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친밀함의 이해
요10:10/빌3:7-14
할렐루야!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도 여러분의 개개인과 가정과 직장, 사업, 일터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음성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가운데 나의 자원을 나의 자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원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복음위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신앙의 본질 가운데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세워가길 하나님께서 강력히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새해에는
주일오전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주일오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수요일에는 믿음에 의한 삶
금요성경공부를 통해서는 십자가에 의한 삶을
금요 다윗의 장막을 통해서는 중보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시대에 회복되길 강력히 바라시는 그러한 교회와 성도로 섬겨가길 원합니다.
오늘은 신년 첫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신앙에 가장 중요하며 핵심인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서 같이 나누면서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으로 세워져가길 소망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셨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사도요한은 요10:10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도 그분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여러분! 풍성이라고 하니 이 땅에서 좀더 낳은 삶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베드로, 그가 갈리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계속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고기를 잡아 얼마만큼은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고기잡이하다 그렇게 한평생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그의 삶을 주님께로 조정하고 주님을 따랐을때 그의 인생은 주님의 제자로써 30, 60, 100배의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베드로 처럼, 바울처럼, 주님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원함보다 더.....
그런데 문제는 주님은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우리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나의 삶을 돌아보면 풍성한 삶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내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 인도, 도우심, 임재, 지키심, 능력등을 우리의 삶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한 우리의 고백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200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수 있을 것인가, 주님안에 있는 그 풍성함을 우리가 어떻게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서 이 한해는 여러분의 삶에 이론이 아닌 실제적으로 풍성한 열매들이 맺혀지길 축복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할때 가능합니다.
그럼 성경이 말한 신앙생활을 살펴보기 전에 신앙생활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종교의식을 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 그래서 의식을 잘하면 신앙생활을 잘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식을 잘 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행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위한 수단입니다. 신앙생활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지 신앙생활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이 본질 이요, 의식은 그 본질을 담는 컵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사야 1장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절기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13-14절)
안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월삭(매달 첫날) 모든 대회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맥추감사절, 대강절, 사순절, 오순절 등과 같이 우링게 별로 알려지지 않는 절기까지 그들은 빼놓지 않고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11절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양, 수송아지, 어린양, 수염소 등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사야 58장이 의하면 그들은 정기적으로 온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배(절기)와 헌금(희생)과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예배와 헌금에 신물이 났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들이 기도하지만 듣지 않으시며, 그만은 의식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임재, 은혜, 보호하심은 거두어졌습니다. 심지어 그 모둔 의식들을 증오한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모든 모임들과 예배들은 하나님의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헛된 예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입니까? 그들에게는 의식은 가득했을지 모르지만 참 신앙생활인 신앙의 본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그러면 성경이 말한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1)성경이 말씀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관념속에 거하거나, 추상적인 분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게 이 땅에 오신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주님이 부활승천하시고 다른 보헤사 우리를 돕는 분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듯이 우리 또한 성령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동행하는 삶이 곧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참고)
복음 = 인격체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고전1:17-18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23-24“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복음 -> 십자가의 도 -> 십자가에 못밖힌 그리스도라(인격체이심)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말속에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하나님에 관하여 지식적으로, 교리적으로 아는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인신 하나님을 알고 실제적이고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임재)을 보는 것이 포함됩니다.
내가 한 사람과 친밀하다, 친하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음성을 듣고 아는 것이요, 또 그 사람을 보고서 아는 것이 실제 아는 것인 것 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광(형용)을 보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나의 기쁨, 나의 만족, 나의 행복, 나의 자랑, 나의 자부심, 나의 존재의 이유.. 즉 하나님을 알기를 열망하고 그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 나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는 삶, 이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목적인 삶을 살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제하시고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으로 채우기 시작하시며,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기 시작하시며, 주님 안에서의 풍성함이 하나씩 경험되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알기를 간정히 구해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요 우리의 불타는 열망이 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이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그의 시편27: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길 보십시오. 다윗은 평생동안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그의 오직 한가지 구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원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많은 소원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러한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내가 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여러분 이 말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약의 바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고린도전서2: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기보면 바울또 예수님을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3:7-10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1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비울의 소망과 열망을 보십시오. 빌립보서는 바울의 사역 말기에 로마 옥중에서 쓰여진 서신서입니다. 바울은 이 서신을 쓰기전에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차례 만났으며 삼층천까지 가서 사람의 언어로는 말할수 없는 것들을 보았고 그는 그의 모든 계시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받았으며 그의 손수건에만 닿아도 사람의 병들이 나을만큼 놀라운 성령의 역사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한 후에 주님을더욱 알기를 원하는 것을 그의 일관된 소원이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도 안될만큼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바울처럼, 마리아처럼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하고
주님의 의도, 의중을 알기 원하며
그분이 계신곳이 나 또한 같이 있기를 원하고
주님의 열망이 나의 열망이 되길 원하며
주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되길 원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나의 기뻐하는 것이 되길 소망하며
그분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길 원하며
그분의 일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리기를 원하며
나 주의 기쁨되길 원하는..
그래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한 신앙생활인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열망할 때 하나님께서 앞서 가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이때 믿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앞서 가심을 보이는 것이 비전인 것입니다.
비전은 내가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나가는 것이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말한 교제 가운데 있을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의중을, 뜻을, 길을 보이십니다.
개인이 하나님과 친밀함에 거하면 개인의 비전을 보이시고, 교회가 하나님과 친밀함에 거하면 교회의 비전을 보이십니다.
사도바울의 유일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함이 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의중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방인의 사도요, 터를 닦는 사도로 부르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비전이요, 푯대요, 바울이 있어야할 자리요, 나아가야할 방향이었습니다.
바울은 세계지도를 보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비전을 바라 봅니다. 이것은 바울개인의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앞에 바울은 똑바로 섰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할때 우리에게 주님의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이 풍성한 삶을 누렸기에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하면서 오고오는 후손들도 이러한 삶을 살기 원하였던 것을 봅니다.
(시 23:1)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 23:2) |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 23:3)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 23:4)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 23:5)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시 23:6) |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언제 이러한 부족함이없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을 할때 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이 신앙으로 돌아갈 때 주님은 주님의 행하심을, 의중, 의도, 뜻, 길을 보이십니다.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는지
왜 보내셨는지
왜 오게 하셨는지
어디로 부르셨는지
지금까지 왜 인도해 오셨는지
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는지
왜 이러한 아내, 남편, 자녀들을 만나게 하셨는지..
그 하나님의 의중을 보이십니다. 이때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내 삶을 조정하고,동참할 때 이것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풍성한 삶, 하나님의 은혜, 인도, 도우심, 보호하심, 지키심의 풍성한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이 한해도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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