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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한 삶공부 /오이코스모임

16-48.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 요나1:4-10

by 오용주목사 2016. 12. 11.

16-48 오이코스 모임지

Ice Break 내게 가장 친한 친구 한명을 소개해 보세요.

48.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 요나1:4-10

오늘 본문에서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기치 못한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 옛날에 불렀던 찬송가 생각이 났습니다.

1.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하나님 낯을 피해서 도망가던 요나가 처음엔 얼마나 순조로웠습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순풍에 돗단 인생길을 달려갔는데 드디어 2절 가사가 그의 인생에 도래한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난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공들과 하나님을 알던 요나가 똑같이 풍랑을 만난 운명공동체 속에서 똑같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1. 먼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공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위기가 찾아오니까, 풍랑이 찾아오니까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그들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몇 가지 인데 그게 뭡니까? 1: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사공들이 두려워하여그래서 그 다음 대안이 뭡니까?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그런데 여러분 이 대안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왜 허무한지 아세요? 도와 줄 수 없는 어떤 막연한 대상을 향하여 빌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하나님을 해처럼, 달처럼, 나무처럼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말 답답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또 그들이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여러분 화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극도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풍랑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선원들의 특징입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요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3절에도 그러나 요나는 이라고 시작하는데 5절에서도 그러나 요나는 동일한 말로 시작합니다. 1:5절 하반절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성경에 잠은 평안의 상장으로 등장합니다.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의 요나의 잠자는 모습은 위장평안입니다. 가짜 평안입니다. 이 요나의 잠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책임회피를 말하는 것이요, 이 요나의 잠은 폭풍을 만난 이 세상에 대한 현실도피입니다.

 

3. 선지자 요나의 더 비참함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지자가 된 요나가 세상 사람으로 상징되는 선장에게 질책을 당하는 겁니다.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오늘 본문에 자는 자여 어찜이이 말이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은데 자세히 보면 세상 사람이 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 겁니다.

 

4.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이 요나의 수치는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오늘 위기를 만난 요나의 두 가지 문제가 무엇입니까? 1) 풍랑 앞에 무기력한 모습

2) 세상 사람들에게 지적 받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이게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설교의 핵심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런 무기력하고 문제가 많은 요나를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이게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이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요나,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시라면 이런 요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장 갈아치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말 잘 듣는 요 너를 세우는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요나를 추적합니다. 그래서 요나서는 요나가 주인공이 아니고, 이러한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풍랑을 일으키시고, 제비뽑기에 걸리게 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이 모든 것이 요나를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이더라는 겁니다. 또 한 장면 피곤하게 사시는 장면이 있는데 출4:1-16, 길지만 의도적으로 다 읽어드립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피곤하게 복잡하게 사십니까? 그냥 못하겠다면 치워버리고 아론 시키면 되잖아요. 제가 여기서 깨달은 은혜가 뭔 줄 아십니까?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겁니다. 세상은 우리를 기능으로 대합니다. 그래서 시원찮으면 언제든지 교체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기능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관계로 대하십니다. 고아로 대하지 않으시고 자녀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헷세드의 사랑입니다.

오늘 요나와 같이 풍랑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두렵고 낙심되십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 풍랑은 다름 아닌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 풍랑이 몰아쳤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관심의 표시입니다. 물고기가, 힘든 환경이 당신을 삼키셨습니까? 그 안에서 감사하시고, 그 안에서 찬양하십시오. 왜입니까? 요나가 풍랑을 만나고, 제비뽑기에 걸리고,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배속에까지 들어간 이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보니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비뽑기에서 걸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일들의 배후에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일들의 배후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