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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 음성듣는 것

제15강 사탄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

by 오용주목사 2016. 9. 16.

15강 사탄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

 

 

제가 기도를 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아시아 센터 광고하니까 우리도 할 일이 많은데 그러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하나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가운데 은혜를 부으실 것이고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필요한 은혜를 쏟아 부으실 줄 믿습니다.

 

 

16:21-23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우리가 주일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시리즈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몇 주 동안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분별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많은 혼돈이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데 세 가지 단계에서 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계시단계 해석단계 적용단계입니다.

단계마다 올바로 분별되지 않으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단계 중에서 한 단계라도 올바르게 분별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반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각 단계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몇 주일동안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계시의 단계에서의 분별입니다.

계시단계에서의 분별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감동이나 환상이 주어질 때 어떤 것이 깨달아질 때 분별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계시라는 단어에 대해서 매우 민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계시로 주어졌습니다. 여기 계시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14장을 보면 예언을 계시라고 표현합니다.

계시단계의 분별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계 우리에게 보여지는 단계에서의 분별을 말합니다.

그런데 계시의 단계에서의 분별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의 보여지는 것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근원은 셋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근원이고 다른 하나는 내 생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단마귀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보여지거나 주어질 때 그 배후에 있는 근원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계시단계의 분별입니다.

여기서 저는 하나님 사단 자기 자신 셋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잘 아는 내용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기뻐하시면서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은 혈과 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실 것을 알립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것을 말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를 똑바로 보시면서 사단이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똑같은 베드로에게 말이 나왔는데 첫 번째 말은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고 다음에는 배후에 사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분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어떤 것이 주어질 때 근원을 분별하는 것이 계시의 단계의 분별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사단이 우리에게 말할 때 어떤 특징이 있는가?

사단의 음성에 대한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단이 여러분에게 나쁜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을 부인하는 분은 없지요. 다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집어넣으실 것을 전혀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사단이 우리에게 말할 때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주어졌든, 성경을 통해서 주어졌건 내적감동을 통해서 주어졌건 꿈을 통해서 주어졌건 환경을 통해서 주어졌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주어졌을지라도 사단이 우리에게 말할 때 특징들이 있습니다.

 

 

1.사단의 음성은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34-5절입니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보면 뱀 사단입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는 사건입니다.

여기 사단의 목소리는 지금 하와에게 범죄하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음성은 우리를 죄에로 인도합니다.

 

제가 어떤 책을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한 교회 집회를 갔는데 목사님 자녀들이 자기 엄마가 곧 죽을 것이라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하나님이 그러셨는데 사모님이 곧 죽을 것이고 목사님이 교회에 있는 다른 성도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데요. 그런데 다른 여자 성도에게도 똑같은 감동이 왔는데 남편이 곧 죽을 것이고 죽으면 목사님과 결혼할 것이라고 했데요.

그래서 자녀들이 엄마 죽기를 기다리고 있더래요.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것을 말하고 거짓말을 깨뜨렸다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똑같이 말씀하셨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죄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사단의 음성이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왜 사람들이 미혹으로 죄로 인도하는 사단의 음성을 듣게 되는가? 여요.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올바른 자세에 있어도 사단은 우리를 미혹합니다.

 

새가 여러분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우리들에게 악한 생각을 불어넣는 것은 우리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가 여러분의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는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어도 우리에게 사단이 수시로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미혹되는 이유는 우리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1:13-14절입니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 시험은 미혹됨을 말합니다. 성경에 시험이라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테스트입니다. 또 다른 시험은 미혹입니다. temptation입니다.

미혹의 의미로의 시험은 하나님이 아무에게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시험은 유혹을 말합니다.

 

사단의 음성은 죄로 인도하는데 죄로 인도하는 사단의 음성을 듣는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죄로 미혹하지 않습니다.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단의 음성은 죄로 인도합니다.

 

 

2.사단의 음성은 미혹과 유혹으로 인도합니다.

 

아까 한 가지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는데요.

오늘 사단의 음성들의 특징들을 살펴보는데 모든 특징들이 다 나타나야 그것이 사단의 음성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특징 중 하나만 나타나도 사단의 음성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단의 음성은 미혹과 유혹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진리의 성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절입니다.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반면에 사단은 우리를 미혹과 유혹으로 인도합니다.

사실 사단은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사단은 집어넣습니다.

나는 예외다라는 생각을.

나는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 나에게는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를 짓지만 나에게는 파멸이 없을 것이다는 음성. 이것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심지어 사단은 성경을 가지고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실 때 사단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시험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성경을 가지고도 우리에게 말하되 사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목적과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적을 따라 자기의 의도를 위해 말씀을 왜곡시킵니다.

 

 

3.사단의 음성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인도합니다.

 

사단의 음성은 우리를 두려움에 쌓이도록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8:15-16절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사단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12:2절입니다.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여기보면 마귀의 인도를 억압적인 인도로 표현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마귀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유발시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적으로 인도합니다.

제가 듣는 바로는 무당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답니다.

새벽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일어나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목욕재개하고 새벽에 제사를 드리고 쉽지 않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안하면 해꼬지할까 봐서 한답니다.

자기와 자기 가정에 큰 해가 닥칠 까봐서 그런답니다.

사단은 우리를 두려움을 가지고 인도합니다.

그래서 무당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두려움을 이기고 예수안에서 자유함과 화평을 누리기 때문에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사랑과 정상적인 판단을 동반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사랑과 정상적인 판단을 동반합니다.

아까 읽은 롬8:15-16절 뿐아니라 딤후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일4:18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런데 어떤 분들은 심지어 이런 분들이 있어요.

예언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지금 교회에 3000만원 헌금하지 않으면 당신의 사업에 부도가 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금도 다른데 하면 안되고 그 사람이 섬기는 그곳에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예언을 빙자한 자기 욕심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적지 않지요.

제가 아는 한 분은 목사님인데도 그렇게 하셨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자녀들에게 해가 닥친다고 하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정상적인 판단과 사랑을 동반합니다.

 

어떤 분이 와서 아주 유명한 예언사역자인데 교회집회하면서 예쁜 아가씨한데 예언해주면서 자기 아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어요.

그 아가씨가 고민해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예언이 상당히 정확했어요.

그리고 이 아가씨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하는 아가씨였어요.

그런데 저분하고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예언이 그렇게 나왔는데 만일 결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고 어그러지면 어떻게 할까 두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까요 사단의 음성이었을까요 그 사람의 음성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상적인 판단과 사랑을 동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압적으로 인도하신다면 순식간에 세계를 바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넘어질 것을 감안하면서 스스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도록 선악과를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인간을 선택의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물로 창조하셨습니다.

왜 그 아가씨에게 들려진 예언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는가 하면 그 아가씨의 정상적인 판단을 배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할 때에도 사단이 지적할 때와 하나님이 지적할 때가 다릅니다.

사단도 여러분이 죄를 지은 줄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죄를 들추어냅니다.

사단이 우리의 죄를 지적할 때는 정죄합니다. 네가 목사라면서 그렇게 해놓고 어떻게 뻔뻔하게 설교할 수 있냐? 이 인간아 너나 잘 살아라라. 외식하는 자야 그런 가식을 가지고 누구를 인도하겠느냐 하면서 정죄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죄가 엄중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는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중심에서부터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단이 여러분에게 정죄하거들랑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사단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래 그 죄만 지은 줄 아느냐 나는 더 많은 죄를 지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다 용서받았다. 참고로 말하면 더 많이 지었어,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내게서 떠나라.

이렇게 명령하십시오.

 

 

4.사단의 음성은 육체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이중에 하나만 해당되고 잘 분별해보아야 합니다.

사단의 음성은 육체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예언의 영은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잘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예언이 주어진 목적은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화살표와 같습니다.

1910절입니다.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무슨 말인가?

여러분 성경에 보면 천사가 나타날 때 영광의 빛이 너무나 놀라서 천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공통적인 특징은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지금 나타나서 요한에게 말씀해주는 예언이 얼마나 놀라운 내용이냐면, 말세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내용이지요.

그 영광의 빛 그리고 그 내용. 그래서 그 앞에서 너무나 감격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들어서 요한이 엎드려 절하려고 했더니 천사가 말립니다.

여호와의 사자라고 번역된 하나님이 직접 오신 것이지요. 그 사자만 경배를 받습니다.

 

자 그래서 못하게 하면서 나도 똑같이 종된 자라 하면서 증거하기를 대언의 증거는 대언이라는 말은 예언이라는 말입니다. 예언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려 함이니라. 영광을 돌리려면 하나님께 돌리라는 말입니다.

참다운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뭐하느냐? 육체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거짓 사도들입니다.

고후10-13장까지를 보면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거짓 사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이 거짓 사도들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미혹되어서 사도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했고 나중에 사도바울이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바울을 쫓아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무엇이었느냐?

자기들은 본인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된 선지자라고 하지요.

고후115절입니다.

“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여기 지극히 큰 사도들이라고 했는데 영어성경은 슈퍼사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따옴표를 가지고 있어요.

이 말은 그들이 슈퍼 사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슈퍼사도들이라고 칭함받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들의 정체가 누구냐?

13절입니다.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들의 정체는 실제로는 거짓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왜 슈퍼사도라고 부름받았어요?

그들은 자기들의 자칭 슈퍼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로부터 슈퍼사도들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슈퍼사도라고 칭함을 받기 위해서 그들은 고후10-13장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집중적으로 자기들의 영적인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집중적으로 자기들의 영적인 체험을 자랑했어요. 그 이유는 자기들이 사람들 앞에서 슈퍼사도로 인정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목적을 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고후11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여러분 신약이건 구약이건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들의 특징 중 하나는 사역이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이 어려우니까 사역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자기 배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이건 구약이건 거짓 사도 거짓 선지자 거짓 리더의 특징 중 하나는 사역이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는데 엘리도 그랬고 그 아들들도 그랬습니다.

여기보면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이 성도들로부터 슈퍼사도라고 칭함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목적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 성도들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 자기 배를 채우고 자기의 이득을 얻고.

그런데도 사람들이 용납을 해요/ 왜요? 이들은 슈퍼사도라고 인정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112절입니다.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중매쟁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결한 처녀로 신랑되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매쟁이.

정결한 처녀로 된다는 말은 도덕적인 순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3절을 보면,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도덕적인 순결 뿐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우리의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사랑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성도들의 삶과 마음을 오직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주님을 존재를 다해 사랑하도록 주님께 인도하고 주님을 증거하였던 반면에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사단의 음성의 전형적인 특징은 육체를 자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이런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미혹되어 사람들 뒤에 줄을 섭니다.

 

 

5.사단의 음성은 지름길을 제시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와서 세 가지를 가지고 시험했어요.

이 모든 시험을 한 마디로 줄이면 지름길을 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사단이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고 했지요.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이 가정법인데 이 말이 얼핏 보면 돌이 떡이 되도록 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보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헬라어에는 가정법이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기에 쓰인 가정법은 첫 번째 종류입니다.

첫 번째 종류의 가정법은 가정된 내용이 사실인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증명해보이라는 말이 아니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느냐 그러니 돌로 떡을 만들어 네 주린 배를 채울 뿐아니라 사람들이 떡을 원하는데 떡을 주라는 말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어요.

왜녀하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떡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저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후에는 사단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때와 군중을 통해서 예수님을 왕 삼으려 했을 때는 똑같았습니다. 그 배후에는 사단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단과 군중을 통해서 시험했던 사단의 역사가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뿐만아니라 세상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으니 내게 절하면 모든 영화를 네게 주겠다고 했지요.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했지요.

이 하나하나가 뭐냐면 하나님의 기준을 적당하게 훼손시켜서 적당하게 타협해서 적당히 코너를 가로질러 감으로서 적당히 지름길을 택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 모든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지름길을 제시합니다.

군중들에게 자기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자기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준을 적당히 타협하고 지름길을 가도록 사단은 제시합니다.

선별적인 순종 적당한 순종은 사단은 제시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절대로 지름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철저하게 훈련을 시킵니다.

나중에 감옥에 갔을 때도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 때문에 억울하고 누명을 쓰고 갔지만 고자질을 할 수도 있었고 자기 변명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보디발의 가정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들어왔고 꿈을 해석해주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가거든 바로에게 말해달라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요셉을 다루는데 그 이후로도 2년을 감옥에 두신 이유는 지름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요셉 속에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철저하게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로 세우기 위해서 2년 동안 더 가두어두시고 이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우셔서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75세 때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는데도 약속이 더디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지름길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눈물의 씨앗이 되었고 오늘날도 중동의 전쟁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시되 철저하게 빚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복하도로 하나님의 기준에 온전히 서도록,

그런데 사단은 우리를 지름길로 인도합니다.

작당하게 타협하도록

우리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꼭 곧이곧대로 해야 되느냐? 지혜롭게 해야지.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닙니다. 사단의 지혜입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라고 하는 사단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적당하게 타합하라는 사단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사단은 지름길을 제시합니다.

 

 

 

6.사단은 분열하도록 인도합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캐나다의 한 교회에서 목사님이 쫓겨났데요.

그런데 주일학교 소수민족의 아이들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이 교회는 백인교회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분열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응답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절대로 분열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사단의 음성이 분열로 인도합니다.

 

얼마전에 꽤 오래전에 우리가 아침 중보기도를 어떤 분이 인도하고 계셨는데 인도하는 것을 중단하게 하고 다른 분에게 맡긴 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면 중보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감동을 주신다고 검증되지 않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또 중보기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다 검증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부정적인 예언들을 검증하지 않은체 말이 퍼지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담을 허는 역할을 해요. 보호막이 걷히게 해요. 사람들의 마음이 나누어지게 하고 불신하게 하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분열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없애버렸습니다. 그 기도회를 그리고 새롭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면서 분열하는데 사용되면 결국은 사단에게 이용되는 것입니다.

 

 

7.사단의 음성은 죄를 정당화시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한 자세입니다.

여러분 회개에 있어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겸비하는 것입니다.

대하714절입니다.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회개를 말하는데 회개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겸비한 것입니다.

스스로 겸비함이란 하나님의 기준이 비추어졌을 때 그 앞에 정직하게 동의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8세이 왕이 되었어요. 16살 때부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귀한 왕입니다. 개혁하기가 쉽지 않지요.

개혁을 하는데 성전부터 깨끗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가져온 율법책을 요시야가 읽는데 거기에 보니까 성경에 금해있는 우상숭배와 사술들이 조상 때부터 자기들의 삶 속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심판거리들이 자기들의 삶 속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가 그 말씀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옷을 찢으며 엎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데 사실인데 하나님께 여쭈어보라고 하지요.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요시야에게 보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뭐였느냐면 그 말씀그대로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가 묘실에 들어갈 때까지는 평안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요시야 때 하나님이 심판을 보내시되 요시야의 살아있을 때까지는 면제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그가 스스로 겸비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보면 스스로 겸비함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앞에 비추어질 때 하나님의 기준이 비추어졌을 때 그 말씀 앞에 정직하게 동의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소중한 정직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느냐?

66:2절입니다.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하나님 나라는 어떤 자들에게 주어지느냐?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해하는 자 이런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듣기 좋아하는 것만 듣기를 좋아합니다.

조금 우리의 귀에 거슬리면 목사가 나를 친다고 말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안그런 사람이 어디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데 뭐. 그렇게 살려면 목회자가 되었어야지. 목사님이야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러지. 세상을 한번 살아봐. 그것이 가능한가. 내 성격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

이 하나하나는 죄를 정당화시키는 사단의 음성입니다.

사단은 죄를 정당화시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동의하고 엎드려서 그래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스스로 설 수 없기에 애통해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주의 길에 서기 위해 밤낮으로 주의 길을 찾으며 하나님을 알기를 찾으면 악한 길들을 버리며 사는 것이 역대하 714절입니다.

주님을 구할 때 주님이 우리를 회복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사단의 음성은 죄를 정당화시킵니다.

 

 

8.사단의 음성은 우리를 교만으로 인도합니다.

 

교만의 원조가 사단입니다. 사단은 교만 때문에 몰락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반면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이땅에 오실 때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사단은 진리와 겸손을 희생해서라도 여러분이 자신을 높이도록 여러분의 자존심을 지키도록 부채질할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죠나단 고포스의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중국선교사였는데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분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오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렇게 해서는 온 중국에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자기가 귀하게 쓰임받을 것 같더래요.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 같더래요. 그런데 곧 바로 그것이 사단의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것을 즐기고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이 사단의 음성임을 곧바로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저를 세우실 수 있는데 제가 사단의 소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단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는 사단의 음성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 나온 특징 중 하나만 해당되어도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사단의 음성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길에 대한 올바른 지혜와 자세를 가지고 있지 못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할 뿐아니라 교회를 분열하는데 사용하고 자기의 목적을 정당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실제로는 사단의 도구가 되어서 쓰임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세위기 보다 사람들을 자기 목적을 위해 착취하고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자기들에게 관심을 이끄는 사단의 길에 서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아니라 우리들도 스스로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단의 음성의 특징을 분명하게 알아서 사단이 여러분을 미혹할 때 과감하게 대적하고 배척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하나님의 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 늘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