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막12:28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고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 신앙의 본질, 핵심, 모든 것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로 가장큰 계명임을 다 알고 있음.
문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많지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알려면 우리 삶에 나타난 열매만 보아도 알 수 있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실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날 것이며, 하나님의 동행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의 삶속에 나타남으로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이웃이 알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 동행, 역사하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부족함이 없음.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3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것.
2.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과의 관계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
거짓신앙체계에서는 절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율법주의, 기복신앙, 인본주의에 빠져 있으면 절대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음.
대표-바리새인
이들은 안식일날 요리도 하지않고, 일도하지않고, 침을 뱉아도 비비지 않음, 밀을 비비면 타작이라고 생각.
십일조(선물의 십일조까지함), 소득의 일부분으로 구제하고, 613계명철저히 지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직업으로 생각함.
그러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함.
진실로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자들임,
당시 사두개인 - 모세오경만 믿음, 부활을 믿지 않음
그러나 바리새인 - 구약전체를 믿음, 부활을 믿음.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평가는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다고 하심.
왜? 거짓신앙체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음.
이사야1장 -얼마나 많은 희생과 제사를 드렸는지...그런데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함.
왜? 기복신앙이기때문, 즉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기복신앙, 율법주의, 인본주의에 빠지면 아무리 많은 희생과 헌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얼마나 기도가 많아요(새벽기도, 금식기도, 렐레이기도, 다니엘기도, 산상기도, 구국기도...)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기도가 자기목적을 위한 수단이됨.
심방따라다나면 복받는 다고 생각하고 따라다님.
교회성장도 자기 이름이 목적이 됨
심지어 기복신앙을 교회가 가르침 ->왜? 더 많이 헌신, 봉사, 헌금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의미부터 가리워져 있음.
그러니 이사야를 톱으로 켜죽이고, 바리새인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음.
거짓신앙에 빠지면 하나님이 수단이 되어지기 때문에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주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관계
동전의 양면과 같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것과 같음 ->이둘은 같이 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 -> 하나님을 개인적이고, 실재적인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함.
하나님이 개인적이고 실재적이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가질려면 하나님이 인격체 이심이 비춰져야함.
인격체이시라는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분이 비춰져야 합니다.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만남이 있어야합니다. 그 인격제이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합니다.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 -> 음성, 형용, 말씀이 거함.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실제적 교제가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함.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교제가 되지 않으니 열심히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함.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모든 것 되심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요, 목적이요,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능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자랑, 나의 의지, 내사는 이유, 내 항해의 바람,
예, 남편이 있는데 90%는 아내에게서 기쁨을 10%는 다른 여자에게서 기쁨을.. 허락하시겠어요?
이것을 모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출33장에서 볼 수 있음. 모세는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
출32장에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김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심 -> 모세의 기도로 뜻을 돌이켜 화를 내리지 않으심 ->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그 모습을 보고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저 깨뜨림 -> 그리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 레위 자손이 다 모세에게로 나아옴 ->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문에서 저 문으로 왕래하며 형제를, 친구를 이웃을 도륙하라 -> 그날에 삼천명이 죽이바 됨 ->이튿날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서 백성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치 않으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섬 ->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 ->33장 1-
내가 너희에게 주마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내사자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을 쫓아 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하심.
이 때 모세의 대답 33:15 “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한지 2년째 입니다. 그들이 먹는 것 만나(씨리얼), 목욕을 한번 못했어요, 옷, 신발을 갈아입지 못했어요, 이 광야에 비하면 가나안은 어떤 곳입니까? 두사람이 포도송이를 막대기에 매고 올정도로 풍요한 곳, 천국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금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가시지 않으면 모세도 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모세에게는 목숨보다, 평안함 보다, 사역보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많은 돈보다, 안락한 삶보다, 잘먹고 사는 보다, 심지어 사역의 확장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긴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소중히 여긴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러한 모세와 같은 자세를 몇 사람이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소중하다고 말로는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나안 땅이 더 소중하고, 사역의 성공이 더 소중하고, 사람의 평가가 더 소중하고, 평안한 삶이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고백한 시편 18:1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라고 고백한 다윗의 이 고백은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그의 유일한 힘이라는 고백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와 유일한 주인과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 -> 내가 주인이되는 것(아담)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주인이 되어야합니다.
1)나
마:16:24(막8:34, 눅9:2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는 장식용이 아님.
예수님 당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를 보면 아~~~죽으러 가는 구나생각함.
주님이 온전히 나의 주인이 되기위해서는 내가 죽어야합니다.
나의 목표, 목적, 계획, 꿈,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목적이 나의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2)가정(사람)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부모, 처자, 형제, 자매가 미음이 될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자기 욕심을 따라 사랑하게됨.
3)소유
눅14:33(마19:21)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의 집, 자동차, 예금통장....하나님이 원하시면 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말함.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1,2,3이 포기되어야 하나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그렇게 열심히 안식일을 지켰지만 자신, 사람, 돈이 내려지지 않음
자신, 사람의 평가가 내려지지 않음 -
마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하며 옷술을 크게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돈은 전혀 내려지지 않음.
마23:16 “화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 도다”
마23:25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주일지킴 -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
십일조 -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예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12단원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음
1.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다 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2.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완전히 순복해야만 한다.
3.우리는 하나님을 실질적이고 개인적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4.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통치권에 순복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바로 그것들을 수식하는 단어들입니다. 즉 존재를 다 걸고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통치권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자기가 원하는 만큼 사랑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에 순종하되 자기가 생각하기에 보기에 좋게 보이는 부분만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되 다른 것과 겸하여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사귐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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