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인본주의와 하나님의 유업
1.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
(창12:1-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첫째 -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그를 통해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시기 위한 부르심이었다.
둘째 - 아브라함을 향한 복은 단순히 아브라함 한 사람을 위한 복이 아니고, 그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복이기도 하다.
셋째 -하나님의 계획은 그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열방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2.인본주의는 절대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본주의는 거짓 신앙체계의 특징으로서 절대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의 복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장자는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 이고 차자는 사래에게서 난 이삭이었는데 이 아브라함의 복이 이스라엘 나라는 장자에게 유업이 되기에 당연히 이스마엘에게 유업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그 유업을 받았습니다.
왜 입니까? 갈4:22-28을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두 복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것은 거짓신앙체계(자기중심적인 삶)를 의미합니다. 율법주의, 인본주의를 가리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씨를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리고 난후 15년을 기다렸는데 사래에게서 자녀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팔래스틴의 관습을 따라 종에게 자녀를 나아가 대를 잊게 하는 관습대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자원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방법을 따라 태어난 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육체를 따라서 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3,29) 이 거짓신앙체계에서는 절대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삭 - 십자가의 복음(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약속을 따라 태어남.
성경은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 중심적 삶에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이 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의 자원, 목적, 방법을 따라 사는 삶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유업(생명의 풍성)이 주어집니다.
① 인본주의가 잠시 득세할 수 있습니다.
하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본주의가 잠시 득세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자원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아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갈4:23,29) 이렇게 이스마엘이 인본주의의 결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태어났을 때 하갈과 이스마엘은 15년 동안 득세했습니다.
오늘의 많은 목회자들까지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도록 하나님을 구하고 기다리기 보다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철저하게 하나님의 길을 추구하기보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자신들이 세워놓은 소정의 목표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은 것처럼 그들이 인간적인 열매라도 얻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가지고 득세하기 위함입니다.
②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는 수치의 기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가 하갈처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득세하는 반면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은 사라처럼 수치의 기간을 거찰 수 있습니다.
이사야54장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사54:1, 4)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질 자를 잉태치 못한 자, 구로치 못한 자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과거에 수치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잉태치 못한 자 구로치 못한 자가 바로 갈라디아서 4장에 의하면 “이삭”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는 자들, 십자가의 복음 가운데 서는 자들, 하나님 중심적인 삶 가운데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수치의 기간이 있습니다.
그럼 왜 그것이 수치의 기간입니까? 사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열매가 없기 때문에 수치의 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여러 해가 지나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중에는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생리적인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에 하갈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아 사라를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 기간을 거쳤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미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위에 앉아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왕의 보좌나 권력이 없이 오히려 그 수십 년 동안 사울에게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다윗에게는 수치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외 모세도 요셉도 바울도 다 이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 수치의 기간이 존재합니까? 그 기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시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치의 기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초대 왕 사울은 이 수치의 기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쉽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랜 기간의 수치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도 나중에 죄를 지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수치의 기간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간입니다. 시간만 지난다고 수치의 기간이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 기간에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55장에서 성경은 하나님을 간절히 구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또한 수치의 기간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자세를 버리는 기간입니다. 이사야54장에서 나오는 구로치 못한 자들, 잉태치 못한 자들은 사라처럼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수치를 당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임하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수치의 기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데 하나님은 아직 오시지 않고 그 대신 우리들을 다루시기 때문에 수치의 기간이 있습니다.
이 수치의 기간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베워야 하는 것은 무엇 보다 사라의 경우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세우고자 하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55장도 하나님을 구하되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55:6-9) 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리고 이 기간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서는 기간입니다. 이 수치의 기간을 통해서 우리는 빚어지고 준비되어집니다. 순종하난 것도 배우고, 기다리는 것도 배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배우고 신실하게 섬기는 것도 배우고, 세상과 사탄을 이기는 것도 배웁니다.
③인본주의에 유업이 주어진 적은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을 구하는 자들에게 수치의 기간은 때로 생각보다 길수도 있습니다. 모세, 다윗, 요셉, 바울 모두 긴 수치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알티 캔달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수치의 기간이 길 경우 거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드시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유업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그것이 사54장이 말하는 바입니다.
(사53:1-3) 1-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5절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유업이 인본주의에게는 즉 “이스마엘”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천 년 기독 역사 동안 하나님의 유업, 그 중에서도 회복과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유업이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반드시 “이삭”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났을 때처럼 인본주의의 득세는 무너질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잠시 득세할지 몰라도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임하실 때, “이스마엘‘의 득세는 반드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54장도 하나님께서 남편 되실 것이기 때문에(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기 때문에), 잉태치 못한 자(“이삭”)가 남편 있는 자(“이스마엘”) 보다 더 많은 자식이 있게 될 것이며,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의 자식들이 열방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하갈이 너무 가득합니다. 목회자들과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인간적인 그리고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들이 세워놓은 목표와 목적을 달성하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이루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혹은 성공한 목회자라고 칭찬을 받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간절히 구하며,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의 길만을 전하고 그 길에 서고자 사람들은 사역적인 면에서 별로 보잘 것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신문에 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교회는 매우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인본주의의 득세는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수단가 방법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서십시오. 하나님의 길만 전하고, 그 길에만 서십시오. 철저하게 이삭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임하실 것입니다.
(교회이야기)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어려움. 물론 하나님이 오시면 되지만,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임하실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길이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
하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들이 시작됨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짐.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가시기 시작하심.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들을 보이기 시작함.
그럼에도 사역적인 부분에서는 별 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
그러기에 명절에 친인척을 만나면 맨 처음 묻는 말 ->교회는 부흥되었니? 이 질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수치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사54: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3.인본주의의 다양한 형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그의 책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에서 그 몇 가지 예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라고”하시는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산다.
②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자기와 자기의 입지를 먼저 챙긴다.
③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스스로 높인다.
④하나님은 자기 목숨을 잃으라고(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라)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구원코자(우리가 가진 것을 움켜쥐려고)애쓴다.
⑤하나님은 주님께서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히 조종하여 봉사하게 만든다.
어떤 때는 목회자들이 교회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기보다 성도들로 하여금 헌금하도록 여러 성령구절들과 강사들을 통해 그들을 회유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며 하나님의 길로 조정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기보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잘 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 안에서 자라는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 팽배한 인본주의적인 방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4.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시81:10-13절은 말합니다.
10-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13-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먼저 이 구절은 하나님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우리가 목표를 크게 가지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시리라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전혀 그러한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서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다음 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구하여 입을 크게 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채우시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구하지 않자, 그들은 인본주의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을 넓게 열어 하나님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저들이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도록 내어버려두셨습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제시해 주시기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방법대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청종하며 하나님의 길에 행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임의대로 즉 인본주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구했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출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다윗도 그랬습니다.
(시25:1, 4-5)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4-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그 외 하나님과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속히 모든 거짓 신앙체계가 파괴되고, 하나님의 모든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과 신앙의 본질 위에 세워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그 결과 하나님의 부흥이 이 땅에 속히 이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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