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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 음성듣는 것

제18강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 분별의 필수성

by 오용주목사 2016. 9. 16.

18강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 분별의 필수성

 

 

20:22-24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시리즈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인데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에 있어서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의 분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 육신의 소리 사단의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이 중요합니다.

분별은 세 가지로 되어져야 합니다.

계시의 단계의 분별입니다. 계시의 단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감동을 받는 그 부분에서의 분별을 말합니다.

계시의 단계에서의 분별은 감동이나 깨달은 바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 근원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사단에서, 하나님에게서 우리 개인에게서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시의 단계의 분별이라면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계시의 단계에서의 분별이 바르게 되었어도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 그릇되면 정반대의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 단계에서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1.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의 분별의 필수성

 

계시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사단과 육신에게서 온 것은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취해야 합니다.

그래도 두 단계가 있습니다. 해석과 적용입니다.

그 중요성에 대한 성경적인 예가 바울의 예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갑니다.

그는 길에 두로라는 지역에 들립니다. 이 지역은 예루살렘 북쪽입니다.

하역하느라고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바울이 배에서 내려서 두로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찾아갑니다.

교제도 하고 은혜도 나누기 위해 찾아갑니다.

214절입니다.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그 당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모이면 서로 기도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이 그냥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여러 날을 지난 후 가이사랴로 옵니다.

가이사랴에서도 바울은 집사 중 한명인 빌립의 집에 들어갑니다.

딸이 넷이 있었는데 네 딸이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언하는 자라고 나온 것을 보면, 성경을 보면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대로 예언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깊은 예언이 주어졌고 예언이 빈번한 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 딸 뿐아니라 선지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가보는 예언이 자주 나타났을 뿐아니라 선지자로 임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선지자는 그 당시 널리 알려진 선지자였습니다.

그 선지자가 행21:11-14절을 보면,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문제는 이것입니다.

바울이 전도하면서 모아놓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들렸다가 로마로 가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에 두로에 들렸는데 두로에 있는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리사야에 왔더니 빌립이 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면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일반성도들 뿐 아니라 선지자 아가보까지도 극적인 행위를 하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20:22-24절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기보면 빌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2017절부터입니다.

그 권면하는 내용중에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여기 심령이라는 말은 성령으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개역성경에 심령에 매임을 받으라고 번역하는 이유는 아마 20장과 21장의 모순 때문에 해결하려고 한 것일 것입니다.

만일 성령으로 번역한다면 바울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고 21장에서 성도들과 선지자도 성령으로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성령의 감동으로 가라고 하고 가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조절하기 위해서 이렇게 번역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으로 하다보니까 어떤 결과가 나오냐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오래전부터 기도해온 것이고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았던 사람인데, 성령의 뜻은 사도바울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바울이 뜻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가서 붙잡히고 어려움을 당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구절은 성령으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이 본문만 보아도 알 수 있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붙잡힌 그날 밤에 부활의 몸을 입고 친히 바울에게 오셨습니다.

오셔서 네가 이들 앞에 선 것처럼 가이사 앞에서 서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을 보면 성령으로 번역하고 있고 개역개정판도 성령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번역한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바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고 다른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 말라고 합니다.

동일한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라고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지 말라고 하냐는 것입니다.

모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되 계시의 단계에서의 불별 뿐아니라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의 분별의 필수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의 분별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21장으로 갑니다.

여러분 여기 두로에서의 제자들 예수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지요.

가이사랴에서 빌립의 딸들이 말하는 부분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2111절부터입니다.

아가보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수족을 묶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경우에 계시의 단계는 무엇입니까?

아가보가 바울의 띠를 가지고 묶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행동이 예언일 수 있습니다.

에스겔에서 옆으로 누워있으라고 하고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매고가라고 하고 배로된 띠를 사서 강가에 묻고 파라고 합니다.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예언입니다.

아가보의 경우도 예언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이었습니다.

 

다음 해석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이것이 해석입니다.

 

이 해석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부분에서 틀렸습니다.

나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바울을 묶는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준 사람이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는데 로마장교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두 가지 면에서 틀립니다.

바울을 묶는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었고 이방인에게 넘겨준 사람도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유대인들 때문에 이방인의 손에 넘기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맞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틀렸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적용입니다.

그러니까 여기보면 2112-13절을 보면,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계시가 있었고 해석이 있었는데 그 해석을 듣고 판단하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다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두로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저들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어려운 일을 당할 것 같았던 겁니다.

그래서 계시와 해석의 단계는 맞았는데 적용이 잘못되니까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과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적용단계에서 잘못되니까 못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세 단계를 분별해야 합니다.

계시의 단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할 뿐아니라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단계와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적용의 단계에서도 잘 분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단계마다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각 단계에서 성령의 인도를 올바로 따르지 못하면 적용단계에서 실제로 반대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이 어떤 교회에 집회를 오셨습니다.

집회동안 담임목사님이 다른 데 집회 가느라고 교회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성도가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분은 사업하는 분이었어요.

집회중에 부흥강사가 이랬던 것 같아요.

그분 위에 검은 구름이 있는데 그 구름 위에 달러 표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환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강사가 일으켜 세우고 당신 검은 돈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사람들 앞에서 가만히 있었답니다 그러다 담임목사님이 오시니까 말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돈문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선한 청지기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강사목사님이 말씀하셔서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양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이 사업하는 성도님의 회사에서 직원이 회사돈을 횡령하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이 강사목사님에게 보여주신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계시였습니다.

해석도 맞았습니다. 검은 돈이라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직원이 회사에서 돈을 빼가니까 알려주기 위해서 경고하는 것인데 강사는 사업가가 검은돈을 빼돌리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요.

그러니까 계시도 올바로 분별했고 해석도 올바로 했는데 적용이 잘못되니까 반대가 되었어요.

이런 잘못들을 우리가 얼마든지 범할 수 있어요.

 

오늘날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분별해야 하는데 계시와 해석과 적용 각 단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계시와 해석은 a라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적용은 b라는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한 사람에게 주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고 영적인 리더가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부분이 종합적으로 되어져야 합니다.

 

 

3.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하라고 하니까 여기서 기도받아보고 저기서도 기도받아 보니까 똑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분별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바울이 그렇게 분별했다면 안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두로에서도 들었고 가이사랴에서도 들었는데요. 특별히 가이사랴에서는 일반 성도가 기도해준 것도 아니고 당시 예언하는 자와 유명한 선지자가 기도해주었는데요.

은사의 네 단계를 통해서 생각해보았던 것처럼 예언하는 자라는 칭호와 선지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다는 것은 이들에게 예언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역의 단계에 있었으며 직분의 단계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빌립의 딸들은 사역의 단계의 은사가 주어졌고 선지자가 아가보는 직분의 단계에 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다섯 명이나 또 일반 성도들의 기도내용도 올라가지 말하고 했으니까 바울이 기도의 내용이 같다는 기준으로 분별했다면 안갔어야 옳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분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기도받고 맞추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서 분별하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기념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영적기념비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계시해주는 특별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하나님 자신과 목적과 길을 계시해주시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것을 연결해보면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음성을 예언이라고 영적기념비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이미 말씀해 오신 뜻에 비추어볼 때 이것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일직선상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경우를 봅시다.

12:1-3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3:14-18절입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15:4-5절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7:1-8절입니다.

“1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2:16-18절입니다.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때그때 마다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일직선상에 정확하게 있습니다.

점점 뜻이 명확해집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애굽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기근 때문에 내려갔고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돌아오게 하셨지요.

이렇게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있어서 개인과 교회에 영적기념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안에서 분별해야 하는데 영적인 기념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비교해볼 때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가 정확하게 그랬습니다.

두로에서 교회에서 못가게 합니다.

빌립의 딸과 아가보까지 못가게 합니다.

그리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이 예언들을 멸시할 수 있습니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여러 통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반면에 예언을 분별해보라고 했지요.

바울은 어떻게 예언을 분별했어요.

하나님이 자신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것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한번 살펴봅시다. 두 가지 면으로 살펴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핍박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11:27-30절입니다.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5:23-26, 30-31절입니다.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1:9-10절입니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물질로 돕고자 결단을 했고 구제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바울이 맡았고 그 일을 마친 후에 로마로 가고자 계획하고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에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오래전부터 분별하고 간 것입니다.

개인 뿐아니라 교회가 분별하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핍박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9장을 보면 바울이 처음 거듭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서 직가라는 곳에 가서 다소사람 사울에게 기도해주라고 하십니다.

기도할 때 바울에 대해서 말합니다.

15절입니다.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바울 개인에게도 하나님은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20:22-24절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을 보면 바울이 처음 구원을 받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건 자신을 통해서건 가는 곳마다 핍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세요. 지금 예루살렘을 들려서 로마로 가려고 기도해왔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십니다. 드디어.

뿐만아니라 여러 사람을 통해서 가는 곳마다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바울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명한 예언 사역자들과 선지자가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성령이 감동하셨다고 말하고 올라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올라가지 말라고 했을 때 바울은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올라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올라가면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자기가 묶임을 당할 뿐아니라 목숨을 잃는 것도 기꺼이 하겠다고 말하면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요?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장본인이 당연히 그 예언들을 멸시치 않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해주신 인도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갔고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게 되었고 전승에 의하면 기도했던대로 스페인까지 가게 되었고 다시 로마로 와서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붙잡혀 순교 당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계시의 단계에서 올바로 분별해야 할 뿐아니라 해석과 적용의 단계에서도 올바로 분별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을 성경의 예를 들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각 단계 마다의 분별한다는 것은 여기 저기 기도받는 것을 대조해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분별하되 영적기념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될 때 훨씬 더 그 의미를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잘 따라갈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수년전에도 새물결선교회 집회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했는데 지방에서 오신 사모님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중에 분별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끝나고 나서 그 사모님이 뭔 소린지 너무 어렵네요. 너무 복잡해요 라고 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 그러면 간단하게 될 줄 아는데 단계별로 분별 말하고 하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끝까지 올바로 듣고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잘 분별할 수 있을 뿐아니라 순종해서 여러분 개인 뿐아니라 교회가 하나님과 동행해서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일주일에 한번씩 하나보니까 우리는 예배 시작할 때 들었던 것은 예배가 끝날 때쯤 잊어먹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했기 때문에 안 남아있을 수 있는데, 인터넷에 올라가 있으니까 처음부터 돌아가서 다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인 윤곽이 잡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고 순종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