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오이코스 모임지
말씀 나눔 : 바울의 삶이 BC와 AD로 구분되는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삶의 나눔 : 당신의 삶에 BC에서 AD로의 전환의 사건을 서로 나눠보세요.
당신이 주님께 끊임없이 묻고 있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02. 사울의 삶, 바울의 삶 / 롬1:1-2
오늘은 바울의 삶을 통해 복음의 그 위대함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서두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 종 나 바울은”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시선을 “나 바울은”이라는 이름에 집중에 보시기 바랍니다.
1. 사울의 삶
바울이 13권의 서신서를 기록했는데 이 13권의 서신을 바울서신이라 부르죠? 그런데 그 서신서 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그가 기록한 모든 서신서의 맨 처음 시작을 “나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헬라어성경: “파울로스 둘로스 이예수스 크리스토스” 라고 ‘파울로스’, 바울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바울의 일생을 보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 BC의 삶과, 예수님을 만난 후 AD의 삶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인 사울의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행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의 삶의 특징을 자기 생각 되로 산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위한 일이겠거니 자기가 생각하고 예수님을 핍박했다는 거 아닙니까? 또 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바로 사울의 이름의 뜻과 같이 큰 자가 되는 겁니다.
빌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보세요, 굉장히 열심히 살았죠?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요? 자신의 힘과 지혜를 동원해서 자신의 유익과 위상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큰 자의 삶을 위해서 자기의 지혜를 총 동원하여 열심히 사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큰 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울이 그가 기록한 서신서에서 ‘나 사울은’ 나 사울은‘이렇게 자기를 소개해야 제대로 소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자기를 소개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자기를 ’바울‘ 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기가 쓴 모든 서신서에서 말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이제는 ‘사울의 삶’을 청산하고 ‘바울의 삶’을 살겠다는 자기 선언인 겁니다.
2. 바울의 삶
그럼 바울의 삶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작은 자의 삶, 약함의 삶입니다. 여러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과거 자기 모습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과거 자기의 열심, 학벌, 스펙 뒤에 가려진 자기의 실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난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예, 이사야)
결과 큰 자의 삶에서 작은 자 의 삶으로, 강한 자의 삶에서 약한 자의 삶으로 내려오더라는 겁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했는데 이제는 그 부끄러워했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자로, 복음을 미련한 것이라 했는데 그 미련한 복음을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고 자랑하는 자로, 복음을 믿는 자를 욕하고, 핍박하고 옥에 가두는 파렴치한 짓을 했는데 복음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는 자리로 내려가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토록 사울을 변화시켰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그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지난날 자기 열심, 자기 의로 충만했던 사울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고전15:10)라고 고백케 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 생각한 사울을 딤전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하게 하더라는 겁니다.
3.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고 전부 큰 자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큰 자되고 싶어서 아닌가요?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큰 자되기 위함 아닌가요? 어디서요? 이 땅에서, 그리고 그 다음은 천국에서... 우리가 끝없이 추구하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큰 자되게 해 주세요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한 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한데요. 누구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큰 자의 삶을 살아갑니까? 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의 삶의 양식으로 살아갑니까? 왜 바울의 과거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삶의 양식이 그대로 나타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이 다투는 그 곳에 과연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는 하는 것입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어떻게 회복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울과 같이 다메섹 도상에서 했던 두 가지 질문, 우리는 계속 주님께 던져야 합니다. 첫 번째 행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고 끊임없이 주님의 존재에 대해 알아가려고 몸부림쳐야 해요.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늘 주님을 알기를 노력해야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행22: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여러분 우리가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봉사하고 그렇게 섬겼는데 주님 보시기에도 이게 옳은 일인지요? 질문해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 생각에 내 생각은 옳고 저 사람생각은 틀렸다 싶어도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 제 생각에는 제가 옳은 것 같습니다만 주님 보시기에는 어떠신지요? 무엇을 하오리이까?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문이 생략되면 그때부터 병들기 시작합니다. 병들면 어떻게 되느냐? 내 생각이 다 옳다라고 확실히 믿으며 살아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태어날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즉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 같은 뜻, 같은 비전,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생각 하고 그
리스도와 함께 행동하는 삶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주일동안 이 세상에서 비굴하게 살지 마시고 초라하고 시시하게 살지 마시고 나는 과거 큰 자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며 살았던 사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로의 삶을 산 바울과 같이 난 하나님의 자녀야 "Be Christian" 크리스찬 답게 행동하라 이 인식이 여러분을 고상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이 됨을 맛보고 경험하는 한 주간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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