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과 영적 분별력
신앙의 본질 - 하나님과 친밀함(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삶)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하는 삶이 필수. 따라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신앙의 첫 단추와 같습니다. 이 부분이 실제가 되어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가능함.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영적 분별력을 위해서도 필수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영적 분별력이 주어짐. 반대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영적 분별력이 가리어짐.
1.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은 자신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만을 구하는 삶을 말함.
예 - 광야 이스라엘
그들은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하였음(홍해, 먹을 것, 마실 물)
문제는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하나님과 친밀함이 전혀 열리지 않음.
실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불가능함.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엄청난 기적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친밀함이 전혀 열리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전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사모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능력을 경험해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친밀함은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하나님과 친밀함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기도에 대한 그들의 이해였음.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기도도 응답하심.
(시78:27-29) 27-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 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내리셨도다 28-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들의 거처에 두르셨으므로 29-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
(시106: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망과 부르짖는 그 모든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히3:7-19)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을 근심케 할 뿐 아니라, 분노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은 영적 분별력을 어둡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기도도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각성은 그것이 영적 분별력을 어둡게 만든다는 사실임. 다시 말해 영적 분별력이 주어지지 않음.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 ->40년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함. 그런데 심각한 점은 그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임.
(히3:9-10,17) 9-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7-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보세요, 그들에게 40년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음.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이 보여 지지 않았음. 그 결과 40년 동안 하나님을 분노케 했음. 그러면서 그 실실도 몰랐음. 그 사실을 알면서 반복적으로 분노케 할 하나님의 백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길을 몰랐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음.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의중과 마음임 ->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알 수 있음. 왜 자기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는지, 그곳에서 그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들 안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음.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음.
그럼 왜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이 계시되지 않았는가? 이점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의 무서운 점임. 시106편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음
(시106:13-15) 13-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영혼이 파리하게 되었다’ ->영혼이 서서히 점점 죽어갔다는 말임.
이처럼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영혼이 점점 죽어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하나님의 의중을 알려주시려 해도 그들이 알 수 없음.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적 분별력이 가리어진 가장 주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 머물러 있기 때문임. 그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 그리고 영적 분별력을 위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이켜야 할 절실한 필요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3.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과 영적 분별력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들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행사는 보여 주셨지만,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신29장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음.
(신29:2-5) 2-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보세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음. 즉,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보았음.
반면에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 분별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의중,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것은 불가능했음.
반면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다고 말하고 있음.
(시103:7)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여 주셨지만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 “행위”라고 번역된 단어는 “길”을 말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과 새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음.
그럼 왜 모세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길을 구했기 때문임.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기 때문.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왜 행사만 보여주셨는가? 그것들이 그들이 구한 전부였기 때문임.
4.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손을 구한다는 말과 대조적으로 사용
-하나님의 손을 구한다 -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나 능력과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것을 의미. 하나님을 더 알기 를, 더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모세의 삶에서 잘 볼 수 있음
(출애굽기 33:12-15) 12-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이 구절에서 모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길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 주셨는지 아시겠지요?
이 구절에서 보면 모세에게는 하나님 그분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했음. 그래서 하나님의 신임, 즉,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잃는 다는 것은 그에게 그의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심으로써, 자기가 그 길을 따라 행하여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총(신임) 가운데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어떠한 영적 승리, 복과 성공, 사역의 확장보다도 하나님 그분 자신이 소중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의 핵심입니다.
위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출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예배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모두 멸하기도 모세로부터 새롭게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대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줄 것이니 그들을 데리고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특히 천사를 앞서 보내어 그가 적들을 물리침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출33:1-3)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3-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올라가 기도하면서 위와 같이(출33:12-15) 기도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2-15) 12-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그러면서 모세가 기도한 내용을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그들을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시는 사막에 그대로 내어버려 두라고 간청합니다. 이 기도는 참으로 대단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그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2년 동안 광양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2년 동안 그들이 매일 먹은 것은 만나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리얼처럼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야채한번, 과일 한 번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목욕다운 목욕한 번 못했습니다. 집은 커녕 천막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정탐꾼을 보냈을 때 장정 2명이 포도송이를 메고 올 정도로 풍요로운 땅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가 적들을 물리침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 같았으면 당장 “할렐루야 아멘” 이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그들을 그곳에서 올려 보내지 말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그 놀라운 영적 승리, 하나님으로 인하여 주어진 그 풍요와 안정, 그리고 그 놀라운 사역의 확장 등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원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모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길을 알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고 하나님 계신 곳에 같이 있음으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5.친밀함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하나님과 친밀함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서는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필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 친밀함이 더 열리게 됨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에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 길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이 그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모세는 구약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 사대에 사는 우리들이 부러워할 만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33:9-11) 9-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기도와 삶의 자세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러한 친밀함을 허락하셨는지, 그가 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는지, 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사 곧바로 돌이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그에게 임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구절로 정리한 것을 볼 수 있음.
(시1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b-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
다윗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을 한 가지 소원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많은 소원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것 중에서 첫 번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유일한 한 가지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 대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업성공도 원하고 하나님도 더욱 알기 원하고, 목회도 성공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보기 원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누어진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중하면, 그 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어 질 때, 그 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부흥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의 부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출33장에서 볼 수 있음.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하심. 모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음. 하나님께서 출34장에서 영광으로 모세 앞에 임하심.
하나님의 부흥은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임재로 놀랍게 하나님의 백성을 방문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모세 앞에 자신을 나타내신 것처럼, 부흥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흥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부흥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으로 임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흥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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