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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31.생각의 중요성(롬8:1-7)

by 오용주목사 2017. 7. 31.

2017.7.30.                                  31.생각의 중요성 (생각이 태도를 결정한다)

8:1-7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행위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구원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이 내용이 롬1-4장 요약이며 이 사실을 롬5;1절에 이렇게 요약합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5-8장까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물이 쭉 열거되어 있는데 5장에서는 사망에서 자유함을, 6장에서는 죄에서 자유함을 7장에서는 율법에서 자유함을 8장에서는 정죄감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롬8;1, 2절에 나와 있습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에게 적용된 법은 죄 삯은 사망이라는 죄와 사망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예수님을 통해”(현대인성경) 우리에게 새로운 법이 적용된 것입니다. 그 법이 바로 생명과 성령의 법입니다. 이 법을 다른 말로하면 은혜의 법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사형수는 살게 된 것과 같이 우리 모든 다 죄인으로서 죄의 삵은 사망이라는 이 법에 따라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삯인 죽음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의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 성령의 통제를 받는 삶이요, 성령에 의해 통제된 생각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생각의 중요성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롬12;3절을 보면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는 전체가 16장으로 되어있는데 크게 두 부분, 교리편과 생활편으로 나눠집니다. 1-11장까지가 교리편이고, 12-16장까지 생활편인데 12:3절은 생활편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또 그 생각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분수에 넘치는 생각, 우리의 삶에 생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생각이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라, 생각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누눈가가 가룟 유다에게 당신이 삶 가운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인가? 물었다면 뭐라고 했겠습니까? 예수님을 은 30에 판 것일까요? 이것보다 후회스러운 일이 생각을 지키지 못하고 마귀에게 빼앗긴 것일 겁니다. 그만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이 보셨는데 뭘 보셨다구요?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셨다. 그러니까 행동을 보시기전에 행동 이면에 있는 마음의 생각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이면에 있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생각을 갖느냐는 우리 신앙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란 단어가 성경 전체에 319번 나옵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생각을 통해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알게 하시느냐? 당신의 생각을 우리 가운데 넣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떠오르는 많은 생각의 출처에는 크게 2,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 둘째는. 내 생각, 셋째는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3가지 출처의 생각 중에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자꾸 깨닫게 하시는 것들을 우리가 잘 캐치할 수 있는 이런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영적 민감함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건강하려면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 가지로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생각 없이 아무생각이나 생각 하면 영적 건강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의 영역을 잘 분별하고, 또 생각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진리를 잘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게 되고, 그래서 우리 삶에 놀라운 승리를 경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매우 중요시 여기시는데 그 이유는 생각이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나오게 되고, 우리의 행동이 삶의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생각은 행동을 결정짓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고의 영역에는 보통 3가지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1) 저장 하는 기능 : 정보를 받아들여서 저장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2) 새로운 정보를 자꾸 더 축척하는 기능입니다.

3)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과거에 받아들인 정보를 가지고 추론을 해서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 기능이 있다는 겁니다.

(추론 -> 결론 -> 행동)

 

예를 들어 공지천을 걷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골든리트리버라는 개를 데리고 오는데, 이게는 덩치는 산만한데 어찌나 순한지 애들이 못살게 굴면 그냥 자리를 피하지 짓지도 않고, 싫다는 표정도 짖지 한는 순하고 순한 개입니다.

그런대도 어떤 사람들은 이 골든리터리버가 오면 일단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거 경험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개만 보면 피합니다. 과거 경험을 가지고 추론을 하게 되고 결론을 내 버립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태도를 보이는데 대표적인 태도가 걱정, 근심, 두려움, 불평, 원망과 같은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과거 우리의 경험과 연관이 있습니다. 대부분 과거 부정적인 경험이 우리의 삶의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에 오늘의 환경에 부정적인 태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진리에 동의하는 삶에 승리가 있는데 진리에 동의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이 생각을 사로잡을 때 그 생각에 의하여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따라가는 경향이 아주 많습니다. 특별히 부정적인 과거의 경험, 이런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리로 따라가는 경향이 아주 많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삼상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17: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보세요, 내 경험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생각이 내 행동을 지배한 것입니다.

 

반대로 다윗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보세요, 내 경험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생각이 내 행동을 지배한 것입니다.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리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간곳에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게 되죠.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이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괴롭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그랬더니 이 여종의 주인이 자기 밥줄이 끊어진 줄 알고 바울과 실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옷을 벗기고 매로 치고 옥에 가두게 됩니다.

 

이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찬송한다. 불평, 원망한다.

 

찬송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해 가는 것 이것이 성숙된 삶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순간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결론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해답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유일한 처방이 되시는, 그래서 살리는 분도 그분이고, 죽이는 분도 그분이고, 그래서 생사화복이 그분의 손에 달려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려면 이런 결론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정말 주님이 누구인가? 다윗도 그런 결론이 있습니다. 자기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결국 하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절대 죽이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믿음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가야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답인지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렇게 되는지 보세요. 나를 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죽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내 인생의 생사화복이 그분 손에 있고, 내 처음도 그분이고, 내 나중도 그분이고... 어떻게 이런 답이 나옵니까? 결론이 하나님인거죠,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허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그분 손에 달려있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그분 손에 달려있다. 내 인생에 우연이 없다.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선언하고 가야합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건 분명히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삶에 강력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에 결론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이면 족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지금 죽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이고,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가장 선하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결론 그게 여러분 안에 있는지 살펴보세요. 그 답이 여러분 안에 있는지 보세요. 내가 원래 답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나의 답이 되셨고 그래서 나는 아담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자다 이런 답이 있으세요?

 

그런 결론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바울과 신라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결론이 없었다면 가장 빠지기 쉬운 것인 불평, 원망보다는 자기연민일 것입니다. 복음전한다고 이곳까지 왔는데 내 신세가 뭐냐....괜히 와가지고는 이게 뭐냐...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왜요?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인도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선하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감옥 문을 열어버렸습니다.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런데 27절을 보세요.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여기 보면,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도망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서 내린 결론이 해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태도를 결정해 버립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자기가 결론을 다 내리고 그리고 그 결론을 따라 행동에 옮기지 않습니까?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미리 짐작하고 내린 결론이 오해일 수가 있고, 잘못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을 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올바르지 않는 것이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지금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믿음의 기도가 뭡니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고,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신뢰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기도만이 아니라 믿음 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주문 외우듯)

 

그런데 그들은 기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편견이 우리 신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곡된 이해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면 우리가 생각만 해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도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삼상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우리가 많은 경우 자기식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관점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왜곡되어있는지 아닌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진 분들이 진짜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갈 때 우리 머릿속의 생각이 우리 태도를 가져온다니까요.

예를 들어 과거의 어떤 경험, 기도했는데 응답을 안 하셨다든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이나. 상황이나. 이런 경험이 현제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갈려는 순간 편견으로 작동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왜곡된 편견이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 잘 안 해주신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잘 나갈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라야합니다. 어떤 영역에? 하나님을 아는 영역에서 자라야 합니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 말씀을 묵상해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를 원하시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나의 아빠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이게 깨달아지고 그래서 그분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될 때 너무 너무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른데 우리의 부정적인 경험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가로막게 되고 우리의 태도가 머뭇거리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뭐가 진리인지 이게 영적 싸움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 생각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보세요. (엘리사)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보세요, 왜 이렇게 반응하였을까요? 내 경험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생각이 내 행동을 지배한 것입니다.

 

왕하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보세요. 어떤 권면을 해도 잘 안 받아들이는 이유가 뭐냐 하면 머리에 나름대로의 결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결론, 그런 생각이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내 머리에 무슨 생각을 갖느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삶에 놀라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그 특징이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 찾지 않은 것 보면 그 사람은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열망이 없습니다. 깨어있지 않습니다. 항상 졸고 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면 경각심이 없습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꼭 시험이 옵니다.

 

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면서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이렇게 선 줄로 생각하고 있을 때 시험이 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이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뒤집어 집니다. ? 깨어있지 못하니까, 그래서 사소한 시험에 넘어져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 올바른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보세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과 친밀함이 열리고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하나님의 생각에 반응하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고요. 하나님의 길에 우리가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더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찾는데 영적 돌파를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breakthr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