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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올바른 신앙 - 하나님 중심적 ->3가지 특징 ①하나님 자원 ②하나님 목적 ③하나님 방법(길)을 따라 사는 것 ->이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침.
반면 타락의 본질 ->자기중심적인 삶 ->4가지 특징 ①자기 자원 ②자기 목적 ③자기 방법(길)을 따라 사는 것 ->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한다 할지라도 우리 목적을 위해 살아가면 지극히 타라가한 신앙임 -> 이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걷힘.
1.기복신앙의 정의
우리는 복을 강조하면 기복신앙이라고 말함.
그러나 제가 말하는 기복신앙은 복에 대하여 강조를 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기복신앙이 될 수 있음.
기복신앙?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 삶을 의미함.
우리의 참된 신앙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 즉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목적된 삶을 말함.
릭 워렌 목사 -그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 지려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우리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라 말함.
그런데 우리 신앙이 탈락하면 -> 자기목적을 위해 살게 되고, 하나님은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기복신앙입니다.
2.기복신앙의 예
예레미야 시대는 시대말 적인 상황
*참 신앙이 자취를 감추고 거짓신앙이 전면에 타나난 시대.
*영적으로 지극히 타락하여 실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시대.(예루살렘은 폐허, 예루살렘 정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감)
하나님은 그 시대의 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보세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렇게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인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는 하나님께 대한 큰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렘6:20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그 당시 시바와 원방에까지 가서 특별한 유향과 향품을 사다가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기 시바는 -> 에티오피아나 예멘이며, 원방은 많은 학자들이 인도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의 그러한 희생을 받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렘6:12-20)
이것이 바로 거짓신앙체계의 실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흑과 백처럼 달랐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분별력이 가리어져서 하나님의 다림줄을 전혀 모른 채 자기들 나름대로의 신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총체적으로 거짓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본인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참다운 선지자로 인정받고, 존경받은 자들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짓을 행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행한 거짓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김
당시상황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 ->하나님의 임재가 걷힘 ->어떤 영적 승리도 없음.
*엄청난 죄의 억압
*우상숭배가 가득, 가정들이 파괴됨, 온각 세상이 그들의 삶속에 가득함,
*하나님에 대한 말은 많이 하지만 하나님의 실재는 철저히 걷힘
->이런 심각한 상태인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김.
또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평화가 없는데 “평화, 평화”를 외쳤다는 것임.
평화 ->(히) “샬롬” ->단순한 마음의 화평이 아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승리와 안식과 생명이 넘치는 것을 말함.
그런데 저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으니 그러한 하나님의 평회가 있을 리 만무한데 평화를 외쳤으니 그것이 곧 거짓이라는 것임.
그러면 왜? 평화가 없는데 평화를 외쳤는가? 한마디로 탐심 때문에, 환심을 사기 위하여, 인기를 위하여, 사역의 확장을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는 그토록 심각한데도, 그 모든 일들이 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평화, 축복을 외친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의 메시지를 듣기 원했습니까? 그것 역시 탐심 때문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목적과 목표와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목적과 목표와 계획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많은 제사와 희생을 드렸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목적과 목표와 계획이 전혀 내려지지 않습니다. 벌겋게 살아있음.
사실 그 많은 희생과 제사를 드린 이유도 - 자기의 목적, 목표를 이루어 달라는 것이었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자기들의 그 목적과 목표를 잘되게 해준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듣기 원했음. ->거짓 신앙체계인 기복신앙임.
예) 큰 재벌의 외동아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실재가 거의 걷혀 있음. ->영적 승리는 불가능
*죄의 억압, 영적 억압, 세상의 온갖 죄가 가득함.
*중직자, 목회자들의 가정이 깨어짐
*성도들의 삶속에 음란과 사술이 가득함.
오늘 성도들 또한 예레미야 시대와 흡사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관심 ->자신의 문제 해결, 축복 받는 것, 자녀들이 잘 되는 것, 자기들의 기도 응답받는 것, 치유 받는 것뿐임.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존재를 다하여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의중을 알기 원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원하는 것 등은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전혀 관심 밖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기 원하는 것은 당연히 축복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전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목회자들은 더욱 축복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심각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3.성경이 말하는 복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구절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물론 성경은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이렇습니다.
1)하나님이 복이십니다.
성경에 말하는 복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신30:19-20) 19-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를 그 앞에 두었으니,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생명이시라고 하셨습니다.
2)황금률
이 부분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리고 전반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황금률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대하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슥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3)황금률의 의미
하나님과 함께한다. 하나님을 존중한다. 하나님께 돌아간다. 하나님을 찾는다 는 말은 다 같은 의미임. 반대로 하나님을 버린다. 멸시한다. 하나님을 떠난다 는 말도 같은 뜻임.
그런데 문제는 하님과 함께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며, 하나님을 버린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우리 생각과 관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실제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떠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아야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바입니다.
*안식일, 월삭, 절기, 대회, 살진 짐승, 기도, 금식 ->그러니 자기들은 당연히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했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멸시하여 멀리 떠나갔다고 말씀하심.(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엘리 제사자의 경우
아들의 범죄와 악을 행하였을 때 안 된다고 타일렀음(삼상2:22-25)
나중에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보다 법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음.
그렇다면 엘 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인가? 아니면 멸시한 자인가?
그러나 위의 구절에 의하면 엘리를 하나님을 멸시한 자의 편에 두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 관점은 철저하게 다릅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한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말의 의미는? 신앙의 본질에서 떠난 것을 말함.
이사야 시대 수많은 의식이 있었음. 그런데 호4:1,6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삶에서 떠나 있었음.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을 멸시하여 멀리 떠나갔다고 말씀하심.
예레미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도 많은 의식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성전에 나가서 꼬박꼬박 제사를 드렸습니다(렘7장). 그러나 그들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2:13)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고, 심지어 새벽기도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또 교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한다 할지라도, 신아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이 모두가 다 같은 의미인데, 그것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전 존재로 사랑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잘못 생각합니다.(사업 잘되어 예배에 빠짐, 십일조도 안냄, 기도회에도 빠짐 그러다 어려워짐, 이때 가서 예전처럼 예배, 헌금, 기도 하는 것이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함)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돌아오는 것은 이것이 아님, 만약 이것이 돌아오는 것이라면 호세아시대, 예레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필요가 전혀 없었음.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는 것을 말함.
이것을 우리는 호6;1, 3절에서 확실히 알 수 있음.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6: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호소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면서 3절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보세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황금률의 내용처럼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오시겠다고 말씀하심.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을 아침이 되면 해가 뜨듯이 반드시 그들에게 임하시겠다고 표현하고 있음.
하나님을 찾는 것도 정확하게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음.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이해함.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함.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은 전혀 그러한 것을 의미하지 않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그 분 자신을 간절히 찾는 것을 말함. 그래서 대하15;2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나란히 같은 의미로 말씀하신 것임.
(대하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그리고 시편 24:6절에서 이를 명확히 보여줌
(시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히브리 문학에는 평행법이 라는 것이 있는데, 그 의미를 보다 풍요롭게 표현하기 위해 정확하게 같은 말을 두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구하는 것임을 명백히 볼 수 있음.
4)신앙의 본질과 복
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 복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와 함께하심. 즉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전존재로 사랑하는 삶 가운데 있을 때 우리와 함께하심.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이 우리에게 넘침.
하나님의 평화(샬롬), 도우심, 인도, 기도 응답, 친밀함, 세상과 죄를 이기는 능력, 모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넘침, 이것이 상경이 말하는 복임.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을 벌릴 때,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심. 즉,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날 때,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면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우리에게 고갈됨. 그것이 하나님의 실제적 도움, 은혜, 안식, 세상과 죄를 이기는 능력이든지, 모든 생명이 걷힘. 하나님 그분이 생명이시니까요.
신30장에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내가 너희 앞에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을 놓았으니 너와 너희 자손을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셨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두 가지 중 복과 생명보다 사망과 저주를 택할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임. 그러나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또 알건 모르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것이 정확하게 사망과 저주를 택하는 것임, 그것이 정확하게 예레미야 시대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실제가 거의 없음.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소멸되어 있음. 영적인 태는 철저하게 닫혀 있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이나 샬롬은 찾아볼 수 없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그 이유가 선명히 보이십니까?
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생명(복)입니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생명이요, 평안임. 재앙과 저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아님. 그래서 신30장에서도 생명을 택하라고 하심.
에덴동산을 보아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삶인 가를 알 수 있음. 탕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는 풍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 곧 바로 그를 찾아온 것은 생명의 고갈이었음.
특히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평안이요 소망이라고 하신 이 말씀을 예레미야서에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함. 하나님은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평안(샬롬)과 생명 가운데 그들이 거하기를 원하셨음.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되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짖고 계십니다.
(렘29:12-14)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음. 왜냐하면 예레미야서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도움을 얻으려고 하나님께 많은 희생과 제사를 드렸을지 모르지만 보통 때는 신앙의 본질을 떠나 임의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나오자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여러분 말씀하셨기 때문임.
(렘2: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렘7: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렘11:11,14) 11-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14-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렘14: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삶에서 떠나 있었다는 것임.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살기 위하여,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인 생명과 평강과 소망이 그들의 삶에 넘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을 구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마음을 다하여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13절에서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셨고, 호세아6:3에서도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되 힘써 하나님 알기를 구하라고 하셨음.
그리고 대하15장은 아사왕 시절에 이스라엘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자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5-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예레미야 29장의 이 말씀은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짖음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생명이요 샬롬임. 저주와 사망이 아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 위하여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삶으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인 생명과 샬롬이 우리 삶속에 넘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간절히 찾아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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