 모두 죽였습니다. 그때 관심법을 이용한 것 아시죠? 소위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죠? 물론 궁예의 관심법은 엉터리 가짜지만 신하들은 궁예 앞에서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 또 무슨 관심법으로 자기를 죽을까 두려운 것이죠.

한 때 우리나라 교계에서도 투시의 은사가 한창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이 투시의 은사를 가져서 여러분을 다 투시한다고 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안다면 제 앞에 설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하물며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 암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담대히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보좌 앞에 잘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오후에 하는 십자가 복음의 삶 공부에서 배웠듯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럼 은혜가 뭐냐?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은혜입니다. 또 하나의 은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를 가리켜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뭐냐? 바로 기도입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삶이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려야할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3. 여러분은 기도의 자리에 잘 나가고 있습니까? 만약 잘 나가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1)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염치가 없다고 생각 때문입니다. (체면신앙)

2) 그동안 기도를 했는데도 별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1)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염치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어려운 분들은 왜 그런 줄 아세요? 그것은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나아가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율법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어떻게 빈손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이런 분이 계시다면 꼭 기억하셔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의 행위를 가지고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내 행위를 자기고 갈려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이것이 눅 18장에 나옵니다.

 

보세요. 18장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즉 기도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세리입니다. 런데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나가고 있습니까?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한 마디로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나갑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떻습니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평가?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오직 한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는데요. 하루는 시장님을 만나기 위해서 시장님 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시장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나고, 선한 행위를 많이 하고 법을 잘 시켜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시장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기자증이었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길 뿐입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2) 기도의 자리에 잘 나가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기도를 했는데도 별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크게 2가지를 주시는데 하나는 모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것을 주십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모든 것을 주신데요.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를 했는데도 별 신통치 않아서 이제는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 앞에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떡을 달라했는데 하나님은 돌을 주셨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말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나는 떡을 구했는데 돌을 주셨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신 분이 계십니까? 내가 어떤 문제를 놓고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어요. 이게 떡입니까? 돌입니까?

 

예를 들어 자녀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결과가 낙방이었습니다. 이게 떡입니까? 돌입니까? 이게 중요한 겁니다. 떡입니까? 돌입니까? 대답해보세요.

여러분, 우리 신앙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 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을 할 정도의 신앙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요셉을 보세요. 요셉이 보디발 장군 집에 가정 총무로 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자꾸 요셉을 유혹합니다. 이 때 요셉이 한말이 뭡니까?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러분 이게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잘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여러분 지금 요셉은 억울하게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억울하게 갇혔습니다. 그 죄명이 뭔 줄 아세요? 강간미수범, 그러면 이게 떡입니까? 돌입니까? 대답해보세요.

보세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절 대 나쁜 것 주시지 않는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 주신다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자녀대학을 위해 기도했는데 대학에 떨어졌어요.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아 그것이 나에게 돌이 아니라 떡이였구나는 것을 알 때가 분명이 온다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 부모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런데 좋지 않은 일들만 자꾸 일어납니다. 이게 떡입니까? 돌입니까? 떡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믿고 기도했다면 내가 기도하고 나타난 결과는 좋은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아멘, 이런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이런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따라서 구하지 않아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내 탓입니다. 구하지 않아서 뱀을 얻었거니 돌을 얻은 것은 내 탓입니다. 구하지 않아서 손해 보는 것도 내 탓입니다. 그래서 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손해 보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를 했는데도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게나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좋은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떡입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 것인가 두고 볼일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질 일입니다. 아멘입니까?

 

4. 여기서 한 가지 더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여기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가 뭐냐?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란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자에게 주시는 신분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도록 보장을 해주시는 은혜입니다.

무슨 의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용서함을 받은 사실이 영원히 보장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시적인 것입니까? 영원토록 보장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일시적인 혜택입니까? 아니면 영원토록 보장된 신분입니까? 영원히 보장된 신분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이 되었다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냐? 아니면 영원히 보장되는 은혜냐? 영원히 보장되는 은혜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은혜입니다. 흔들릴 수 도, 흔들려서도 안 되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담대하게 당당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당당함의 기도의 예 (기도는 구걸행위가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요청은 구걸행위가 아님)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또 하나 우리가 기도할 때 담대하게 당당하게 기도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길 때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이루어가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당당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왕상18장 전후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과 아합 왕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동안 비도, 이슬도 그치게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가 850명과 누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인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재물을 태우는 것으로 대결을 합니다. 이때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합니다.

 

왕상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여러분, 보세요. 여기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내가 구하므로 그 뜻이 이루어 질수도, 구하지 않으므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펴는 수단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어떻게요, 뜻이 하늘에서 이른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왜 기도하라고 합니까?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합니까?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나에게 응답하옵소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이니 당당하게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지 아니하면 일어나야 할 일이 안 일어납니다. 반면에 기도하면 안 일어날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만능입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도가 뭐냐?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당당하게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것 주겠다, 좋은 것 주겠다, 언제든지 와서 기도하도록 내가 너의 신분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다. 이거 무슨 배짱 입니까? 이제 그 배짱 그만 부리시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결단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들어감을 얻은 기도의 특권 우리가 서 있는 이 신분 때문에 당당하게 담대하게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이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