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
히3:9-10, 17
신앙생활
1.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1)하나님을 아는 것(하나님에 관해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것)
2)하나님을 사랑하는 것(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구세주, 주인, 생명)
핵심-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2.하나님의 행하심을 온 삶읋 동참
1)온전한 순종
2)온전한 신뢰
핵심 - P.L.O의 삶(동역자의 삶)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무엇인가 알려면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아닌 것을 살펴보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이란 자신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만을 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했습니다.
홍해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먹을 것이 없을땐 먹을 것을 구했으며,
마실물이 없을땐 마실물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구한 전부였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러한 기도는 너무나 당연한 기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이런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성경에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신앙의 본질로의 전환된 토대위에서 구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그분만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요 목표인 이러한 토대위에서 구해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에는 상관없이 오로지 내 문제
에만 초점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며 부르짖는 그들은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시78:27-29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같은 나는 새라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들리셨도다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되로 주셨도다”
시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니깐 자신들이 하나님을 근심케 할뿐 아니라 분노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히3:9-10, 17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새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서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40년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그들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주위에 있던 몇 사람 빼놓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길이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행사를 본 동일한 40년동안 하나님을 본노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도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반복적으로 본노케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하나님의 백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길이란 하나님의 의중과 마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만 구한다보니 하나님의 의중과 길을 전혀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셨는지, 그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굉야에서 그들 안에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이 가능한데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하나님과 천혀 친밀함이 열리지 않으니 하나님의 길을 알수도 없고 그러니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삶은 전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왜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이 계시되지 않았을까요?
이점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무서운 점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하나님과 친밀함이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편106편에서 이 부분을 잘 볼수 있습니다.
시106:13-15
13-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고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셨도다
15-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여기서 ‘그 영혼이 파리하게 되었다’는 말은 그 영혼이 서서히 점점 죽어갔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점점 죽어가니 하나님께서 의중을 알려주시려해도 알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손을 구하면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가 주어지지 않음, 그러니 하나님의 길, 의중, 목적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는 그 길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시103:7-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행사(능력의 역사)르 보여주셨지만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역시 “행위”라고 번역된 단어는 “길”을 말합니다.
그럼 왜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길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행사만을 보여주셨습니까? 그것들이 그들이 구한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처지와 필요를 따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역사만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행사들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지만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 자신은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기도를 보세요. 어떤 성도들은 매우 많이 기도합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이 구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광야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필요와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과 역사만을 구할 따름입니다.
때로는 그러한 기도가 응답을 받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는 전혀 친밀함이 없어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가운데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을 전혀 몰라요.
하나님이 왜 이러한 환경을 주셨는지...
왜 나를 부르셨는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광야이스라엘 | 시106:13-15 | 행사를 보고도 멸망 ->하나님의 손을 구함 |
이사야 | 사:10-17 | 당시 많은 예배, 희생, 기도를 받지 않으심. 왜? 기복신앙이 가득함. |
예레미야 | 6:9-12 | 당시 많은 예배를 드리고 원방과 시바에서 향품과 유향을 드림 ->그럼에도 심판을 말씀함. 이유 1)하나님을 떠나있음 2)제사의 댓가로 필요한 것을 얻기위함(기복신앙) |
바리새인 오병이어이후 사건 | 요8:44 요6: |
|
오늘날 |
| 기복신앙이 가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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