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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37.고난과 영광(롬8:18-25)

by 오용주목사 2017. 9. 18.

2017.9.10.                                                                      37.고난과 영광
                                                                                             롬8:18-25


로마서 8장의 구조를 보면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가 받아야할 정죄를 십자가로 대신 감당케 하심으로 이제 우리가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함은 자유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지금 바울이 강조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을 초월한 은혜, 우리를 양자 삼아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감히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됨의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반 교실 칠판에 큰 글씨로 “뿌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한 아이씩 앞에 나가서 자기 가정의 뿌리, 곧 조상에 대해서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자랑스러운 듯이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저는 전주 이씨 47대손입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는 조선시대에 예조 판서(문화체육관광부장관)를 지내셨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지금도 시골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는 큰 무역회사의 중역으로 있습니다. 저는 저의 집안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 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계속 돌아가면서 자기가 준비해온 내용을 열심히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선생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님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앞으로 나와서는 조용한 어조로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십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저의 아버지에게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아주 많은 가족들이 있답니다. 특히 저의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글래서 그 자녀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신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아버지에 대한 신뢰, 믿음, 긍지가 있습니까? 이 긍지가 우리를 얼마나 외롭지 않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오늘은 사도 바울이 이 어마 어마한 양자됨의 은혜를 무엇으로 연결시키고 있는가하면 고난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영광은 무엇이고 고난은 무엇인가?

우리는 고난과 영광 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 No Cross, No Crown 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기에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죽었다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영광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영광인 이유는 그것이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에 영광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이 말하는 영광이란 내가 어떻게 잘되고, 내 이름이 드러나고 그것도 영광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이것이 진정한 영광 아닙니까?

제가 사극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조영을 보면 대조영이 당나라에 의해 멸망한 옛 고구려를 다시 재건하기 위한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이 대조영 밑에 여러 충성스러운 장수들이 있는데, 누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왜 대조영 장군을 모시고 있습니까? 이 때 대답이 내가 대조영 장군 밑에서 옛 고구려를 재건하는 것이 내 삶의 이유요, 삶의 의미요, 내 삶의 영광이라고...그러면서 옛 고구려 재건을 위해 전장에서 죽음으로 밑거름이 됩니다.

마찬 가지 아닙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아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에 내 삶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 삶의 의미, 우리의 영광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고난이 우리의 고난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당시 애굽의 바로왕의 후계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애굽의 왕의 자리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을 드리기를 선택합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시켜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모세의 영광이요,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한40년 광야 여정이 모세의 고난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영광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잘 되는 것, 성공하는 것, 큰 교회를 세우는 것 이런 것으로 이해합니다. 만약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인생실패자들입니다.

저도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요, 목회의 성공이요,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는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목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마찬 가지 아닙니까? 성도의 영광도, 축복도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드리는 것이요,  축복이요,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이요. 그 과정이 고난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고난과 영광이 있습니까?   

여러분 여기 의사선생님이 있는데 이 의사에게 있어서 영광이 뭘까요? 바로 죽을병에 걸린 환자 다시 살아난 것 이게 의사의 영광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의사의 고난은 무엇일까요? 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모든 수고가 이 의사가 겪은 고난 아니겠습니까?

마찬 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영광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죄와 싸우며 내 내면과 싸우는 것 이게 우리가 고난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약한 한 성도를 세우는 것이 영광이라면 그 연약한 성도를 세우기 위한  희생과 섬김이 고난일 것입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교회를 세우기 위해 수고한 모든 수고 고난입니다. 
예) 전도
 
이 사실을 자각하는 자들이 고난과 관련해 누리는 축복이 무엇인가?


1.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고난하면 대해 어떤 반응을 합니까? 고난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약간의 고만끼만 있어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고난은 나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 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과 고난에 대한 태도가 같겠습니까? 삶이 질이 같겠습니까?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심각하게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되는 분입니까?
 
감기기만 있어도 무슨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야단법석이 듯이, 고난기만 약간 있어도 아니 무슨 엄청난 고난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러 실수가 있지, 나에게 이러시면 안 되지, 내가 하나님께 한 게 얼마나 많은데... 이거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무엇이며 영광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한다면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여러분에게 이 17절이 있습니까?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여기서 끝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는 그 다음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이 고난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루는 대가 지불이 있습니까? 다른 성도를 세우기 위해 받는 고난이 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다 당하는 고난이 있느냐 말입니다. 아니면 아무런 대가 지불은 없고 영광만 구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누리는 축복은 고난의 면제가 아닙니다. 믿는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고난이 면제 되어서 축복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그 고난을 통하여 깊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궁극적으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이지 고난 면제가 축복이 아닙니다.


2. 고난과 관련된 복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대안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현재 고난을 해석할 영적을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의사가 그러는데요 우리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스트레스랍니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에는 두 종유가 있는데 급성스트레스와 만성스트레스가 있다고 합니다. 급성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운전 중에 어떤 일로 갑자기 화가 날 때 받는 것이라면 만성은 지속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인데 급성보다 만성이 훨씬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만성스트레스를 누가 가장 많이 받느냐면 우리 자녀들입니다. 약 12년 동안 공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누구에게 부모님에게... 여러분 왜 부모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런 스트레스를 줄까요? 육적인 지식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이 이렇게도 중요하게 여긴 육적 지식보다 비교 할 수도 없는 중요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이 영적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런데 문제 이 영적 지식을 위해서는 우리 자녀들에게 아무런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비극은 이 영적은 지식을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오늘 내 삶 속에 너무 너무 난감한 고난이 찾아올 때,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찾아올 때  영적인 지식이 있어야 대처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섭섭해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왜 원망한 줄 아세요. 하나님을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왜 모릅니까? 말씀을 안 읽으니 모르지요.
말씀을 안 읽는 것도 문제지만 또 하나 문제는 말씀을 가르쳐 준대로 안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난 주일도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 서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서로 정죄한 것 있으면 집에 가셔서 서로 용서를 구해라 했는데 그냥 흘러듣고 안 해요. 그러니 가정이 회복이 안 되는 것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환자 중에 가장 골치 아픈 환자가 누군 줄 아시죠? 의사가 처방한 대로 안하는 환자입니다. 먹지 말라면 안 먹어야 되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먹어댑니다. 성도 중에 가장 골치 아픈 성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처방대로 안 하는 성도 가 가장 골치 아픈 성도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교회가도 별 수 없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따라 가는 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잘 이기려면 영적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2) 고난과 관련된 복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현재 고난을 감당할 함께의 신비를 경험해야 합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믿는 자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모른 척 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인 지식을 아는 것이 이론이라면 내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함께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모세
출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수아
수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바울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 요셉을 보세요. 요셉에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리는 비참한 자리에 빠지고, 또 보디발 장군 아내의 누명으로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까지 내려갔지만 성경을 그 어디를 보아도 요셉이 우울증이 걸렸다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뭔 줄 아세요?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함께 하심이 형통이라고 합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내려가는 일이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라면 그게 형통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관점은 함께하면 잘돼야 함께 하는 것이고, 잘 되어야 형통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라면 그게 형통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이거 맞보고 계세요.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생각하건대” 헬) 로기조마이 저울질 하다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지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감옥에서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느냐 저울질을 한다는 겁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하다 지금당하는 고난을 저울질 해보니 요정도 나와요. 그리고 바울이 또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감옥에 갇히고 억울한 일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억장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어떤 신비로운 은혜로 그 감옥 속에서 기쁨이 터져 나오도록 어떤 사람에게도 맛보지 못한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가슴 벅찬 감격, 눈물이 펑펑 쏟아지도록 그 십자가 은혜로 인해 누렸던 그 놀라운 감격 이 무게를 재보니 현재 당하는 고난보다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은혜가 훨씬 크더라는 겁니다. 이 감격을 깨닫고 나니 18절과 같은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모세도 마찬가지죠? 가나안의 영광을 바라보니 40년의 광야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고난 가운데 장차는 못보고 현재, 현재, 현재만 볼 수밖에 없느냐, 저울질을 못해서 그런 겁니다. 저울질 해 보니까 과거에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 그 고난 가운데서 한 번도 약속을 어지지 아니하신 신실하신 하나님, 눈물 나게 함께 해주시는, 눈물 나게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벅차게 생각하니까 장차 영광  으로 인도하실 그 약속의 말씀도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현재의 고난을 능히 견디며, 참으로, 이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지금 여러분의 가정이 형통하면 마음껏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어려움이 찾아오고, 곤고함이 찾아오고, 가정이 흔들흔들 거리고, 자녀는 마음먹은 대로 안 커주고, 늘 병 치래만 하고, 이런 아픔, 저런 위기를 만날 때는 생각하라는 겁니다. 생각,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우리 가정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이게 내가 지금 하나님께 회개해야할 문제인가, 아니면 이게 하나님 믿는 자로서 당연히 겪어야할 대가 지불인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생각할 때 아닙니까? 우리 가정, 조국의 보면 생각해야할 때가 아닙니까?

저는 오늘 이 찬양으로 마무리를 하기를 원하는데요. 참 처절하고 정직한 자기 고백입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고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참 가슴 아픈 고백은 계속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 수 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 만 바라봅니다.
이 가사 같은 현실을 주님 앞에 토해 놓을 때 그때 갈망되어지는 게 은혜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하나님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받는 고난은 하나도 없고 전부 죄 짖고, 타락하고, 세속화 되고 이런 결과로 오는 부끄러운 고난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나라를 살려주세요. 우리 가정을 좀 살려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한번 이렇게 설교 말씀을 기억하고 이 가슴 아픈 현실을 떠 올리며 이렇게 찬양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