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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 음성듣는 것

제13강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by 오용주목사 2016. 9. 16.

13강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요나서 1:1-10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시리즈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환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를 나누겠습니다.

 

 

1.환경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환경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이정도입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워놓고 일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면 길을 열어주세요 그럽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막아주세요 합니다. 그러면서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안열리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제한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환경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길이 열린다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장도 없고 길이 잘 안열린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어요.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요나가 원하지 않았어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도망갈 생각을 가지고 욥바로 내려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갈 배가 있었습니다. 환경이 쫙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얼마 못가 큰 풍랑이 일어났고 고기뱃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황남규 선교사님이 오셔서 간증하셨습니다.

태권도 사범이신데 태권도 사역을 통해서 선교하기를 원하셨어요.

한국에 도장을 차렸는데 안되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만큼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그렇게 잘 되더래요.

보통 때는 한 달에 한명도 들어올까 말까 했는데 그때는 하루에도 몇 명씩 들어오고 한달에 몇 십명이 금방 되더래요.

하나님이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답니다.

자기 친구 사범들 다 데려다 놓고 그랬답니다. 이 사범님 따라갈 사람 손들어 손들면 데려가라고 그러고 또 저 사범인 따라갈 사람 손들어 해서 또 데려가도록 했답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제가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 지하에 가두워놓고 사방을 막으시고 팍팍 밟으셨다고 제가 표현하는데요.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미국에 있어요. 아주 소수를 빼놓고는.

그런데 그분들은 저에게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그럽니다. 어떻게 그렇게 참느냐고 오랜 시간을.

그런데 저는 인내심하고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제가 인내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요 길만 있었다만 그 당시 벌써 튀었지요. 길이 없는데.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를 다루시고 빚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고 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길이 열리는 거여요.

그 마이에미 쪽에서 한 목사님이 전화를 했어요.

아주 좋은 지역입니다. 백인이 많은 지역 한국도 좋은 지역, 성도도 200명이 넘는데요. 개교회 건물도 있고. 오래전 일입니다. 사택 따로 주고 차도 주고 아이들 학교 다니기도 좋고. 그래서 반드시 제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미국에서 공부했을 뿐만아니라 한국에서 목회하면서 기도도 하고 이런 부분에 갖추어진 사람을 원한다고 해서 저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안간다고 했더니 교회로 전화하고 집으로 전화하고 오늘 전화하고 며칠 동안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제가 만일 그때 갔다면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의 문이 열린다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반대로 환경의 문이 닫힌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환경이 막히는 경우 성령이 막는 경우도 있었고 사단이 막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요.

만약에 길이 막히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돌아서고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갔다면 분별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성령이 막으신 것이면 돌아가야 하고 사단이 막은 경우는 그만두면 사단이 승리한 것입니다. 바울처럼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길을 내서 가게 하시기를 구하고 추구해야겠지요.

 

그래서 환경 하나만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2.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신앙생활 뿐만아니라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매우 중요한 경우가 무엇이냐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면 안된다.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아야 한다.

제가 평상시 하지도 않는 따라하라고 한 것은 반드시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를 보면 이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져서 최정예 부대를 데리고 쫓아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앞은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최정예부대입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의 최정예부대입니다. 자기들은 무기 하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망하며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되 하나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서 여기서 죽입니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서 장사지내려 하십니까? 전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무엇을 그들에게서 의도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셨습니다.

저들에게 사람을 보낼 때부터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언약을 이루려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이셨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애굽에 흑암이 있을 때 이스라엘이 거하는 땅에만 빛이 비추었습니다.

모든 애굽의 장자가 죽임을 당할 때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양의 피를 바른 백성들의 가정을 넘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은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환경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과 목적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가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여러분 구약의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요셉이 꿈을 말하자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른 나라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끝났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는 날마다 자포자기하면서 원망하며 인생을 포기하는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 언제 제가 꿈을 주라고 그러던가요. 아니 하나님이 주셨으면 이루어주셔야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총리가 된 다음에 하나님이 보이신 꿈대로 이루셨잖아요.

총리가 되었고 애굽 뿐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도 그에게 주어진 지혜로 살게 됩니다.

형들이 왔을 때 나중에 신분을 밝힐 때 형들이 두려워합니다. 팔았기 때문이지요.

그때 요셉이 하는 말을 보면 요셉을 볼 수 있습니다.

45:5,7-8절입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보십시오. 이것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다면 절망과 자포자기와 원망과 분노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환경을 보니까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도 사랑과 신실하심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목적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겠습니다.

신약성경의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시아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막으셨어요.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손짓하며 와서 도우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으로 알고 빌립보로 갔습니다.

가서 저자 거리를 다니면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고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가 따라다녔습니다. 노예로 귀신들려 점을 쳐주는 자였습니다. 용해서 잘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따라다니면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정확하지요.

여러분 정확하다고 반드시 성령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너무나 정확했지만 귀신이 가져다 준 것입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잘 맞춘다고 반드시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정확했는데 문제는 귀신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영적으로 방해가 되니까 힘들지요.

그래서 귀신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계집종의 주인이 고소해서 재판정에 끌려가서 실컷 얻어맞았지요.

그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만일 바울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다면 어떠했겠어요.

하나님 내가 뭐라고 하던가요. 아시아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이리로 보내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하십니까? 아니 하나님 내 등이 성한 것이 배 아프십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2시가 되었을 때 그 아프고 불편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관점에서 환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감격이 되어 참을 수 없어서 옥토가 흔들리고 착고가 풀려지게 하시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빌립고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간수장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고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으로 가장 가까이 동참했던 늘 사도바울의 마음에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가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하심,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전지하심, 이런 것을 토대로 환경을 볼때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3.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감동으로 주어진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것,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깨닫는 것, 하나님이 추구하고 계시는 것을 보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책이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그 책 중에서 독특한 것 중 하나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분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115쪽 이하에서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이 요약한 내용 중에서 제 나름대로 몇 가지로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도로 시작한다.

이 기도도 뭐냐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을 설득하여 이것을 도와달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고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우리 삶을 조정해서 돌이키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계획대로 내 목표대로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 뜻을 주시한다.

셋째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연관지어 본다.

넷째 하나님의 행하심을 발견하면 그리로 삶을 조정한다.

 

무슨 일인지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동일한 책에 117쪽에 보면 우연히 찾아온 방문객이라는 한 예가 있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우연히 방문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 게시판 아래쪽에 쓰여있는 우리 교회의 카일(Kyle) 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프린스 알버트(Prince Albert) 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러브(Love) 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레지나(Regina) 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블레인 레이크(Blain Lake) 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등의 문구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공부반이나 교회를 원하는 사람을 보여주시기만 하면 우리 교회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서약한 바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성경공부반이나 교회를 원하는 사람을 보여주시기만 하면 우리 교회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당신들에게 우리 마을에 와서 침례교회를 세우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거기에 반응을 보이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로부터 약 120킬로미터쯤 떨어진 리로이(Leroy)라는 곳에서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리로이에 침례교회를 세우자고 24년 동안을 탄원하고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도와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혹시 와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리로이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에 두 구획의 터를 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학교 건물을 사서 그 터로 옮겼습니다. 그는 지금 평신도 목회자로 리로이를 포함한 그 일대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에 응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우리는 그것에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즉각 알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에 헌신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 주시기만을 원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는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에게 복주실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당신에게 계시하시고, 당신을 통해서 일하시며, 당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실지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일하심 자체가 당신에게 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복은 당신의 순종과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일하심을 경험하는 것(그 자체가 복이다)의 부산물입니다.

한 낯선 사람이 만일 당신 교회에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줄 수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하고 계신지 질문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조정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심을 보기 시작하면 당신의 인생을 조정하고 반응을 보이십시오.”

기도로 시작해서 일어난 일들을 주시하여 볼 때 우연히 일어난 일들, 우연히 찾아온 방문객,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사람,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사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연관시켜 본다는 것입니다.

만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가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며 인도해가는 것과 연관이 있는가를 연관지어보고 분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교회가 개척하고 일년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한번은 누가 우리 식구들에게 어린이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주어 우리 가족들이 다녀왔습니다.

기독교 뮤지컬이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아이들이 발랄하게 찬양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아이들 정신건강에도 좋고 예수님을 찬양해도 좋고요.

다녀 온 후에 아내가 그런 일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셨어요. 그런데 기도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 자매가 포도나무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도가 매주 등록하지 않았어요. 몇 달에 한번씩 했어요.

그런데 그 자매가 제가 가까이 하는 목사님 교회 출신이었어요. 이미 그 교회에서 나와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왔는데 목회 윤리 운운하며 따뜻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랬더니 그 자매가 얼마되지 않아 다른 교회로 갔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자매가 가자마자 그 기도가 끝났어요.

그런데 알고보니까 그 자매가 정확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움직이셨어요. 그런데 주시하여 보고 연관지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놓친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는 기도로 시작해서 둘째는 경각심을 보고 주시하여 보고 셋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연관지어 보아야 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행하심이 발견되어지면 삶을 조정해서 동참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입니다.

 

환경 하나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열린다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장도 없고 환경이 닫힌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한 가지를 통해서만 아니지요. 말씀을 통해서 내적감동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외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등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할 뿐만아니라 또 한 가지는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환경을 움직이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환경을 움직이십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구약의 요셉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시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 정반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를 세워가십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신실하게 섬깁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눈에 들어서 가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 보디발은 군대장관이었기 때문에 작은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은 가정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성공의 이력입니다.

리더를 세울 때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성공의 이력입니다.

약간 옆으로 가는 이야기입니다만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되 한 나라를 다스릴 자로 세우기 위해서 가정을 다스리는 것부터 훈련시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기가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열매가 맺혀지도록 노력하지 않고 더 큰 일이 맡겨지기만을 기다립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큰 일 맡겨주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의 이력도 세상의 관점에서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성공을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하나님안에서 신실하게 섬김으로 하나님이 운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열매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인도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있어야 다음 일을 맡기지요.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오이코스 리더다. 오이코스에서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주님을 섬기면서 오이코스에서 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안에서 빚어지고 삶이 회복되어지고 잃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저들이 하나님안에서 자라나는 것 없이 여러분이 목회한다고 되어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고 큰 일만을 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주인의 신임을 얻어서 그 큰 가정을 다스립니다.

그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합니다.

요셉의 답변을 보세요. 주인이 이 가정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겼지만 당신은 맡기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하는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까지도 맡기지요.

 

나중에 그 일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갑니다.

성경에 보면 감옥만 해도 왕의 특별한 사면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감옥입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도 요셉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았습니다.

신실하게 섬겨서 간수장이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들어왔고 꿈을 꾸었고 요셉에 해석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가게 되면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알 티 킨들 목사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되 가장 마지막 단계가 무엇이냐면 스스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이 마지막 단계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에 2년 동안 더 감옥에 있었던 이유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가면 자기를 부탁한다고 청탁한 것을 보면 아직도 요셉이 자기 스스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 남아있었던 증거입니다. 그것을 다루기 위해서 2년을 더 감옥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그의 노력에 상관없이 움직이십니다.

요셉의 노력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즉 바로가 두 차례나 꿈을 꿉니다.

바로가 의미가 있는 꿈이라고 인식했지요.

애굽의 모든 술객들에게 꿈을 해석하라고 했지요. 그러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해석 자체를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마음에 드는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서서 꿈을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꿈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총리로 삼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제가 언급한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이 하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뭘 말하려고 하느냐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환경을 움직이십니다.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분당에 3층에 있을 때 5년째 될 때 지하 전체를 구입해서 내려왔습니다.

실평수가 42평 분양평수가 60평이었는데 지하는 실평수가 150평 분양평수가 200평 되는 것을 구입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하가 비워있었어요. 시장용도로 허가가 난 것인데 바로 맞은편이 이마트가 있어서 비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초기 때부터 그것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입하려고 헌금했는데 1200만원 정도 마련되었다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때에 포도나무 지체 가운데 한분이 부동산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목사님 이것 3억은 건축비도 안됩니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돈을 빌려서라도 사놓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는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일년인가 지났어요.

그동안 월세는 계속 나가서 모아놓은 건축비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어요. 그 지하를 사라고 선교회 소유로 사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교회 재정도 없었어요. 한달에 100만원도 남지 않았고 선교회 재정도 100만원도 안남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몇 주간이 지났어요.

그랬는데 일층이 있는 부동산이 올라와서 목사님 지하로 안가시렵니까? 어떤 분이 3층 전체를 입시학원하려고 사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내야 하는데 그분들이 생각하기를 교회가 지하로 가면 될 것 같더래요. 지하로 보낼 계획을 자기들끼리 세우고 우리에게 한 마디로 하지 않고 건설사에 찾아간 것입니다. 건설사에서 지어서 분양 안된 상가들의 리스트를 뽑아가지고 가서 그분들에게 이렇게 분양 안된 것이 많은데 분양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데요. 그래서 2억에 분양가를 정해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한달 내에 돈을 달라고 했는데 3-4개월에 걸쳐 상환해도 좋다고 했어요.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사이에 하나님이 일하셔서 일억이 사라졌어요. 결국 그것 185백에 샀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환경은 하나님의 때의 전령입니다.

그러니까 길이 열린다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장도 없고 길이 닫힌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어요. 그래서 모든 면에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생각했습니다.

환경 하나만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황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