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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2017-01.다시 복음으로(롬1:1-7)

by 오용주목사 2017. 1. 1.

 

2017.01.01                                               01.다시 복음으로

                                                                             롬 1:1-7

 

오늘날 이구동성을 교회가 위기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더 큰 위기는 위기다 위기다 하면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위기인 것 아세요그러면 교회가 위기다 위기다 하는데 뭐가 위기일까요? 이 말은 한 마디로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다움이 무엇일까요? 교회 사이즈가 커지면 그것이 교회다움일까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다움일까요? 여러분! 아이가 비대해졌다고 그것을 건강해진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교회 사이즈가 커지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그것을 교회가 건강해진 것이고, 교회다움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회다움은 무엇일까요?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것이 교회다움이 아닌가요? 무슨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것, 이것이 진정 교회다움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뭔가요? 이러한 예수 이름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이 없던지 복음이 변질되었던지 우리가 복음 복음하고 외치지만, 복음이 내게 복음 되지 않아서 아닌가요?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오래된 교회일수록, 오래 신앙생활한 사람일수록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복음이 없다는 겁니다. 복음에 대한 감격도 없고, 복음에 대한 기쁨도 없고, 열정도 다 식어버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열정을 다시 회복시켜야겠다는 바울의 심정이 묻어있는 것이 로마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기초,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무너진 교회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복음을 가장 풍부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로마서를 살펴보고자하는데, 로마서의 특이한 점은 인사말이 다른 서신서보다 길다는 것입니다. 보통 서신서는 인사말을 한 절을 할애한데 반해 로마서는 무려 일곱 절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인사말에서 뭔가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복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기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이다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헬) “유앙겔리온이란 말로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유앙겔리온, 복음이란 용어는 기독교적, 신학적, 종교적 용어가 아닙니다. 이 말은 당시 로마황제를 칭하고 황제를 묘사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를 이어서 아들이 태어났을 때나, 로마 황제가 백성들에게 어떤 시해(은혜, 특별 허가)를 베풀 때나, 전쟁에서의 승리 소식이나, 또는 황제와 관련된 정책을 발표할 때 이것을 유앙겔리온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바울이 로마서 서두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편지를 받는 수신인이 어디에 사는 성도들입니까? 로마에 사는 성도들 아닙니까? 황제를 칭할 때 사용한 복음(유앙겔리온)과 황제가 주인인 것에 익숙한 그들에게 황제의 복음과 하나님의 복음을 대조하면서 진정한 복음은 황제가 아니고, 황제가 주는 그 어떤 시해가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참된 복음임을 담아내고 싶은 겁니다

 

팍스 로마나처럼 로마가 주는 평화, 세상 황제 가이사가 주는 평화가 참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참된 평화임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뿐 아니라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 우리 주라는 표현도 그 당시 황제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 주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넣으므로 우리가 진짜 주인 삶아야 할 내 인생의 주인은 겉으로 보이는 권력을 가진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확연히 대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 황제의 복음과 하나님의 복음, 황제를 주인 삶고 사는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삶는 삶, 이 대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아닙니까?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복음을 전하지는 않는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복음 듣기를 껄끄러워하고 황제의 복음 듣기를 좋아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가 진정 복음 삶고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황제의 복음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고, 안식을 주고, 행복을 주는 줄 알고 황제의 복음을 추구하고, 의지하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이 세상의 황제의 복음입니까? 아니면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이 진정한 기쁨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누구를 주인 삶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 황제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이것을 알 수 있는 길, 지금 내가 누구의 영향을 받고 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 권력, 물질, , 쾌락 이러한 것에 영향을 받고 이러한 것을 주인 삼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진정한 우리의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그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음은 이 세상 황제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라면 그 복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복음, 복음 하면서도 복음이 뭔지 잘 모른다는 겁니다우리는 보편적으로 복음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이론적으로 깨달으면 복음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가?

1:1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고, 2절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중간 ( )를 빼면, 이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곧 복음이라는 겁니다.

십자가에 관한 이론, 교리, 신학적 지식이 복음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복음이라는 겁니다.

 

) 암 환자 > 시한부 -> 제약회사 신약을 개발 -> 먹으면 완쾌된다는 소식을 들었음

복음인가요? 아닌가요?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약을 어떤 제조과정을 거처서 만드는지, 약의 성분이 어떤지, 먹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이러한 이론이 생명입니까? 약 자체가 복음입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이론, 십자가에 관한 몇 가지 교리가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복음인 것 아시겠죠?

그러면 두 번째 이 환자에게 복음이 복음 되기 위해서 어떠해야 합니까? 약을 먹어야 합니다. 마찬 가지로 예수님 내게 복음 되기 위해서 복음을 먹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이 내게 실제 되어야합니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어떤 분들은 교회에 수년을 다녔지만 예수님이 여전히 이론인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기도응답, 변화된 인격, ,

 

) 구원이 여러분에게 이론입니까? 실제입니까? 실제라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신약에 나오는 복음은 헬) 유앙겔리온 인데 즐겁다, 기쁘다, 희락이 넘치다의 뜻 그러니까 복음 그 자체가 기쁨의 회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았다, 구원의 확신의 증거 -> 기쁨

만약 오늘 여러분들이 기뻐하는 기쁨의 원인이 복음으로 인한 본질적 기쁨이 아니라 현상으로 인한 기쁨이라면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게 실재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께서 내게 깨닫게 하셔야 합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늘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더 계시해 주세요, 알려주세요.

 

3. 바울이 세 번째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능력을 강조합니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기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와 복음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알고, 믿고 있는 복음은 자신이 이미 몸으로 체험한 복음이란 말입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말로만, 교리로만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그 복음이 능력임을 바울의 삶으로 경험되고 체험되고 검증된 복음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면서 가장 싱겁고 맥 빠진 것이 뭔 줄 아세요? “누가 그렇다 하더라입니다.   그냥 말로만 이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냥 허공에 외처 대는 복음이 아니라 이 복음은 나를 구원한 복음이요, 나를 변화시킨 복음이요, 지금도 내 속에서 역사하는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또 우리는 복음이 능력” “능력하니까 병자가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뭐 이런 신비로운 현상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능력에 포함되지만 이런 능력은 본질이 아니라 진짜 복음의 능력을 알기 위한 수단이라는 겁니다. 그럼 진짜 능력이 뭔 줄 아세요?

 

2:12-19 하나님과 관계회복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가 하나님의 권속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 이보다 더 큰 능력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니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데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왜 바울이 이런 표현을 로마서에서 썼을까요? 그것은 사도바울이 과거에 이 복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과거에 이 복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미련한 것으로 여겼고, 가짜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가짜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 가짜복음을 따르고 전하는 자들을 죽이고, 잡아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다는 겁니다.

 

이랬던 바울이 복음이 무엇인가 알고 난 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과거 부끄러운 것으로, 미련한 것으로, 가짜로 여겼던 그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스펙을 배설물로 여기고, 고난을 받고, 그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침,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능력 아닌가요?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랬던 바울이 언제 근본적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 율법이 바울을 변화 시키지 못하였음, 다메섹 도상에서 복음 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변화되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아닌가요?

 

여러분 복음이 능력이라고 하니, 여러분의 문제 정도 해결해 주는 능력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 능력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 우리를 그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온 삶을 생명까지 바치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교회가 위기,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패배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안 돼, 이제는 할 수 없어, 더 이상 부흥은 불가능해 이제 한국 교회도 유럽교회와 같이 될 거야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에 꽉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가운데서 저희 희망을 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오늘 우리의 모습이 내가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가 복음이 없어서 이지경이지, 오늘도 이 복음을 제대로 알고 복음이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오늘도 복음의 능력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장을 보면 복음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는데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가 한 말이 뭡니까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능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교회의 타락은 다른데 있지 않아요.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은과 금을 의지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복음의 능력은 의지하지 않고 바리새인처럼 교리만을 의지하고, 자기의 종교적 행위를 의지하다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어쩌다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은 다 식어 빠져버리고 이 모양이 되었냐구요? 어떡하실래요?

더 기도하고, 봉사하고 더 더.... 여러분 이것 안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 식어버린 복음의 감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