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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41.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롬8:31-32)

by 오용주목사 2017. 10. 11.

2017.10.8.                                                      41.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8:31-32

 

 지난주일 구원의 서정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를 살펴보면서 칭의와 영화 사이가 우리가 사는 현 주소인데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삶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 즉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화는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진전이 아닙니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삶을 말합니다. ,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 삶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 사는 삶, 완전히 새로운 삶, 새로운 차원의 삶을 말합니다. 마치 사형수의 삶에서 지유인의 삶으로, 딸의 삶에서 아내의 삶으로, 과거 천인이 면천을 받아 이제는 과거 천인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양반의 삶과 같이, 완전히 다른 신분의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신분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한 삶 -> 구별되는 삶 -> 구별되는 삶이란?

1)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2) 하나님의 목적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

 

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영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영광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반사한다, 나타낸다, 보여준다, 증거 한다 의뜻으로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삶을 살지 못하여 얼마나 낙심하고 자신에 대하여 실망합니까? 왜 일까요?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의지기의 약함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데 마귀가 자꾸 태클을 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싸움도 물론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서 싸울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마귀가 배후에서 조종하기 때문인 것을 아셔야합니다.

요즘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데 이 가짜 뉴스를 보고 국론이 분별되고 서로 반복하고 그러면 누구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을 노리는 배후 세력 아닙니까? 마찬 가지로 우리가 싸우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바로 그 배후 세력인 사탄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대적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여러분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 초대교회와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오죽했으면 바울이 고후4:8절에서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4: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지금 누가 바울을 사방으로 우겨 싸고 있습니까? 누가 박해를 하고, 누가 거꾸러뜨리려고 합니까? 대적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로마의 황제숭배 사상 때문에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카타콤이란 것이 왜 생겼습니까?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박해를 피해 땅속으로 피한 것이 카타콤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이단(영지주의)들의 박해, 동역자들의 박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은 것 아닙니까?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바울 당시 초대교회에만 박해가 극심했던 것 아닙니다. 과거 로마는 창과 칼로 대적했다면 오늘 우리 대적 자 사탄은 훨씬 더 교활하고 교묘합니다.

 

과거에 전도를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애라고 많이 나야하겠다고, 그런데 여러분 요즘 애 많아 낳는다고 그들이 다 예수 믿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입니까? 사탄이 그들을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그들을 음란으로 몰아가고, 세상 사랑으로 몰아가고, 하나님 없는 세상음악, 세상게임으로 몰아가서 그들의 영혼이 사탄의 밥이 되어 꼼짝달싹 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는 상처라는 강력한 바이러스가 판이 치는 곳 아닙니까?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지대가 없어요, 여러분 상처의 가장 안전지대가 어디입니까? 가정 아닙니까?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곳이 가정이요, 교회 아닙니까? 이거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여러분이 가장 상처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굽니까? 옆집 아저씨 입니까? 뒷집 아줌마입니까? 여러분 자녀들이 누구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받습니까?

 

2. 그럼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사탄의 대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새번역)8:31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할 지도자로 부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로 삼았느냐? 조금만 어려워도 애굽으로 돌아가자 불평하고, 원망하고 모세를 돌로 치러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모세를 대적할 때 모세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너를 위해 줄 것이다.

 

여호수아도 마찬 가지입니다.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왜 두렵지 않습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왜 그 성경이 감동이 되는가하면 이런 원리가 내게도 똑 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무슨 일로 힘드세요. 어떤 대적하는 자들이 여러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현실이 너무 무겁습니까?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이 사실을 자각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놓아 주고 = 넘겨 주니라, 꼭 같은 단어 파라디도미입니다. 여러분 이 두 구절을 자세히 보세요, 빌라도도 내어 주고, 하나님도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어주심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내어줌이고요, 그런가하면 빌라도로 대표되는 사람의 내어줌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는 내어줌입니다.

 

이거 우리 모습 아닙니까? 우리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본능 때문에 별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 주는 것이 우리 모습 아닙니까? 탕자의 비유의 둘째 아들이 딱 그런 짓을 한 것 아닙니까? 자기 탐욕을 위하여 그 소중한 아버지의 사랑을 내어줘 버렸잖아요. 그랬더니 탕자가 행복한가요?

 

우리의 어리석음이 뭔 줄 아세요? 뭘 붙잡고 뭘 내줘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잡아야 할 것은 내어주고, 내어줘야 할 것은 붙잡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가리켜 똥오줌도 가질 줄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신앙인들이 딱 그 짝입니다.

 

담임목사를 위한 기도 5,6번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자족하지 못한 마음의 태도인 탐욕에 빠지지 않기를 6, 목회의 시작과 과정보다 끝이 아름답기를 기도하는 것도 이 땅의 중요하지 않은 것에 중요한 것을 내어 주는 짓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신앙이 성숙된다는 말은 뭘 붙잡고 뭘 내줘야할지 분간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 성숙된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을 때 그 순종을 보시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보세요.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22:12절의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와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듯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기 위하여 가장 소중한 독자 이삭을 내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시는 분이시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수많은 대적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을 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 아닙니까?

 

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여기 위하시면 을 32절로 어떻게 연결하는가하면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1절의 우리를 위하시면32절에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라는데 그 우리를 위하시는 그 하나님을 십자가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는지, 위하지 않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 증거가 무엇이라고요? 바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위한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확신하려고 하느냐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으로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내 놓을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 같고, 없으면 함께 하지 않으실 것 같고 아닙니까?

 

여러분 어떤 대적이 나를 에워싸도 나는 에워 쌓이지 않는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는, 여러분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임을 어떻게 자각하십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찬송가 151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왜 사라졌습니까? 알았거든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것을 알은 것 아입니까? 그러니 그 다음 찬송가사가 뭡니까?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내 기쁨 영원하도다여러분 이런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올 한해 우리교회 표어가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라 인데,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심각한 질병은 십자가, 예수 결핍 장애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결핍장애의 치명적 부작용이 뭐냐? 죽을 때 까지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어려워도, 조금만 계획대로 안 돼도.. 두려워합니다. 어쩔 줄을 모릅니다. 혹 우리 중에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늘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고독, 두려운 분이 계십니까? 이것이 십자가 결핍장애의 증상입니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아이고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예수를 1,2년 믿었습니까? 10년을 믿어도 안 되던데요? 계속 어렵던데요? 계속 아프던데요? 여러분 오늘 그 불신앙에서 벋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병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고 있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이 말씀을 붙잡으라고 하니 이 말씀만 달달 외우고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격을 매겨 놓은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정말 귀한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사모님, 아이를 임신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전신 마취를 하면 아기가 위험해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하고 그렇게 아이가 태어남, 이렇게 아이를 사랑한 부모가 그 아이를 위하지 않겠습니까?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그 아이 편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런데 우리는 전혀 사랑 받지 못한 고아처럼 살아가지 않습니까? 아버지 없는 고아들과 뭐가 다릅니까?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늘 힘들고 지치고, 낙심하고, 생각에서부터 피곤하고, 바쁘고, 분주하고, 안되다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고 이거 우리 모습 아닙니까?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씀은 성경에나 있는 말씀이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이 되어버린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40년 광야 길이었습니다. 40년 광야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다는 것 다 아시죠? 아말렉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고, 물이 없는 목마름과, 먹을 것이 없는 굶주림, 낮에는 살 갖을 태우고도 남을 더위, 밤에는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추위,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사막의 모래폭풍과 그 어떤 동물도 살아남을 수 없는 사막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는 맹독성의 뱀과 전갈들... 도저히 가나안 땅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광야길이지만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으로 마침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칭의와 영화 중간지대에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또한 수많은 대적이 가로막고 방해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친히 우리를 견인해 가신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편이십니다.

따라서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하시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하나님이 내 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레찬양 32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이 찬양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내 편임을 내가 한번 경험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