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7. 7.하나님을 경외할 때 나타나는 열매
시111:1-10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나타나는 열매에 대해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 다미로 정의하면 하나님이 주인 된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인데 하나님 말씀에 자기의 생명을 걸기 위해서는 하나님 경외함이 필 수 입니다.
그러면 경외함이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 경외함입니다. 이 경외함은 성경공부를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하나님을 만남이 있는 자가 느끼는 감정, 한편으로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있는 신비한 감정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음을 알 때 나오는 감정이 경외함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 들을 보면 딱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님 경외한 자들과 하나님 경외하지 않는 자들, 즉, 하나님 멸시한 자들입니다.
하나님 경외한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 말씀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 말씀 무시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가? 이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경외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밀함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시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25:14에서 ‘친밀함’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소드” 하나님의 비밀 회담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자신의 은밀한 것들을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이끄신다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그러한 친밀함을 허락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시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친밀함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함에 있어서 착각하는 것은 내가 마음먹고 하나님께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친밀함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친밀함이 아니라 경외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경외함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밀함으로 손 내시며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임금 앞에 경외함으로 나갈 때 임금이 친밀함으로 맞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과 친밀함의 열매가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하십니까? 이 친밀하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 친밀함을 이렇게 설명하면 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 하나님을 경험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일이 내 계획대로 잘되고, 요즘 화장지 ‘잘 풀리는 집’처럼 모든 일이 잘 풀려서 기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기쁨이 있느냐 말입니다.
하박국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런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기뻐하고, 세상 사람들이 한숨 쉬는 것으로 한 숨 쉬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옛날 부모님들이 이런 말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우리 신앙에 적용해보면 “내가 주님 때문에 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내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때문에 참고 견디는 삶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레찬양 193장 오직 예수뿐이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여러분 내가 하나님과 친밀한가? 다른 어떤 것으로 알려고 하지마세요. 지금 내게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는가? 그래서 그 기쁨이 이 땅에서 나를 버티고 견디게 하는가? 차원에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이 확신이 없고, 힘이 없고, 세상과 쉽게 타협하고 무너지는가? 뿌리 –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행: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또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뭐라고 편지 합니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이게 가능한 것입니까?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가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친밀했기 때문입니다. 이거 하나님과 실제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 아닙니까?
만약 우리도 이러한 기쁨이 없다면 나는 아직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다는 것이요, 이 말은 내게 하나님 경외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증거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옛사람들은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여주봉 목사님도 목사님이 지은 책 “십자가 복음” 서론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를 몇 십 년을 믿었는데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가? 이 말 또한 그 만큼 변화가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교회는 다니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데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안변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 신앙의 본질을 달달 외운다고 그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을 만나야 변화됩니다. 여러분 성경을 몇 십 독을 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변화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는다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야 변화됩니다.
사울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나면 변화됩니다. 변화되지 않은 것은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보세요. 성경은 판단하지 말라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판단합니다. 성경은 후욕하지 말라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후욕합니다. 성경은 비난하지 말라했는데 여전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들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단 말입니다. 어떤 때는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을 헛으로 듣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과 친밀함이 열리고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베드로에게 목숨을 빼앗는 다해서 예수님을 부인하겠습니까? 이게 강요한다고 되겠습니까?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소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인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인입니다.
조정민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무신론자 이였습니다. 잘나가는 아나운서로 승승장구해서 imbc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성경을 읽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결론을 내리길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였습니다. 또 하나 그가 예수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난 사람은 변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하나님이 살아 게시면 나는 그분에게 전부를 걸아야 겠다. 그래서 그 좋은 직장 다 내려놓고 정리하고 미국에 신학을 하러 갔는데 이러한 그를 죽기 살기로 방해한 사람이 자기 아내 이였다는 겁니다. 아내는 모태신앙인데, 그래서 조정민 목사님이 하는 말 나는 아내를 통해서 명목뿐인 가짜 그리스도인을 봤다는 겁니다. 자기 아내는 가짜였다는 겁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그냥 종교인인 겁니다.
여러분은 종교인입니까? 신앙인입니까?
여러분 종교인은 절대 신앙인이 될 수 없고, 신앙인은 절대 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절대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 너무 큰 것을 봐버렸기 때문에, 너무 큰 것을 믿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짜를 만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절대 가짜 생활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로 그 세계에 자기 전부를 투자하지 못합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안 변하고 다니는 것이 당연합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3)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증거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시편25:14에서 ‘친밀함’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소드” 하나님의 비밀 회담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자신의 은밀한 것들을 계시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니 마음이 내 마음이 내 마음이 니 마음이다 는 겁니다. 부부가 뭐가 부부입니까? 그냥 같이 살면 부부입니까? 부부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십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라’라 말씀합니다.
행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마음을 아십니까? 하나님 마음에 관심은 있으십니까? 우리는 맨날 하나님이 내 마음 몰라준다고만 했지, 제 말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 했지 여러분이 하나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은 있으세요?
정현이 장학금 받는 다는 소식을 듣고 ‘니 그리 좋나?’ 나는 내가 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흥왕케하는 복을 주십니다.
출1: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여러분 이방인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신앙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는 모든 종교적 행위는 다 거짓입니다.
엘리제사장은 자식을 하나님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자녀들이 정말 잘되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그 어떤 것을 물려준다 하더라도 그 자녀는 결국 망하는 인생이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것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데도 손을 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는 일이지만 아들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오늘부로 제사장 직을 그만둬라, 너희들의 그 패역의 소리를 더 이상 못 견디겠다. 그리고 나도 내려놓겠다. 우리 모두는 회개해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회복시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목사님들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중히 여겨서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되고 싶은 겁니다. 나는 고생했지만 내 자식은 고생하지 않고 내가 이뤄 논 이 위에 평탄한 목회를 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히 여겨서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제일 큰 우상은 자식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직장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직장 내려놓은 사람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기꺼이 작장 내려놓습니다. 자식을 위해사라면 부부가 생이별을 합니다. 믿음을 위해서 생이별을 하는 사람 못 받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식이 있습니다. 자식보다 큰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도 하나님보다는 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와 정반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너의 본심을 내가 보았다.
자식이 믿음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는데 자녀 비위를 맞춘다고 그냥 둡니다.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제가 정현이 에게 대학가면서 몇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1.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2. 술, 담배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아빠에게 약속할 수 있겠니?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이 지난 수요일 졸업을 하고 저녁에 같은 반 애들 20명 정도가 모였는데 술자리에 가지 않고 집에 온 것이 참 고맙더라고요. 이 놈이 그래도 아빠 말을 헛으로 듣지 않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흥왕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뒤 돌아보니까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니 어느 날 애굽의 2인자가 된 것입니다. 구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것 이것이 진짜 복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노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상17:16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여러분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다가 어느 날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시고, 어느 날 돌아보니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자리에 앉아있고, 어느 날 돌아보니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주는 자리에 앉아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짜 복 아닙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제 죽었던 자가 오늘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제 망한 자리에서 오늘 새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제 종 된 자가 왕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떠나가시면 오늘 존귀한자, 아니 존귀할 수밖에 없는 자도 비천한자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 인생, 하나님을 높이는 인생 진정으로 능력 있는 인생인 줄 믿습니다.
시115: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3.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창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아나니아 삽비라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4. 원수에게서 건짐을 받습니다.
왕하17: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시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우리의 삶에 도처에 원수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요셉은 가는 곳곳마다 원수가 있었습니다. 집안에도 있었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때 마다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훗날 형제들을 만났을 때에도 안심하소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냈나이다.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인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될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창대케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건지십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예화, 소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5.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치료하십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예수님을 경외한 자들은 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백부장 (마8:5-13)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 (마9:20-22)
가나안 여인 귀신들린 딸 (마15:21-28(
'시리즈설교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6.경외함을 잃어버리면 나타나는 열매 (잠언9:10) (0) | 2019.02.10 |
---|---|
5.경외함이 없다면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습니다(삼상2;12-17) (0) | 2019.02.03 |
4.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창39:1-3) (0) | 2019.01.27 |
3.하나님과 동행한 아브라함(창12:1~5) (0) | 2019.01.20 |
2.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창6:1-9) (0) | 2019.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