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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집회설교

언양교회 친밀함과 헌신

by 오용주목사 2018. 10. 30.

2006.3.5(언양교회3남전도회헌신예배)              친밀함과 헌신


사도요한은 2000년전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요한복음 10:10절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도 그분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여러분! 풍성이라고 하니 이 땅에서 좀더 낳은 삶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풍성이란 하나님의 은혜, 임재, 도우심, 지키심, 보호하심,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은 우리가 그분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우리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풍성한 삶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구약 출애굽기에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군대의 차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주위의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하나님의 살이계심을, 하나님 만이 오셔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느냐 라는 거예요. 솔직히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 인도, 도우심, 임재, 지키심, 능력등을 우리의 삶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한 우리의 고백일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수 있을 것인가, 주님안에 있는 그 풍성함을 우리가 어떻게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할때 가능합니다.


1.신앙생활이 아닌것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종교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성경읽고, 전도, 기관에서 봉사하는 것, 즉 무엇을 하는가, 일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하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신앙생활을 잘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켰고,(침을 뱉고 발로 비비지도 않았음) 1주일에 하루는 금식하였으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알았고, 십일조는 선물받은 것에서도 했음, 구제...) 그런데 예수님의 평가는 무엇이었습니까? 요5장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라고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사야 1장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절기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13-14절)

안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월삭(매달 첫날) 모든 대회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맥추감사절, 대강절, 사순절, 오순절 등과 같이 우리게 별로 알려지지 않는 절기까지 그들은 빼놓지 않고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11절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양, 수송아지, 어린양, 수염소 등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사야 58장이 의하면 그들은 정기적으로 온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배(절기)와 헌금(희생)과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예배와 헌금에 신물이 났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들이 기도하지만 듣지 않으시며, 그만은 의식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임재, 은혜, 보호하심은 거두어졌습니다. 심지어 그 모둔 의식들을 증오한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모든 모임들과 예배들은 하나님의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헛된 예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입니까? 그들에게는 의식은 가득했을지 모르지만 참 신앙생활인 신앙의 본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 반지


그럼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말합니다. 다시말해 신앙생활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결혼생활은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한 교제가 결혼생활이듯 신앙생활 또한 하나님과 바른관계, 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호세아 선지자는 호6: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호6:6 “나는 인애(사랑)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또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가 부부가 친밀한다 라고 할때 서로를 알고,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친밀함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아는 것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알면 하나님을 안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 피자 선전지

우리는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경험적으로 알 때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는 겁니다.

시편18:1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힘이되심을 압니다. (예:지갑의 돈)

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 부도위기에서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기를 기다리느냐?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는가?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심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기도하고......그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 만약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사야 시대(사1장), 예레미야시대(렘6;20:시바에서 유향을 원방에서 향품을) 바리새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하나님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1:11-15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렘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


요5:42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왜 이렇게 안식일과 모든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고, 월삭, 대회를 지키고, 무수한 제물을 드리고,  온 백성이 금식기도를 하였으며, 한국에서 필리핀 까지 가는 먼거리를 가서 우향과 향품을 구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구제, 십일조, 성경을 연구하고 암송하고...이렇게 철저하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평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였을까요?


그들 가운데 기복신앙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이됨.


그러면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모든 것 되심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요, 목적이요,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능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자랑, 나의 의지, 내사는 이유, 내 항해의 바람,


예, 남편이 있는데 90%는 아내에게서 기쁨을 10%는 다른 여자에게서 기쁨을.. 허락하시겠어요?


이것을 모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출33장에서 볼 수 있음. 모세는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

출32장에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김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심 -> 모세의 기도로 뜻을 돌이켜 화를 내리지 않으심 ->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그 모습을 보고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저 깨뜨림 -> 그리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  레위 자손이 다 모세에게로 나아옴 ->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문에서 저 문으로 왕래하며 형제를, 친구를 이웃을 도륙하라 -> 그날에 삼천명이 죽이바 됨 ->이튿날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서 백성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치 않으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섬 ->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 ->33장 1-

내가 너희에게 주마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내사자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을 쫓아 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하심.


이 때 모세의 대답 33:15 “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한지 2년째 입니다. 그들이 먹는 것 만나(씨리얼), 목욕을 한번 못했어요, 옷, 신발을 갈아입지 못했어요,  이 광야에 비하면 가나안은 어떤 곳입니까? 두사람이 포도송이를 막대기에 매고 올정도로 풍요한 곳, 천국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금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가시지 않으면 모세도 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모세에게는 목숨보다, 평안함 보다, 사역보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많은 돈보다, 안락한 삶보다, 잘먹고 사는 보다, 심지어 사역의 확장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긴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소중히 여긴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러한 모세와 같은 자세를 몇 사람이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소중하다고 말로는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나안 땅이 더 소중하고, 사역의 성공이 더 소중하고, 사람의 평가가 더 소중하고, 평안한 삶이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이고, 실제적이며, 경험적으로 아는 것(예: 긍휼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 되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갈 때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과 같이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중과, 뜻과,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2.이때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을때 하나님의 앞서 가심을 우리게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의중, 의도, 마음, 길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이때 우리가 믿음으로 그 일에 동참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이것이 곧 헌신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신앙의본질 가운데 머물게 될 때 하나님게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그때 우리가 믿음으로 그일에 동참하게 될 때, 믿음으로 완스탭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크기의 일을 이루시며, 이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함에 거하면 개인의 길을 보이시고, 우리 한 기관이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거하면 그 기관에  하나님의 길을 보이시고, 교회가 하나님과 친밀함을 열망하여 그 길로 나아갈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길을 보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우리의 힘, 노력, 생각, 계획으로 하려고 하며, 또한 그렇게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믿음장을 보세요

어느 한사람이라도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무슨일을 했던 사람이 있는지..


노아가 내가 방주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하고 했나요?

만약 노아가 홍수심판을 알고 열심이 목이 터저라 외치고 다녔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기쁘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내가 이삭을 번제로 바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했나요? 아닙니다.

모세가 내가 홍해를 갈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하고 그렇게 했나요?

여호수아가 내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예요, 모두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믿음으로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셨으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이 모세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홍해를 가르는 것이 모세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요단강를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느뜨린 것이 여호수아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한일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믿음으로 동참할 때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신것입니다. 이것이 곧 풍성한 삶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은 평생동안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그의 오직 한가지 구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원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많은 소원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약의 바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고린도전서2: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기보면 바울또 예수님을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3:7-8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바울의 유일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함이 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의중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방인의 사도요, 터를 닦는 사도로 부르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비전이요, 푯대요, 바울이 있어야할 자리요, 나아가야할 방향이었습니다.


바울은 세계지도를 보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비전을 바라 봅니다. 이것은 바울개인의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앞에 바울은 똑바로 섰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할때 우리에게 주님의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밀씀을 맺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이 신앙으로 돌아갈 때 주님은 주님의 행하심을, 의중, 의도, 뜻, 길을 보이십니다.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는지

왜 보내셨는지

왜 오게 하셨는지

어디로 부르셨는지

지금까지 왜 인도해 오셨는지

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는지

왜 이러한 아내, 남편, 자녀들을 만나게 하셨는지..

우리 기관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중을 보이십니다. 이때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내 삶을 조정하고 동참할 때 이것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이요, 온전한 헌신이며이때 우리에게 풍성한 삶, 하나님의 은혜, 인도, 도우심, 보호하심, 지키심의 풍성한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린 자는 마르다가 아니라 주님의 발 앞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하고

주님의 의도, 의중을 알기 원하며

그분이 계신곳이 나 또한 같이 있기를 원하고

주님의 열망이 나의 열망이 되길 원하며

주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되길 원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나의 기뻐하는 것이 되길 소망하며

그분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길 원하며

그분의 일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리기를 원하며

나 주의 기쁨되길 원하는..

그래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이렇게 마리아와 같이 다윗과 같이, 바울과 같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갈망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을 열망할 때 하나님께서 앞서 가심을 우리에게 보이실것입니다. 그때 그분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가십시오.

여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이, 참된 헌신이 아름답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주님 다 이땅에 다시 오실 그때까지 이렇게 아름답게 세워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