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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히11:5-6)

by 오용주목사 2019. 1. 6.

2019.1.6.                                                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히11;5-6



우리는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성경의 가장 핵심 진리 5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인다.

2. 죄의 삯은 사망이다.

3.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4. 십자가와 부활

5. 믿음과 영접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6번째 핵심진리가 뭐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의 삶입니다.

그 삶은 한 마디로 예배의 삶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2019년 우리의 신앙의 목표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정했습니다.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2019년 신년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신년감사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세요? 또 한 살을 더 먹어서입니까? 사실 신년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고,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한 발짝 더 다가섰는데 그게 감사하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 년 동안 무사히 한해를 살기를 원해서 입니까? 아니면 이 한해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는 마음에서 미리감사를 드리는 차원에서 감사예배입니까?

 

사실 우리가 오늘 신년감사예배를 드리는 참된 의미는 이 한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한 출발선상에 있기에 그것이 감사한 것 아닙니까?

 

사실 나 홀로 걷는 시간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점점 죽음으로 향해가는 시간이고, 아무런 목적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한해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걸음이기에 그 시간이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작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이어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패럴림픽이라고 하죠, 그것을 보면서 그 종목가운데 알파인스키 종목이란 것이 있는데, 시작 장애인들이 타는 겁니다. 사실 정상인도 타기 힘든 경기인데 시작장애인이 어떻게 타나 했는데 가이드 러너와 함께 타는 것입니다. 시각장애 선수보다 먼저 출발해 무선 헤드셋으로 코스 상황을 알려주는 도우미가 있기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이드 러너는 누구입니까? 누구와 함께 동행 하여야 이 한해를 잘 완주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가이드 러너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특히 히11장에 나와 있는 믿음의 선진들은 한 결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에 나오는 실패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이 세상과 동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사람들은 딱 두 종류인 것 같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한 종류 세상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한해를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한해 누구와 동행하고 또 새로운 한해는 누구와 동행하길 원하십니까? 나의 동행자가 누구인가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였다고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하는데 결혼생활이 뭐냐?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뭐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 이것이 동행이며, 곧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과 동행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어쩌다 힘들 때 한번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함께함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24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보세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니까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를 낳았데요. 그러면 낳기만 했겠습니까? 길러야죠? 기르려면 일을 해야죠. 그러니까 에녹은 일상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만 아니라 일상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한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려 하지 마십시오. 애들 키워놓고 나중에 한번 멋지게 동행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하루 내 일상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친밀한 교제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가?

신앙생활은 하나님 동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는데 왜 결혼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저 사람의 필요를 내가 채워주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결혼의 목적이 이 사람을 이용해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면 그 결혼의 시작부터 잘 못된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저 사람을 통해 오로지 내 필요만을 채우기 위해 결혼한다면 그 결혼은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행 한다면 시작부터 잘 못된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과 동행해야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어, 그래야 내가 성공할 수 있어 만약 이것이 동행의 목적이라면 시작부터 방향성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배신할 사람입니다.

 

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안전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나님이 원하기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동행은 나를 위한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한 그 분을 위한 길을 함께 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한 평생 배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애굽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밥줄은 배와 그물과 심지어 가족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동행은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죽는 자리까지 가게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들 모두는 동행함으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의 구원의 방주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는 하나님을 섬기는 한 민족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는 애굽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어떤 뜻이 이루어졌습니까?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온 통 내 뜻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언제 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한해 내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봅시다.

 

 

3.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보세요.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 왜 예배를 드리시나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신상생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타락하면 우리가 자기 음성, 세상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갑니다.

여러분 하루를 살면서 누구의 음성에 반응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염려하며 걱정하는 소리가 누구의 소리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해야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않으면 나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가다리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한해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여러분의 삶의 일상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음성이 뚜렷해집니다. 그렇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삶이 좀 심플리시티(simplicity), 단순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너무 몰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는 둔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민감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깊어져 가면서 자연히 하나님의 음성이 클리어하게 아주 선명하게 인도해 가신 것을 경함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을 기다리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생활을 단순화 하고 하나님께 집중력을 높일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은 맑고 하나님의 음성은 선명하게 들려지게 됩니다.

4.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인도를 신뢰해야 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처음 용인으로 와서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네비게인션을 믿고 가는 것이 가장 안전했습니다. 여러분 서울 지리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럼에도 저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 네비게이션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서울 지리도 어려운데 내 남은 인생의 길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어떤 돌발 상황

이 닥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에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행이 본인에게는 기쁨이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동행을 하던 그와의 동행이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면 동행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말한다면 하나님이 내게 동행해주신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힘과 위로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없고 원망 불평이 있다면 그 원인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향이 아닙니다.

 

21장에는 광야 불 뱀 사건이 나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뱀에 물려 죽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자기들이 원하는 길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짖는 죄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반드시 이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내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행을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붙잡는 겁니다.

 

 

5. 어떻게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는가?

우리 하나님과 동행을 하지만 끝까지 동행은 쉽지 않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동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하였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그래 나 믿어 믿어 믿어 가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11장 전체에 나타난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행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11:7 믿음으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다.

11:8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믿음에는 명사형 믿음과 동사형 믿음이 있습니다. 명사형 믿음은 말만 믿는 것 행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사형 믿음은 믿는 대로 느끼고 믿고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특징은 환경을 보지 않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 거인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믿음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 가데스바네아 앞에서 여호수아 갈렙의 믿음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2)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이 무엇일까요? 만나 주시는 것이 상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주 단순한 믿음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올 한해도 이 믿음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이, 의심이 이러한 믿음을 흐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반응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샤를르 푸코라는 군인이 예수를 믿은 후 카롤릭 신부가 됩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원주민이 쏜 총에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쏜 '사하라의 불꽃' 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왜 동행해야 합니까? 그래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 한해 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 한해를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레찬양 64장 지금서 있는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