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 2.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창6:1-9
오늘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만으로도 살 수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신앙의 실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교리적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님에 성육신에 대한 믿음, 속죄의 믿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재림에 대한 믿음 이 모든 것이 다 귀합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와 동행하시는 믿음이 없다면 내 삶은 안 바뀝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진정한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요즘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교회답지 않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을까요? 우리의 믿음이 여전히 교리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리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짓는 크고 작은 죄,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이러한 모든 죄들이 교리를 몰라서 짓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롬2:1절에 나오는 남을 판단하는 죄,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러분 이 판단의 죄를 우리가 수시로 습관적으로 짓는 죄인데 그런데 우리가 이 판단이 죄라는 것을 몰라서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판단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안 믿어서 그 죄를 짓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판단이 죄라는 것을 알고, 다 믿는데 그런데 왜 그 죄를 습관적으로 지을까요? 하나님과 동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9년도 교회가 집중하는 것이, 3.3.3.훈련과 묵상일기입니다. 여러분 왜 제가 이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는가하면?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들었습니다. 신앙의 본질, 십자가 복음, 하나님 얼굴을 구하는 삶....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들은 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3.3.3. 훈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훈련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입니다. 교리로만 알고 믿는 것을 실제로 살아보는 훈련입니다.
보세요. 교리로만 알았던 판단의 죄, 그런데 이제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24시간 내 곁에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런 내가 남을 쉽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1.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동행의 시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여러분 에녹이 65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짓습니다. 여러분 보통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이름을 짓습니까? 복된 이름, 축복의 이름을 짓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에녹을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 이름을 짓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이 사람이 죽을 때 반드시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어찌 보면 이 이름은 저주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런 저주의 이름을 짓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에녹은 그 이름을 짓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적 계시를 통하여 아이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짓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에녹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므두셀라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여 아이가 태어나가 그 이름으로 짓습니다. 그리고 늘 그 이름을 부릅니다. 므두셀라, 므두셀라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에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므두셀라를 통하여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가를 알고 에녹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았습니다.
사실 에녹, 므두셀라, 노아가 살던 시대는 하나님을 떠나 죄악이 관영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의 뜻을 위하여 자기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에녹,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뜻에 집중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을 수 있었던 것이고 노아는 아직 한 번도 비를 구경하지 못했지만 홍수심판을 준비하는 방주를 만들라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3.3.3.훈련이나, 묵상일기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보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이 아닌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합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닌 것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은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의 의미는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면 바리새인을 우리보다 훨씬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리새인들을 화있을찐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라고 책망합니다.
또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자게 뜻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한 말이 뭔 줄 아십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셨네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열심히 하는 곳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에는 하나님과 동행이란 말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일 뿐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행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담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같이 말도 되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어떻게 한다고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함으로 서는 것입니다. 말씀에 두려움으로 생명을 걸고 순종합니다.
존비비어 목사님이 지은 책 “무엇인 선인가?”라는 책에서 1980년대 미국 TV설교가로 가장 명성을 떨쳤던 목사님이 간통죄, 횡령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목사님을 면회가신이야기를 그 책에 썼습니다. 면회를 하면서 가장 궁금한 것, 언제부터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셨나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에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를 다 믿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경외 하는가 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향력 아래 있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가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나님 말씀에 영향력 아래 있게 되고 그래야 하나님과 동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모습이 성경 창19장에 나오는데 여러분 창19장 내용 다 아시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무라 성을 명하실 때 두 천사가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19: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9: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이 말씀에 대한 반응이 무엇입니까?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여러분은 이 둘 중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에 반응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아니면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장난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정성껏 드린다 할지라고 하나님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영향력을 받고 사는지?
김종환이란 가수가 부른 노래 중 ‘사랑을 위하여’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고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3.3.3훈련 중,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 영향력을 받고 순종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4. 하나님과 동행은 거룩한 삶입니다.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거룩이 무엇입니까? 구별된 것이 거룩입니다.
노아시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이 무엇입니까?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이 말은 오로지 관심과 가치가 땅에 것에만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염두에도 없고 하나님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고제하고 동행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오직 이 땅에 것에만 위해 살았다는 겁니다. 자기의 쾌락을 위해, 자기 목적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창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그런데 노아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는 것, 이것이 거룩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5.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근거
노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그것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타락한 본성을 따라 이 세상의 육체적 욕심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행하고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던 기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창6:8절에 나옵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하나님과 동행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히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살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마치기를 바랍니다.
6.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온갖 조롱과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했을 것입니다. 정신 나간 영감이라는 소리도 들었을 겁니다. 아니 자기만 하나님 잘 믿나? 비아냥하는 소리도 왜 안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의 구원의 방주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제가 왜 이 노아를 들고 온 줄 아세요?
오늘 노아 시대와 같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시대 세상 사람들의 길을 가는데 그래도 그 가운데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걷고 있는 길이 틀린 길, 잘못된 길이 아닌 것을 알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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