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리즈설교/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5.경외함이 없다면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습니다(삼상2;12-17)

by 오용주목사 2019. 2. 3.

2019.2.3                                     5.경외함이 없다면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삼상2;12-17

 

 

몇 주 전에 과거 법원의 수장이었던 대법원장이 구속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국민들은 과거 대법원장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법기관의 최고의 기관인 대법원의 대법원장이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가장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이 가장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시대 가장 하나님 앞에 올바른 제사를 드려야 할 현직 제사장들이 타락한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타락을 하였을지 몰라도 이들만은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그런데 그러지 말아야 할 그들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들이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 타락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여기서 '제사'에서는 제물 중 기름 부분만을 번제단에 태우고 (3:3-5), 살코기 부분은 제사장과 제주(祭主)가 각각 모세 율법에서 지정한 몫에 따라 분배되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제사 후 제물의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를(7:28-36), 그리고 신명기 율법에 따르면 앞 넓적다리 즉 어깨부분, 부 볼, 그리고 위()(18:3) 자신들의 몫으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나머지 부분은 마땅히 제주(除主)에게 돌려져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몫만을 정확히 취하지 아니하고,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조건 자신의 몫으로 삼은 것은 결국 제주(除主)의 몫에 대한 침범 행위이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명하사 세우신 율법을 무시하고 범하는 망령된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생고를 먹고 싶다고 그 생고기를 먹었습니다. 회막에서 여인들을 겁탈하였습니다. 타락했습니다. 결과 어떻게 됩니까?

삼상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이 말씀은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한 날에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그러면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여기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 “나를 멸시했다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멸시한 것, 즉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면,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조차도 취소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약 누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목자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축복을 설교한다면 우리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도 축복을 말한다면 과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라고 누가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왜 안 믿으시죠?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오늘 수많은 소위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라고 하면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오늘 교회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축보하실 것입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100% 거짓입니다.

 

1.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기준은 높다는 말, 무슨 말인가 하면, 홉니와 비느하스 당시에도 음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사기꾼, 도둑놈도 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보다 더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랬지,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자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이 아니었으면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하는 이정도의 저주는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더 큰 화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도 커지만 의무도 크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더 큰 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심판 소리도, 저주의 소리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회개시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것은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여기 담배를 많이 피운 자에게 당신 그렇게 계속 담배를 피우면 죽어, 이 소리는 심판의 소리도, 저주의 소리도 아닌 이 소리가 복음입니다.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2: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이 복음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런데 망할 자는 깨닫지 못합니다. 망할 자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니 회개 못합니다.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내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멸망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믿음의 근본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멸망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믿음의 근본을 버리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어떻게 회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회개할 마음을 선물로 주셔야 합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2. 경외함이란?

경외란? 사전적 의미로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인데, 경외감은 경이로움과 다릅니다. 경외감은 단지 감탄을 연발하는 감정 그 이상입니다. 경외감은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 크고 존경스러워 감당 할 수 없을 때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리켜 경외라고 합니다. 사실 경외함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좋겠습니다.

 

경외함이란? 하나님의 뜻(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축구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 뜻,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 존중히 여기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욕 중에 미련한 놈이란 욕이 있죠? 여러분 뭐가 미련한 것인 줄 아세요?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성경에서 미련하다는 말은 아이큐가 낮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는 자, 즉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과 훈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미련한 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멸시합니다. 가볍게 여기고, 하찮게 여깁니다. 반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뜻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지혜로운 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미련하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 지혜가 부족하다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근본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잠언은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추구와 깊은 이해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생각의 기반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시고, 자기의 생각이 나왔을 때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다 싶은 것이면 잘 점검해서 돌이켜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말씀 앞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오늘 본문의 홉니와 비느하스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부득이하여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변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애당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하나님의 뜻(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반면 모세는 홍해 앞에서 애굽의 정예부대가 코앞에까지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사울 왕은 도망갈 곳이라도 있었지만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홍해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닥쳐봐야 우리의 생각의 기반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지 아닌지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외함이 없으면 그냥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화가 미치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3. 그러면 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을까요?

1:19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하님 경외하는 것을 쉽게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익을 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 왕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지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심각하게 문제 삼고, 고민 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 가정문제, 재정문제, 건강문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러나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고민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 하나님을 경외함이 훈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사울 왕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경외함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 답답하고 어리 섞어 보이죠.

 

그런데 이 기다림이 쉽지 않은 것은, 이런 사울 왕과 같은 상황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금은 너의 믿음을 테스터 하는 시간이니 너는 사무엘이 더디 온다고 해도 기다려야 한다. 백성들이 흩어져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너는 경외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다. 이런 응답이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응답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때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뜻도 정확하지 않고, 경외함 없이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도 없고 그러니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마냥 기다려야 합니까? 그런데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는 질문입니다. 마냥 기다려야만 되느냐? 이 질문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이 일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이런 것이 마음에 우선순위로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생명인줄 알고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의 기반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하는 것 보다 어떻게 손해가 나지 않느냐? 어떻게 일이 되느냐? 어떻게 내게 이익이 되느냐?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기반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문제, 가정문제, 교회문제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선이 아니라, 일이 되겠느냐가, 안 되겠느냐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탐심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시작해 이룬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무엇인가 어떤 현상을 유지되던가, 손해를 안보던가, 작은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진짜 하나님 경외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경외함으로 돌이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은 승리라면 그 승리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번 확보하면 그 승리는 오래 지속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정말 중점을 두고 가치를 두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해결, 일이 잘 풀리는 것에 가치를 두는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꾸어 가는 데에는 많은 긴장과 오래 기다리는 시간이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해야, 생각이 경외함으로 딱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생각이 경외함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외함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경외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32:37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32:38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경외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13장에 보면 알곡과 가리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 차이 중에 한 가지가 경외심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고 거듭난 사람은 경외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 신앙은 경외심이 없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그의 경외심입니다.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성경이 말하는 칭찬 받는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입니다. 욥은 이 점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이나 성공의 척도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가 그래도 신앙을 지킬 것 인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 때에도 그가 입술로 범죄 치 않았던 것은 그의 신앙의 바탕에 깔려있는 경외심이 때문이었습니다.

 

2: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지난주일 말씀드렸듯이 경외심 = 믿음입니다. 내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경외심이 있습니다. 경외심은 말씀에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