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방법
막12:27-30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동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내적감동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외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첫째 둘째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서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의상 첫째 둘째로 하면서 생각하겠습니다.
1.육성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람들의 귀에 들리는 육성으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예수님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 3장 16-17절입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또한 변화산에서도 하늘에서 육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세 제자가 모두 다 들었습니다.
마17장 1-5절에 있습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특별히 5절입니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그리고 아까 읽은 본문 말씀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거기를 보아도 하늘로서 음성이 들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삶 속에 여러 차례 하나님이 육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을 향해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갈 때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셔서 사람들의 귀에 들리는 육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육성으로 말씀하신 여러 기록들이 잇습니다.
그런데 육성으로 말씀하실 때 어떤 때는 본인만 알아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듣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겟세마네에서 육성으로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그 음성을 또렷하게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레가 울었다 천둥이 쳤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말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예수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가는 도중에 예수님이 영광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는데 그 영광의 빛 앞에 말에서 떨어집니다. 소리를 들었는데 바울은 그 음성을 또렷하게 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소리를 들었어도 무슨 말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물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는데 예수님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요한도 들었음을 알 수 있어요. 또렷하게.
주위에 있는 자들도.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들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말씀하실 때는 세 제자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또렷하게 들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가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육성으로 말씀하실 뿐아니라 또한 말씀하실 때 이런 일들이 나타났던 것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두려움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하셨지요. 하나님이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되 그들이 친히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지 말도록 요청하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도록 요청합니다. 그만큼 두려웠습니다.
출20:18-19절입니다.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육성으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들은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는데 자기 영혼이 걸레조각 찢어지듯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두려워서.
프란시스 쉐퍼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도 정확하게 하나님이 육성으로 말씀하신 것을 들었던 사건을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육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달라스 신학교에서 9년간 구약학 교수로 있었던 잭 디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성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그 사람 생애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즉 육성은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이 매우 크고 또한 그 일을 위해 고난이 매우 크기에 육성으로 말씀하심으로서 그에게 인내할 수 있는 확신과 또한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육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2.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가 환상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구약을 보면 내가 선지자들에게는 환상으로 말하기도 하고 이런 구절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 보면 많은 경우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그렇습니다.
요엘서 2장 28-29절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가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하면서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합니다.
말세에는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인용합니다.
말세는 예수님 초림부터 재림까지입니다.
지금은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예수믿는 모든 자들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나타나는 현상은 저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되 때로는 환상을 통해서 들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정확하게 성경적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사도행전 10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이 식사를 준비할 때 옥상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중에 갑자기 환상이 보입니다. 각종 짐승이 들어있는 큰 보자기 환상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먹지 못할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 들어있었지요.
잡아먹으라고 합니다. 부정한 것들이어서 못먹겠다고 하지요.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감히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
그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지요.
그때 하나님의 성령이 저들을 내가 보냈으니 같이 가라고하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간 곳에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오순절날 임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환상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환상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맨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베드로였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리도록 쓰임받은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베드로였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환상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이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시기 위해 환상을 사용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부 사람들은 오늘날은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 있는데 무슨 환상이 필요하냐 이 말씀을 잘 연구해서 순종하면 되지 환상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실 것은 베드로 시대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약성경구절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셨던 성경도 구약성경이고 베드로의 성경도 구약성경인데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될 것이 이미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암9:11-12절이고 이사야 하반부를 보아도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에 대해 성경에 나와있는 구절들을 보게 하셔서 연구해서 말씀하실 수 있었는데 왜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없어서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환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셋째 환상은 매주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게 대한 편견이 심했을 것입니다.
주여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베드로의 고백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여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어가도 유대인들은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만큼 장벽이 컸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로서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편견을 깨뜨리고 이방인의 집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은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의 그림은 환상의 한 부분입니다.
3.이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상은 환상과 비슷합니다.
환상은 우리가 텔레비전을 볼 때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면 이상은 내가 그 속에 들어가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비몽사몽이라고 번역된 말 자기가 직접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상 3장을 보면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는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상3:10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세 번씩이나 불렀습니다. 육성으로 부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엘리가 부른 줄로 알았지요.
그런데 그 경우 엘리는 못 들었습니다. 사무엘만 들었습니다.
세 번째 엘리의 말을 듣고 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3:10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나님이 그곳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이것을 15절에서 이상이라고 표현합니다.
15절입니다.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처럼 이상은 자기가 직접 거기에 활동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4.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꿈을 꿉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하루밤에도 수십번의 꿈을 꾼다고 합니다. 우리가 잊어버려서 그러지.
내 이야기는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이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꿈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인데 아이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젊은 사람들만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만 꿈을 꾼다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바꾸어도 되지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꿈을 통해서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다니엘이나 요셉같은 경우를 보면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 꿈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총리로서 이방나라를 섬기면서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행함으로 나라를 올바로 다스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약시대로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의 대표적인 예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주된 통로가 꿈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못 들었다면 결과는 매우 심각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가 정혼했는데 임신한 것이 발견되어졌어요.
우리나라는 약혼과 결혼이 두 가지가 있는데 유대나라에는 약혼과 결혼 사이에 정혼이 있습니다. 정혼은 결혼과 법적으로 똑같습니다.
그래서 꿈에 천사를 보내서 하나님이 네 아내라고 합니다. 네 아내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요.
법적으로는 결혼한 것과 같았어요. 그러나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정혼은 뭐냐?
정혼하고 대략 1년 동안 남자는 신부를 데려올 준비를 하고 신부는 자신이 정결한 것을 증명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임신한 것이 발견되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 기간 동안에 임신한 것이 발견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돌로 쳐 죽이려 하지 않고 끊으려고 했지요.
그때 꿈에 하나님이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꿈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실 일을 말씀하시면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까 그때에도 천사를 보내서 꿈에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에 애굽에 내려갔을 때 꿈에 헤롯에 죽었으니까 돌아가라고 합니다.
돌아가는데 아켈라오가 잔인한 사람이라 꿈에 피해서 나사렛 지역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핵심적인 중요한 순간마다 요셉에게 말씀하시되 꿈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꿈입니다. 모든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또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 오이코스 리더모임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이 가정 사정상 못오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못온다고 전화를 했어요. 그러면서 제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꿈을 꾸었는데 교회가 예배드리는 사람이 적더라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거기 있으면서 혼자서 울고 있더래요. 목사님은 피곤하다고 하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더래요.
예배드리러 가자고 해도 사람들이 갈 생각을 안하더랍니다.
또 다른 오이코스에서도 꿈을 꾸었는데 물가에서 다 놀고 있더랍니다.
예배드리러 갈 시간인데 갈 생각은 안하고 놀고만 있더래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 꿈의 의미가 있는지 물어왔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 중에 하나님이 중보기도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정확하게 그런 상태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건 다른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는 무엇에만 초점이 있는가 하면 보고 듣는데만 초점이 있습니다.
‘너 보았나 들었니 그것도 못들어 나는 보는데’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듣고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서 순종하는데 두지 않고 듣고 보는데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건 내적감동을 통해서건 환상을 통해서건 꿈을 통해서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5.빛을 통해서도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설교자에게 빛이 임해있는 것을 보게 하신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시느냐?
하나님이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왜 보여주느냐?
초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죤 폴 잭슨목사님이 오셨지요.
그분은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귀한 예언사역자 중에 한 분입니다.
세계적으로 귀하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분 같은 경우에는 우리의 모든 사역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심을 보고 우리가 동참할 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만 해도 그렇지요. 아무나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해주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만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일이니까.
그분은 어떻게 하나님이 기도해주기를 원하는 사람을 알 수 있느냐?
그분 같은 경우에는 쭉 보고 있으면 빛이 임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분에게 빛이 임하고 또 저분에게 빛이 임하고...
이것은 빛이 임한 사람들만 하나님이 만지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그분에게 보이심으로 그 사역에 그분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빛이 임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행하심을 보여주시는 수단의 하나로 빛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천사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속적이라는 말은 하나님 없는 가치관입니다.
계몽주의 영향입니다. 우리는 물질주의적 합리주의적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신화의 세계로 격화시킵니다.
과학적인 법칙이나 원리로 증명되는 것이면 진리로 받아들이지만 그러한 공식으로 증명 안되면 무엇인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 그러면 우리의 삶에서 그런 일들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천사의 활동은 믿으나 오늘날 우리 삶에서 천사들이 활동할 것이라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때로는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빌립입니다.
행8장입니다.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사마리아 성에 수많은 남녀들이 예수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온 성에 가득할 정도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서 사막으로 가라고 합니다.
사막으로 가서 에디오피아 국고 맡은 내시에 복음을 전하고 영접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없지만 에디오피아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계기를 마련하게 하신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미국에 갈 때 보따리 두 개를 싸가지고 가는 것처럼 갔습니다.
미국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고요.
옛날에 개척교회 다닐 때 아는 장로님 한분이 LA 쪽으로 이민을 가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가지고 하룻밤만 재워주시면 다음날부터 직장을 잡아서 일하고 9월부터 공부하겠습니다.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전화번호 뿐이었습니다. 주소도 없었고요.
그리고 미국에서 아는 분들은 그분 뿐이었습니다.
LA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분이 안 보이는 것 있지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두렵고요.
제가 주소라도 있으면 택시라도 타고 가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동전도 없어서 전화도 걸 수도 없고요.
그렇게 있는데 뒤에서 어떤 분이 사모님 그러더라고요.
그런 말이 들렸어요. 그래서 속으로 목사님 사모님 인가보다 내가 부탁을 하면 전화 한 통화 해주시겠지 하고 뒤돌아섰는데 중년부부가 나란히 서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사를 하면서 사모님이시지요. 물었더니 상당히 당황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해요.
자기 성도중에 한 분이 한국에 갔다 돌아오는데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분들은 계속해서 자기 교회 이야기만 하는 거여요.
세워진지 2년 밖에 안되었는데 큰 건물을 지었고 성도가 200명이상 되고 전도사를 위해서 그동안 기도해왔다고 그러는 거여요.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장로님을 만났어요.
어디 있었느냐고 해요.
장로님은 자기 아들과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저도 못보고 그분도 저를 못보고 그래서 그분 장로님 댁에 갔어요.
결론을 말하자면 공항에서 만났던 목사님이 그 다음날로 저를 픽업해서 전도사로 부임을 했어요.
그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가서 그분이 왜 놀랐는지 알았어요.
왜 놀랐느냐면 사모님이라고 부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목사님은 사모님을 사모라고 절대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두 분이 와서 자기 성도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왠 젊은이가 와서 인사를 꾸벅하더니 사모님 아니냐고 묻는 것이지요.
그래서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누가 이야기했어요. 남자 목소리였고 한국말로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위가 깨진 것입니다.
이번 16차 컨퍼런스 때 그 목사님 부부가 잠깐 들렸다 가셨어요.
제 생각에는 천사가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7.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은사들 중에 예언의 은사라든가 방언과 통역의 은사라든가 치유의 은사라든가 지식의 말씀의 은사라든가 영분별의 은사라든가 이런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보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초자연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상대방이 아픈 자리에 똑같이 통증을 느끼게 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환경과 하나님의 음성을 살펴볼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알아차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씀하는 것을 보았다 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깨닫기 원하는 것은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 앞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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