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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영적분별력

09.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영적 분별력

by 오용주목사 2016. 9. 16.

09.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영적 분별력

신6:4-5



우리의 신앙

1.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1)하나님을 아는 것

  2)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2.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전 존재로 동참하는 것

 1)전적인 순종

 2)전적인 신뢰

->PLO의 삶


하나님은 우리를 친밀한 교제로 부르셨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지난주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영적 분별력에 대하여 살펴보았음.

오늘->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영적 분별력에 대하여 살펴봄.


성경에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우리가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신6:4-5)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막12:28-30)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문제->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제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임.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왜곡된 이해

가장 대표적인 것 ->거짓 신앙체계인 율법주의적인 이해임.

율법주의 -> 의식이 본질을 대체해 버린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율법주의적인 이해에서는 의식을 많이 하고 잘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함.


예)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안식일, 월삭, 절기, 대회, 많은 희생을 드림, 수송아지 숫염소, 어린양등 살진 짐승을 무수히 드림. 기도, 금식했음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것임.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많은 예배와 희생과 헌신과 기도를 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

이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것이 관점의 차이임. 영적 분별력의 문제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의미조차도 몰랐음. 그들은 그 말을 자기들 나름대로 왜곡되게 이해했음.


물론 신명기6장을 인용하면서 설교도 했을 것이고, 그 계명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들을 때 조금도 거부감이 없었을 것임. 아니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동의 했을 것임. 그러면서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임.


그럼 당시 사람들이 지능이 떨어져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을까요? 아님 성경적 지식이 모자라서 그렇습니까?  아님. 이것은 지능이나 성경적 지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님. 영적 분별력과 관련된 문제임.


바리새인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것임 ->예수님의 평가는?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하심.

(요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른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음.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이 구절을 몰랐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도 아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무슨 뜻인지 몰랐다는 말임.


이사야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님시대 바리새인들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 ->의식 잘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음.


오늘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대부분 다 사랑한다고 대답할 것임. 이유? 교인의 7대 의무(의식)를 잘하니까. 그러면 바리새인들이 훨씬 사랑하였음. 오늘 우리도 의식 잘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율법주의 가치관이 팽배함.


2.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우리의 존재를 다하여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시작됨. 아내나 남편, 친구를 사랑하는 경우도 그렇듯이 한 인격체를 사랑하는 것 -> 어떠한 행동 이전에 항상 마음에서 시작 됨,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것 ->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와 유일한 주인과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것을 하는 것으로, 한 마디로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것을 말함.


반면 우리가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지 않으면 즉,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구세주요, 주인이요, 생명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의식과 헌신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


뿐만 아니라 우상 또한 우리 마음에 있음

(겔14:3-4)

3-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4-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성경에서는 나누어진 마음이 우상숭배임. 그래서 성경에 의하면 세상 사랑이 영적인 간음이요, 탐심이 우상숭배임.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3.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요 유일한 주인이요 생명이 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요 유일한 주인이요 생명이 되시는 삶임.

여 중요한 단어는 “유일한”단어임.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아니면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가 아님.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 아니면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 아님.


다윗의 예)

시18:1에서 여호와를 자신의 힘이라고 고백함.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당연히 하나님을 자신의 힘이라고 고백함.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 되려면 하나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힘이 되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전혀 힘이 아님.

다윗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온 나라를 동원해서 찾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주변에 있는 작은 군사나 친척이나 친구 등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자기의 힘으로 삼았음.

우리는 돈이 없으면 힘이 빠짐 ->하나님이 힘이 아님.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 ->하나님이 전혀 힘이 아님.

하나님만 나의 힘 되는 삶을 살면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


우리는 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함 ->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반드시 같이 가야하는 것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같이 가야함.


우리는 하나님도, 나도 기쁘게 하기를 원함 ->그러니 나를 기쁘게 하는 범위 내에서만 순종함 ->전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님.


하나님 평가를 소중히 여긴다하면서 사람의 평가도 소중히 여김->전혀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님. 그러면서 의식이 많으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함.


4.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한다는 것 ->다른 말로 표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

예수님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밭에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마13:44-46) 비유에서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라하심.

진주, 보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왕 되신 예수님을 가리킴.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 -> 주님

하나님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함 ->놀라운 생명이 있음


5.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

렘2장에서 다음 공식이 성립됨을 발견


신앙의 본질=하나님 중심적 삶=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하나님을 경외함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중심적 삶(하나님 목적, 자원, 방법)을 살게 되어있음.


또 하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게 되어있음.

신앙이 타락 ->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함 -> 하나님 안 사랑하는 것임.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됨.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게 됨.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이 되려면 우리가 내려져야 함.


(막14:26-27,33)

예수님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가 죽는 것(목적, 탐심, 소유권, 침착, 선호하는 바.. 다 죽으라는 것)


미워하지 아니하면->하나님의 사랑과 이들에 대한 사랑을 비교해 볼 때 이 사랑이 미움이 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벧전3장 - 아내를 사랑하지 목하면 기도가 막힌다 말씀함.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소유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양도 하라는 것. 원래 하나님의 것.

그런데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떠나가는 것을 감수하기 까지 가르쳤는가? 왜? 참다운 신앙, 주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무엇인가 알게 하기 위하여, 여기에 생명이 있음.


하나님이 주인이 되려면 우리가 내려져야 함. 우리가 내려져야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 수 있음.


우리 신앙은 실제다.

우리는 예배에 나와서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 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통장에서 5.000만원 헌금해 ->쉽지 않음. 신앙은 실제임.


신앙이 실제가 되려면 우리의 것이 내려져야함.

우리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자신, 기족, 소유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이러한 부분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실질적으로 내려지지 않으면 그것은 전혀 하나님이 주인인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요, 왕이라고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친다 할지라도 그 경우 주인과 왕은 실제로는 자신이기 때문임. 그것은 전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난 삶임. 따라서 거기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이 있을 수 없음. 하나님의 지키심. 인도하심, 도우심, 함께하심이 없음.


이제 이사야, 예레미야, 예수님시대 바리새인들, 그들이 왜 그 많은 희생과 헌신과 예배를 드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버렸다고 하셨는가?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의 주인, 왕이라 하면서 실제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혀 내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개인적인 야망, 명예욕, 탐심, 세상 사랑이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그들의 실제적인 주인은 그들 자신이었음.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떠나 있었음.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았음. 신앙의 본질 ->하나님을 아는 것, 사랑하는 것으로 이 둘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 하나님을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음.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게 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