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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과 친밀함

04. 하나님을 아는 것

by 오용주목사 2016. 9. 15.

04. 하나님을 아는 것

요17:3


하나님과 친밀함 그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사도요한은 요한복음10:10에서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여기 생명의 풍성함이란? 하나님의 임재, 은혜, 보호하심, 인도하심, 하나님의 능력..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이 풍성함을 우리가 언제,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양들이 목자로 인하여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언제 누리게 될까요? 그것은 목자와 바른관계속에서 목자의 인도를 받을 때 이러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 때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삶은 탕자와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늘 불안하고, 염려와 걱정이 끝이 없고, 갖가지 억압에 눌려있는 모습이 오늘의 우리의 현주소는 아닙니까?


다윗은 어떻게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윗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기를 열망하였습니다.

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그 전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여길 보십시오. 다윗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그의 오직 한 가지 구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원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많은 소원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이란 인격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라 말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바로 나와 똑 같은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 성령 하나님이 내가 이 세상에서 너희와 함께 하였듯이 똑 같이 그렇게 하실 거라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듯, 그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 핵심, 목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의중을 뜻을, 마음을, 길을, 행하심을 보시십니다.

이 때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1)우리에게 생명의 풍성함이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3)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되며(아브라함 믿음이 조금씩 자라감)

4)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스데반 행7:55절)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음

- 물리적 변화 ->나무가 의자로, 물질의 본질은 변화되지 않고, 모양만 변화)

- 화학적 변화 ->염산, 나트륨은 둘 다 독소입니다. 그러나 이 둘이 합하면 염화나트륨, 즉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전혀 새로운 물질인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 우리 삶에 생명의 풍성함도, 하나님의 의중을 모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도 살 수없고, 그러니 믿이 자라지도 않고, 또한 근본적으로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알면 이런 열매들이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하나님을 알기는 아는데 그 아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성경공부를 통하여 교리적으로, 이론 적으로 알면 하나님을 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우리 신앙에 치명타를 줍니다.

성경을 통해서 교리적으로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은 우리에게 중여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정표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길을 모르면 어떻게 목적지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길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목적지가 아니듯이,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은 이징표같습니다. 길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따라가면 우리의 목적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정표를 보고 나는 예수님을 이젠 다 안다라고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치관 -> 하나님에 관해서 알면 하나님을 안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해서 아는 앎의 특징은

어떠한 생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가 추구해야할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익까요?

주님에 관해서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에 관하여 안 주님을 이젠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경험적으로 알아야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합니다.

주님에 관해서 아는 것은 연구와 교육을 총해서 습득되는 반면 주님을 아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엡1: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 기도는 믿음과 사랑에서 뛰어난 에베소 교회를 위한 사도바울의 기도입니다(15절). 이 기도는 불신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무엇을 기도하느냐 -> 하나님을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라고 번역해야 더 옳습니다. 실제로 NIV 성경은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알기를 구해야 합니다.

다윗 -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바울 -고린도전서2: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빌3:7-8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이렇게 하나님을 알기를 열망할 때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중과 길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개인이 하나님과 알기를 열망하고 그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면 여러분 개개인의 비전을 보이시고,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면 교회의 비전을 보이실 것입니다.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는지

왜 보내셨는지, 왜 오게 하셨는지, 어디로 부르셨는지, 지금까지 왜 인도해 오셨는지, 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는지, 왜 이러한 아내, 남편, 자녀들을 만나게 하셨는지..그 하나님의 의중을 보이십니다. 이때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내 삶을 조정하고 동참할 때 이것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풍성한 삶, 하나님의 은혜, 인도, 도우심, 보호하심, 지키심의 풍성한 삶을 살게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믿음이 자라며,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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