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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로마서

04.사도로 부르심과 택정함(롬1:1-7)

by 오용주목사 2017. 1. 22.

2017.01.22.                                                     04.사도로 부르심과 택정함

1:1-7

 

 

몇 해 전 타블로라는 가수가 미국 스텐퍼드대학교 학위논란 루머로 수년 동안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가족들이 마음 고생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타블로의 아버지가 이 일로 충격을 받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 타블로가 한 말을 가끔 생각해 보는데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이다못 믿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안 믿으려고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것과 똑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그가 사역하는 내내 많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바울을 힘들게 한 것은 같은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 조차도 바울의 사도권에 문제를 삼고 적대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도로 부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1)예수님에게 직접 배운 자, 2)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자, 3)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 이적을 행하는 자인데, 바울은 이 세 가지 자격요건 중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에게 직접 배운 적도 없고, 사도로 부름 받은 적도 없고 무슨 이적을 행한 것도 없어요. 그러니 바울의 사도권에 반기를 드는 것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일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아시죠?

 

그래서 바울은 그가 기록한 13권의 서신서 가운데 무려 9(, 고전, 고후, , , , 딤전, 딤후, )에서 가장 먼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름 받은 사도다 라고 자기의 사도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바울의 사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최초로 밝힌 세계적은 학자는 바로 김세윤 박사인데, 사도행전 9장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9:3-5),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9:15)에 사도권의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1:1)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 그럼 도대체 사도가 무엇이며, 그 사도라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편지 맨 첫줄에 자기가 사도임을 그렇게 밝히고 있느냐는 겁니다.

 

사도란 말은 헬) “아포스톨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 이 단어는 그 당시 로마사회에서 황제로부터 모든 권한를 부여받은 전권대사로 통용되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황제의 전권대사인 아포스톨로스라는 단어를 차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넣어서 자기는 예수그리스도의 아포스톨로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주님의 전권대사라는 말로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1) 복음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와 우리 목사님 참 설교가 은혜스럽다. 말들 하는데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야~ 오목사 목사안수 받은 것 순 가짜래 그렇게 루머를 퍼트리면 금방 그래 어쩐지 설교가 이상 하더라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설교를 듣고 자신을 말씀에 비춰보고 삶을 조정하고 주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이것이 요즘 소위 말는 언론플레이라는 거 아닙니까?

 

마찬 가지로 바울도 자기가 사도임을 강조하는 것은 사도로 인정받고,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도의 권위를 내 세우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후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르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뼈대가 되어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용서의 삶,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큰 자가 아닌 작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앎이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또한 바울이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주님의 전권대사라는 말로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사명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황제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전권대사가 그 권한을 가지고 황제를 위하여 사역을 행하듯이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사명, 이 사명의식을 지금 기억하고 겁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에게 주신 이 사명을 늘 인식을 했습니다.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여러분 바울이 귀한 점이 뭐냐면 바울의 균형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이 식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냉철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어떡하면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늘 사명을 의식하는 두 균형이 있었다는 겁니다.

사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면 눈이 오고난 후 학교 운동장에서 눈밭을 걷는데 멀리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바라보고 걷는 사람과 그냥 목표 없이 걷는 사람과의 차이가 뭔 질 아시죠?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까? 세월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국은 가만히 놔두면 자동으로 식게 되듯이 우리가 받는 사명도 시간이 지나면 식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세요. 바울이 사명을 받은 때가 언제입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아닙니까?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의 문헌·비문·역사적 사건 등을 면밀 주도하게 고찰해보면 AD34, 35년 이라는 견해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마지막 서신서인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때가 AD66-67경이니까 무려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디모데후서 마지막장인 4장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후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무슨 말입니까? 그가 처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께 받은 그 사명, 그것을 위해 살다 그 사명을 위해 죽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야 감격하고, 감사하고, 눈물 흘리고, 야단 하다가도 조금만 힘들고 어렵고, 사람들이 환영하고 인정해주고, 협조해 주지 않으면 금방 아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그러면서 금방 낙심 하는 게 우리 모습 아닙니까?

 

그런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 삶이 가능 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소명을 받은 이후 그의 삶이 잘 먹고, 잘 입고, 환영받고, 대우받는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핍박과 고난과 배고픔과 수치의 인생 아니었습니까?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을 알 수없는 불안한 인생이었는데 그런데 바울이 어떻게 이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기도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 다시 말해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의 영안을 열어 주실 때 그 지속적으로 사명을 보게 되더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도 늘 사명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당당하게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우리는 사명 하면 어떤 대단한 일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중하지만 남편의 사명, 아내의 사명, 자녀의 사명, 성도의 사명, 복음 전하는 자의 사명, 중보기도자의 사명...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과 동행도 끝이 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2. 두 번째 살펴 볼 것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택정함을 입었다 고 말 합니다.

부르심은 헬리어로 클레토스이며, “택정함은 헬) “아포리조인데 이 단어는 합성어입니다. 따로 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아포와, 정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호리조의 합성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의 원래의 뜻은 따로 때어놓다” “별도로 구별하다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롬1:1절은 보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해서 읽으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어진 부름 받은 사도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1절 말씀 속에서 바울이 그렇게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고 초라하지 않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이 1절 말씀 속에 다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합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런 이런 일에 쓰시려고 따로 구별해 놓은 존재이다. 이런 자기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그래도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여기 부르심을 받아 택정함을 입고에는 몇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1)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된 것이라는 겁니다.

 

로마서 11절에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자신의 자발성과 자기 의지를 기각당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율법에 정통하니까 나도 사도정도는 한 번 해봐야지 해서 자기 의지로 된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나는 죽어도 사도는 안 할 거야 그래서 안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전적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과 택정하심을 입었다는 겁니다.

영국) 존 스타트 목사님이 쓴 책 중에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나책에 보면 이런 부분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있어서 이것만큼 잘 설명한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정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부르심을 받아 이 말은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으면 내가 그곳에 절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산헤드린 공회원 그 자리가 좋은데 뭐 한다고 사서 고생을 하겠으며,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으면 뭐 한다고 인기 없는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끌어 당겨졌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밀어졌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물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 누구도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남자가 용감하게 물에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한 것입니다. 모두를 와~~~ 대한하다 그러고 있는데 이 사람의 첫 마디가 뭐라고요? 누가 날 밀쳤어

바울도 하나님이 밀치지 않았다면 절대 복음전하는 자로 뛰어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니 뛰어 들고 싶어도 뛰어 들 수도 없었는데 하나님께 부르셔서 복음 전하는 자로 이 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이런 부르심, 택정함 단어들을 끌어다가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구원 받고 복음 전하는 성도가 된 것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가 성도가 된 것 아닙니까? 거기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도권인 겁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의미 있는 인생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2) 부르심과 택정함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겁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따로 구별하여 부르시고 택정하심이 언제 이루어졌다고요?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따로 구별하여 부르시고 택정하심이 언제 이루어졌다고요?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부터 택정하셨는데 근데 바울이 이것을 자각한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것을 자각한 겁니다.

문제는 내가 언제 자각하느냐 그 시점이 문제입니다. 빨리 자각하면 자각 할수록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자각하지 못하면 죽을 때 까지 멍 때리면서 그렇게 의미 없이 살다가 인생 끝내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는데 그런데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니 예레미야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 앞에 뭐라고 반응합니까?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맨날 슬프도소이다그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의지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택정하여 따로 구별하여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맨 날 하는 말이 뭡니까? 슬프도소이다 나는 아이라 말 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모세와 같이 내가 누구관데“....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을 자각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부르시고 택정하였다면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세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열심히 해서 그 일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37: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은 자기 열심, 자기열정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나는 부족한데, 나는 리더십이 없는데 나는 자격이 없는데 이런 나를 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 그 열심히 나를 부르시고, 택정하시고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 하세요.

)여호수아, 요단강 도하, 어떻게 건널 것인지 말씀해 주셨어요. 요단 강물을 가른 것은 여호수아가 했나요? 하나님의 열심히 하셨어요.

 

바울이 이 법칙을 깨닫고 나니까 고전15:10절에 이 확신을 보십시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4.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과 택정함의 비밀을 자각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정함을 가작한 바울이 얻게 된 유익을 3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쾌락에 빠지지 않아요. 즉 복음전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으셔서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말씀처럼 사명이 자가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명의 자각이 있으면 세상의 유혹이 더 이상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

 

2)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원어에는 전치사 엔 로마~~~이렇게 시작합니다. 로마로부터 구별되는~~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에서 성도란 헬) “하기오스인데 이 말은 성결, 거룩, 구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타락한 로마에 살지만 로마로부터 구별된 존재 이게 성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은 어떻게 인식해야 하느냐? 우리는 타락한 이 세상에 몸담고 살지만 이 세상과 섞이지 않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런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3) 자기의 약함을 통하여 성도됨을 나타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에 시비를 걸 때 바울은 사도됨을 무엇으로 나타내고 있습니까?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그 가수 타블로는 그 스텐포드대학 졸업을 시비걸때마다 무엇으로 증명한줄 아세요? 졸업장, 자기 클레스 학생들과 찍은 사진들, 졸업확인서..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을 자기의 약함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육체의 가시, 여러 학자 -> 간질 -> 심약해서 귀신이 들랑 달랑 거리는 상태로 생각한 시대 이러한 약함을 사도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이것이 어떻게 사도됨의 증거냐?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왜?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 약함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성도됨의 무엇으로 나타내고 있습니까? 혹 큰 자가 되어서 내가 성도임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비로운 능력을 받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뭐라고 한 줄 아세요?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족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사도, 부르심, 택정함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택정함을 입은 것처럼, 우리 모두도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셔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택정함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이루시는 것도 하나님의 열심히 이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용주)(성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 복음 전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 결코 쉽지 많은 일입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마음상한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성도이기에 참아내고 있는 그 애씀을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외면하시겠습니까? 양이 목자를 알고 목자가 양을 알듯이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믿기에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택정함을 입은 자로 세월을 아끼며, 구별된 삶과 우리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기시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