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0 오이코스 모임지
Ice Break 당신이 만난 가장 큰 위기와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나눠보세요.
50.율법과 복음 / 갈3:23~29
춘천이레교회라는 이름 아래 첫 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율법과 복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면, 성경은 말 그대로 신구약 66권을 성경이라 말합니다. 계명은 율법을 간추려 놓은 것으로 보통 십계명을 말합니다. 그럼 율법이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이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을 율법이라 말합니다. 율법에는 크게 하라는 것과 하지마라는 것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또한 복음이라 할 때에는 신약 성경을 복음이라 말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뭘까요?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요, 복음은 내가 믿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은 CT나 MRI 같은 것이라면 복음은 치료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1.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율법의 주신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우리들이 그것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이 그 율법을 잘 지켰을 때 그 대가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먼저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도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의 백성의 규범으로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즉, 구원과 은혜가 먼저이고 율법이 나중이었습니다. 율법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나 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2. 율법을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1) 율법주의. 율법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율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갈2:16, 마7:22~23, 21, 요6:38~40
2) 반 율법주의, 반 율법주의란 율법은 이제 폐하여 졌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약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곳이 반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 안식일 제도 : 출20:8, 신5:12~15, 사도들)
* 살인, 간음에 관한 제도 : 출20:13~14, 마5:22
* 구약의 제사 제도가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예배로 완성 (요4:23~24)
* 구약에는 할례가 마음의 할례로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롬2:29)
3) 중간지대, 또 하나의 중간지대 형태, 갈라디아 주의 : 구원받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받는다. 그러나 구원이 유지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이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첫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23:23, 롬3:20, 7:7) 둘째, 율법은 죄를 심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정교사입니다. 넷째,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규범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자 그런데 바울은 갈3:23~24절에서 우리가 율법아래 있을 때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 “믿음이 오기 전에” 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을 의미하는데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갇혀있다, 수감되었다, 구속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갇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 잘 들어보세요. 율법은 우리들에게 크게 도덕법, 시민법, 제사법에 대하여 행할 일과 행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도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율법에 어긋나게 살았기 때문에 그 율법의 정당한 판결을 받아 정죄의 판결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띠라서 우리는 죄 아래, 율법 아래,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신세들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나니 결과가 위암 3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은 위암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위암 수술을 받고 완쾌 될 때 까지 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우리를 향하여 너는 죄인, 그리고 언도하기를 사형을 언도합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죄의 감옥에 갇혀있다는 말입니다. 4.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성탄절에 빼놓지 않고 부르는 찬양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찬양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우리를 율법아래에서, 율법의 감옥에서, 죄의 감옥 에서 해방시켜 은혜아래 있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롬6:14~15, 눅4:18~19) 그 방법이 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대신 감옥에 갇히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사형집행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 아래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이 복음 때문에 구원받고 이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지키는 것이라면 복음은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보내는 것이 무엇인가? 왜 예수님께서 오셨는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왜 오셨다고요? 우리를 죄의 포로에서 자유케 하기 위하여, 죄에 억눌려 살아가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죄의 감옥에서 갇혀 신음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한 것 아닙니까?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 복음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정확하게 내 삶의 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은 어둡고 눈물 나는 현실이지만 이 복음이 내 삶에 큰 기쁨이 됨을 맞보고 누려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쁨의 소식을 흘러보냐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이 기쁨의 소식을 누군가 나에게 전했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아직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자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 전해야 한다고요?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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